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정보화·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는 지식기반사회이다. 정보화 사회는 지식 및 정보의 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짧아짐에 따라 사회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디지털 혁명으로 정보통신기술도 더욱 놀라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5천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라디오는 38년, TV는 13년이 소요되었으나 인터넷은 불과 5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또한 세계는 점차 ‘국경 없는’ 하나의 지구촌 사회로 가고 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교통의 발달, 그리고 이데올로기 장벽의 붕괴로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국경이라는 보호막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선 국가·기업·개인간의 경쟁은 물론 상호협력이 필요하다. 향후 비(非)OECD 국가 및 모든 서비스 시장에 대한 개방화·세계화가 점차 확대되면서 세계시장통합의 비중도 2010년 전후로 약 50%수준으로 지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식과 정보의 양이 4∼5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지만 2020년이 되면 지식의 양이 73일마다 2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2050년 경이 되면 지식이 급증하여 현재의 지식은 1%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지식기반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이 국가경쟁력의 핵심 원천인 동시에 경제활동의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보와 지식을 창출·획득·분배·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인적자원개발은 국가발전의 핵심전략이다. 이미 OECD 회원국들은 지난 세기말부터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국가발전의 핵심전략으로 인적자원개발에 초점을 두고 국가 차원의 교육개혁을 추진하였다.
우리 나라도 인적자원의 관리가 핵심과제라고 보고 이를 제도화하여 교육부총리제를 도입하고 관련 부처 장관들로 구성된 인적자원개발회의를 설치하여 운영하면서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인적자원개발이 우리 사회 주요 관심사가 된 이유는 인적자원개발이 갖는 내용과 의미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종전의 산업사회에서는 대량생산체제에 필요한 표준기술과 분화된 특정기술을 개발하고 교육하는데 열중하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식기반사회는 지식이 새로운 가치 창출과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되는 사회로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정보의 생산·공유·분배·활용이 중요시되고 있다.
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과 대학교육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12일 열린 “중장기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비전 2005 공청회”에서 인적자원 분야 국가경쟁력을 2005년까지 세계 10위권으로 도약시킨다는 목표와 함께 주요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대학교육과 관련된 주요 정책내용은 대학정원 국가관리제 폐지, 국가전략분야 인력 양성, 대학의 연구개발 활성화, 문화산업 선도인력 양성, 취약 계층 능력개발 지원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중에서 대표적으로 대학정원 국가관리제 폐지와 국가전략분야 인력 양성에 대해서 살펴본다.
대학정원 국가관리제 폐지 2005년까지 대학 정원을 현재의 ‘학생수’ 개념에서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교육능력총량 즉 ‘학점 총수’ 개념으로 바꿔 교육 시설과 교수 확보 수준에 따라 정원을 신축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원이 4천명인 대학은 졸업 학점이 130학점이라고 할 때 520만 학점을 가르칠 능력이 있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2005년 이후에는 정부가 대학별 정원을 책정하지 않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원을 책정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수도권 지역은 인구집중 방지를 위해 2005년 이후에도 당분간 교육부가 계속 정원을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번 계획안은 정원자율화를 통해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하던 양적 지표 대신에 앞으로 교육여건이나 능력에 따른 질적인 지표로 판단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나라 대학의 경우는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가 30명으로 미국 15명, 일본이 19명 등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실정이다. 실제로 대학이 커지면 그만큼 교육의 부실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의 정원이 현재 2만 5천명인데 비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도쿄대학은 9천명으로 서울대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의 유명 대학들에서 대동소이하게 나타났다. 이번 대학정원자율화가 오히려 양적 팽창을 부추켜서는 안된다.
