정조대왕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130만 수원시민의 자랑스런 문화축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잡은 제53회 수원화성문화제가 43만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9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사흘간 펼쳐진 이번의 여러 행사는 매우 의미가 있었다. 그 중 가장 몰만한 것은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화성행궁에 도착한 능행차였는데 폐막식 직전 도착한 행차는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이번의 수원화성문화제는 ‘인인화락:소통·나눔·공간'을 주제로 올해 수원화성축성 220주년과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열렸다. 특별히 정조대왕능행차, 혜경궁홍씨 진찬연, 무예공연, 대동놀이, 방화수류정 달빛음악회, 야간 무예공연 ’야조‘ 등 총 26개 프로그램을 선보여 관람객들의 많은 인기를 끌고 호평을 받았다.
연무대 창용문에서 열린 1만 5천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한 폐막식에서 염태영 수원시장은 폐막선언을 통해 "수원화성문화제는 수원시민의 저력과 신명을 결집하고 풀어낸 축제의 대향연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내년에도 더욱더 새롭고 알차고 성숙한 축제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폐막선언 뒤에는 정조대왕이 야간에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것을 재현한 '야조' 공연과 시민과 함께하는 대동놀이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아쉬움 속에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리포터는 이번 ‘2016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 행사를 취재하면서 정조임금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11살의 어린 세자는 뒤주 속에 갇혀 죽음을 당하는 아버지를 지켜보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정신적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정조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가 과연 어떤 정치를 펼칠 것인가?
정조는 재위 24년간 무려 66회에 걸쳐 행행(行幸)을 하였다. 그 중 화성행차를 한 것은 모두 13차례다.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성대하게 열린 것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겸하여 가진 을묘원행이다. 7박 8일간의 능행차 일정을 보면 정조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능행차를 하였는지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정조의 능행차를 어버이에 대한 효심을 생각한다. 그러나 좀 더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백성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정조는 행행하는 가운데 3,355건의 상언이나 격쟁을 처리했다. 상언은 백성들이 임금을 직접 만나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이다. 격쟁은 행차 중에 징을 치고 나와서 왕에게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이다.
행행은 국왕이 여러 관리와 군사를 대동하므로 많은 비용이 필요로 한다. 을묘원행도 마찬가지였다. 을묘원행 기록에 의하면 현륭원 참배와 과거 시험, 양로잔치 등의 행사를 치르면서 말 779필과 6,000명의 사람이 동원되었다. 행차 준비과정에서 정리소(整理所)라는 주관기구를 설치하였다. 일사분란한 준비와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었다. 준비기간만 1년이나 걸렸고 행사 비용도 10만 냥이나 들었다.
고지현 수원관광해설사의 보충설명에 의하면 그 당시 10만 냥은 현재 화폐로 계산하면 70억 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정조는 백성들로부터 세금 명목으로 추가로 징수하지 않고 정부 보유 환곡을 빌려주어 그 이자로 충당했다.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위민, 애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을묘원행 시기도 4개월 앞당긴 것은 농번기를 피하기 위함이라니 그 세세한 마음 씀씀이에 감탄할 뿐이다.
우리는 정조대왕 능행차를 보면서 200여 년 전 역사의 볼거리로 생각한다. 그 당시 궁중 의상이나 관리들 복장 등의 풍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볼거리 뒤에 숨은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은 더욱 뜻 깊은 일이다. 정조가 현륭원 참배에 그치지 않고 봉수당 회갑연, 향교 참배, 과거 시험, 장용영 군사 지휘, 사미(賜米) 행사, 양로잔치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는 말이다.
무예 공연 ‘야조’에서 정조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온다. "백성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고, 백성이 배부르면 나도 배부르다" 이것이 바로 백성에 대한 왕의 마음이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이야기 한다. "이제부터 그대들은 나라 사랑하기를 내 몸 사랑하듯이 하라" 백성사랑이 나라 사랑이고, 백성사랑이 바로 충(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