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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교육 살릴 해법 있다

교육부가 연이어 실고 육성방안을 내놓은 것은 실업교육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위기의 실업교육에 대한 대책으로는 어딘가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경수(서울 경기상고 교무기획부장)



눈가림 식 정책 아닌가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일 ‘실업교육 육성방안’을 발표하면서 2004학년도부터 실업계 고등학생들에게 동일계 대학 진학에 정원 외 3% 특별 전형 허용, 실고생의 장학금 수혜율을 51.9%, 학비감면율을 30% 수준으로 확대하는 등 전폭적인 재정지원, 실업고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는 학생에게는 1종목에 한해 별도의시험을 치르지 않고 국가기술자격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발표했다. 또한 연이어 12월 28일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체제 개편’을 발표하면서 2005학년도부터는 대입 수학능력시험에 직업탐구 영역을 신설하여 학교 교육에 충실한 실업고 학생들에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넓혀 주기로 했다.
오늘날 우리의 실업교육은 벼랑 끝까지 내몰려 있다. 실업고가 아예 인문고로의 전환을 줄줄이 서두르는가 하면 눈가림 식의 교명 변경이나 학과 개편 등의 몸부림에 가까운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업고는 무더기 미달 사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연이어 실업고 육성방안을 내놓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실업 교육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한계 상황에 이른 위기의 실업 교육에 대한 대책으로는 어딘가 미흡하다는 느낌이다. 정확한 처방을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업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실업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진단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부에서 내놓은 이른바 실업고 육성방안이라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대안이라기보다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직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체득한 산업기술인력의 수급이라는 실업고 본연의 설립 취지와는 아랑곳함이 없다. 실업 교육 본질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엉뚱하게도 특혜 시비의 소지가 있는 대학 특별 전형을 비롯한 몇 가지 당근 요법에서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실업교육의 문제는 실업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급변하는 첨단 정보산업 사회에 걸맞은 다양하고 시의 적절한 나아가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우수 전문 산업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실업교육이 황폐하게 된 근본 원인은 교육 내적 요인과 교육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 내적 요인으로는 실업고가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기능인력을 배출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취업대란이라는 요즘도 중소기업에서는 오히려 기능인력을 구하지 못해 난리고, 첨단 산업과 신종 서비스업 분야에서는 전문인력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실업 교육이 기능 인력의 수요에 부응할 만한 교육을 담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낙후된 실습기자재는 첨단 기능인력의 배출을 근본에서부터 불가능하게 했고 적자 생존의 차원에서 경쟁하는 기업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공급하기에 학교는 정보의 백치 상태였다. 교육 외적 요인으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직업의식의 문제와 학력간의 임금 격차, 남학생의 경우 병역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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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학 연계로 장래 보장돼야
실업고 취업률을 보면 1995년 81.6%에서 2000년 54.4%로 떨어졌다. 직업에 필요한 지식, 기능을 익혀 취업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실업고의 낮은 취업률은 당연히 실업고의 위상을 뿌리부터 흔들게 된다. 정체성을 상실한 실업고 학생들은 학교 생활의 의미를 잃게 되고 결국 해마다 5%에 달하는 학생들이 중도 탈락을 하고마는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자기 정체성의 확립이야말로 실업고가 되살아나기 위한 일차적 과제이다.