2005년부터 정원자율화를 실시하는 본질이 대학의 교육 여건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느냐에 더욱 초점이 두어야 한다. 현재 교육부에서 교수·교육시설 확보율에 따라 교육 능력을 결정하기 위한 판단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강의실과 교수 확보율 등 정원 자율화의 기준을 엄격히 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PAGE BREAK]국가전략 분야 인력 양성 정보통신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문화기술(CT), 나노기술(NT), 항공우주기술(ST), 환경기술(ET) 등 6개를 국가전략 분야로 정해 전문인력을 육성하면서 병역특례를 확대하고 외국 명문대학에 유학과 파견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 기초학문 분야를 지금보다 더 소홀히 하는 쪽으로 작용할까 우려가 된다. 많은 대학들이 국가전략 분야 인력 양성 분야만 관심을 기울일 경우 기초학문의 위기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 이미 심각한 학생 부족을 겪고 있는 기초학문 분야의 학부나 학과는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책 추진과정에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방법으로 현재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간의 역할 분담을 해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국공립대학은 기초학문 분야의 발전에 주력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우려는 우리 대학교육이 점차 경영합리화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을 교육적 시각에서 상품 시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여 경제적 가치가 높은 지식의 생산이나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인력 양성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교육소비자인 학생들도 학문의 생산성을 상품화의 가능성과 같은 경제적 가치에 따라 소비자의 교육선택권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얼마나 가치가 있는 지식을 습득하여 신속하게 경제적으로 이윤을 증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심되는 것이다.
앞으로 정보기술이나 생명기술과 같이 현재에 많은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기초학문 분야 스스로의 개혁 못지 않게 정부도 기초학문이 모든 학문의 기초이기 때문에 지원해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21세기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학문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규명하고, 이에 맞추어 구조개선 차원에서 기초학문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21세기 대학교육의 방향
인적자원개발이 추진됨에 따라 21세기 대학교육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변화가 요구된다.
첫째, 인적자원개발을 위해서 대학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으로 개방성이다. 개방성은 곧 평생교육체제의 확립을 의미한다.
둘째, 대학의 운영체제에서 대학의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셋째, 대학 교육에서 효율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평생교육체제:개방성 대학교육에서 산업 및 취업구조와 노동시장의 환경 변화에 대비한 인적자원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저생산성과 저부가가치 산업구조가 고생산성과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 바뀔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도 평생직장 개념이 퇴조하면서 비정형 고용형태의 증가와 더불어 직무형태도 다양화질 것이다. 그러면 노동의 유동성을 대비한 평생교육이 일반화되고 이에 관한 고등교육기관의 역할도 강화될 것이다. 앞으로 평생학습을 위한 사회학습망이 구축될 것이고, 그 핵심적 기능을 고등교육기관이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번 계획안에서 정원 자율화와 함께 대학을 지역사회에 개방해 직장인, 주부, 근로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시간제 등록제(학기당 9학점 이내)를 활성화하고, 학점당 등록제를 고교 졸업자 이하에도 시행한다는 취지도 평생교육체제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교육에 대한 산업현장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적극적이 되면서, 교육도 산학협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의 실용화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제 산업현장의 요구가 직접 교육과정에 현실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과 학습의 경계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교육과정의 경직성·획일성을 깨고 유연성·다양성·자발성을 크게 높이는 교육이 이루어 질 것이다.
대학 운영체제:자율성 교육은 그 속성상 자율에 바탕을 둘 때 다양성과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된다.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학운영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개별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대학의 운영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사전에 규제하고 간섭하던 종래의 정책으로는 지식기반사회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울 수 없다. 대학정원자율화, 수업연한과 학위 종류 자율화 등 학사자율화로 대학 스스로의 자율적 구조개혁을 유도하고 학사제도 및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최대한 부여해야 한다.
이번 발표된 계획안에도 대학정원자율화가 있다. 하지만 대학의 자율성은 아직도 멀리 있다. 정부는 매년 적어도 서너 차례씩 차등적 재정지원을 전제로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평가가 대학들간의 선의의 경쟁을 유발시켜서 대학발전을 촉진시킨다면 이때의 경쟁은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대학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대학을 정부주도의 정책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평가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는 자율성에 대한 대학사회의 강력한 요구에 밀려 정부의 ‘힘에 의한 통제’ 대신에 ‘돈에 의한 통제’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부제를 비롯해서 교육부에서 권장하는 제도를 도입한 대학이 평가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대학들이 재정지원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정부의 통제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계획안에서도 대학 자율성 신장을 정책목표로 설정한 교육부의 의지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부의 자율화를 구실로 한 대학에 대한 과도한 통제와 지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교육부의 대학정책에 대하여 대학의 자발적 동의보다는 강제로 이끌려 간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서는 대학의 자율성이 정착될 수 없다. 교육부는 단지 제도를 바꾸는 일에 힘쓸 것이 아니라 대학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키우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PAGE BREAK]대학의 교육체제:효율성 인적자원개발을 위해서 대학교육은 비효율적인 과잉투자와 인력수급의 양적·질적 불균형을 줄여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그 방법으로 하나는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노동구조와 유연한 노동력을 갖춘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것이다.
한 개인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듯이 한 대학이 모든 분야를 다 잘할 수 없다. 따라서 각 대학은 교육목적, 학생선발방법, 교육과정, 교수학습방법, 학사운영체제 등에 따라 다양한 모형으로 대학 또는 학부(과)의 특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학의 다양화·특성화는 소비자 중심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동시에 지식기반사회에서 대학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전략이다. 각 대학들은 무조건적인 대학원의 신설 및 확장 요구를 자제하고 그 건학이념 및 여건에 따라 교육중심대학과 연구중심대학 등으로 특성있게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학부중심대학은 연구보다는 교육의 내실화를 기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원중심대학은 연구기능의 수행에 초점을 두면서 대학 스스로 학부학생의 증원을 억제하고 기존의 학부학생 정원을 일정수준까지 대학원정원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존의 학과중심체제로는 급변하는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보편·통합적인 다학문적 능력을 지닌 인재 육성에 한계가 있다. 학과간 장벽이 두터워 학점 및 학과교수 교류가 불가능하여 효율적인 학사운영이 어렵다. 학과 중심 체제에서는 기초교과목의 경우 유사학과의 중복개설, 교육기자재에 대한 중복 투자, 적성에 맞는 전공 선택의 기회 제약, 학제간 공동연구 및 협동연구의 제약 등에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광역단위 모집화를 통한 학부제를 도입하면서 최소학점인정제와 복수전공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결국 노동력의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한가지 전공만 이수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여러 전공을 이수하여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유연한 노동력을 확보하는데 또 하나의 방법이 소수의 다기능 핵심인력을 양성하고자 하는 엘리트주의이다. 그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두뇌한국21(BK21)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해당대학은 소수 엘리트 중심의 대학원 교육을 통해 핵심인력을 양성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지면상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학부제나 BK21에서 나타난 부작용과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맺으면서
지난번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가 49개국을 대상으로 경쟁력 순위를 발표한 200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쟁력은 비교 대상국 가운데 28위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교육부분의 경쟁력은 32위에 그치고 있었다. 특히 질적인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인 대학교육의 효율성은 47위로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2005년까지 4년 남짓 남았다. 그 기간 동안에 인적자원개발 국가경쟁력을 10위권 안으로 진입한다는 계획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에 발표된 계획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적자원개발이라는 국가목표와의 관계 속에서 대학 교육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현재 당면하고 있는 필요인력의 공급부족이나 고학력 실업자의 양산과 같은 문제는 대학교육 정책이 국가적 차원에서 인적자원개발이라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큰 비전과 그림 없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교육정책과 노동(고용) 정책, 과학기술정책, 산업무역정책의 연계성을 강화하여 부처간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또 하나 이번 계획안의 성공여부는 바로 재정 확보이다. 그 동안 정부에서 많은 계획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이유는 그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재정확보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계획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게 위해서는 재정확보가 중요한 관건인 만큼 차후 구체적인 시행 계획에서는 재정확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