실업고에서 인터넷고, 자동차고, 디자인고, 조리과학고, 애니메이션고 등 특성화고교로 개편한 학교들로 우수한 성적의 신입생들이 크게 몰리는 상황은 우리의 실업 교육이 나아가야 할 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성화된 교육으로 재학 중 취업 확정이 100% 수준에 이르고, 일부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자매결연을 맺은 외국 대학으로의 유학, 국내 4년제 대학으로의 진학이 예정된다는 이들 학교로 학생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실업교육을 전문화, 특성화시킴으로써 산업기술인력의 수급이라는 실업고 설립 본연의 취지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함은 물론 성적이 우수하고 의지가 있는 학생에게는 대학 진학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역 특성에 맞는 산학 연계 교육의 도입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첨단 실습 기자재 시설을 갖추고 현장에서 곧바로 운용할 수 있는 실무 위주의 교육이 학교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교 시설과 교육 과정 운영이 개선되어야 한다. 지역특성에 맞는 맞춤식 학과를 개설함으로써 취업이 보장되는 전문 기능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교원 연수 구조를 상설화하고, 산학겸임 교사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이 강구되어야 한다. 맞춤식 학과 졸업생에게 최고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자기 성취욕을 이끌어내기 위해, 현업에서 실습을 하며 공부를 계속하는 독일식 ‘듀얼 시스템’의 원용도 검토해 볼 만하다. 습득된 지식과 기술은 다시 학교 현장 교육에 지원되는 피드백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2) 학력간 임금 격차 줄여야
99년 임금구조 기본통계’에 따르면 대졸 이상 학력자의 임금 수준은 고졸 학력자보다 평균 51.7% 높았다. 80년대에는 대졸자의 평균 임금이 고졸자의 두 배 정도였으나 점차 그 간격이 좁혀져 97년에는 임금격차가 45.5%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는 그 격차가 49%로 다시 커졌고 99년에는 격차가 50%를 넘었다. 임금격차가 50%를 넘은 것은 93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고졸자의 경우 82년까지는 전체 평균 임금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대졸자가 늘어남에 따라 83년부터 고졸 출신은 사실상 ‘저임금’으로 바뀌었고 98년에는 전체 평균임금보다 10.4%나 낮아졌다. 학력간의 임금 격차는 고졸 취업을 목적으로 한 실업고 기피현상을 심화시키는 심각한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예로부터 전문기술인력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21세기 첨단 정보화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도 그 깊은 뿌리는 뽑히지 않고 있다. 생산직보다는 관리직을 선호하게 되는 이러한 사회 인식은 결국 맹목적인 고학력 선호로 나타나고, 학력에 따른 임금의 격차는 이를 더욱 부추기게 된다. 학력이 임금 수준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면 국가적인 학력 인플레를 부추기게 되고, 이것은 곧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학력이나 학벌보다는 능력이 위주가 되는 사회로의 전환은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3) 남학생 병역 문제 해결돼야
우리 나라 남학생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 군대에 가야 한다.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입영 연기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 병역 의무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야 하는 실업고 출신 남학생에게 병역 문제는 큰 걸림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졸 기능인력은 산업체에 채용되어 회사 사정을 겨우 익히고 적응해 나갈 즈음이면 군대에 가야 한다.
[PAGE BREAK]기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신입 사원에 대한 재교육 투자가 끝날 만하면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낸 인력이 다시 돌아올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한 마디로 투자 가치가 없는, 또는 아주 적은 대상이 고졸 기능인력이다. 실업고를 졸업하고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경우 징집이 면제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경우에 해당된다. 실업고를 졸업한 취업 인력의 공익근무요원 편입이라든가 일정 기간 동안 입영을 연기할 수 있는 방안 등이 연구되어야 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투자 효과를 보아야 하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된 실업고생은 사회 적응 훈련과 자기 계발의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4) 상담과 면대면 지도가 절실
앞에서 말한 산학 연계 교육, 특성화 학교로의 전환, 임금 격차의 해소 및 사회적 인식의 변화, 남학생의 병역 문제 해결 등이 실업 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제도상의 큰 축이라고 한다면 상담과 면대면 지도의 강화는 교사와 학생간의 의사 소통 구조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있어서 상담 기능은 유명무실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각 학교마다 진로상담부라는 부서를 만들어 놓고 학생 상담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정상의 기구 구성일 뿐 실제적인 상담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상담 전문 인력도 배치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일반 교사와 똑같은 수업 시수 부담은 적극적인 상담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진로 및 생활 지도에 대한 상담은 결국 담임교사의 몫이 되고 있다. 담임 교사가 상담을 담당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필요는 없다. 학생의 지식, 태도 면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담임교사일 것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에서는 상담 교사의 조언도 필요하지만 담임교사의 상담을 강화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상담과, 교수 학습 시간에 면대면 지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특히 실업고의 경우 급당 인원을 20명 안팎으로 하여 실무 위주의 교과운영과 상담활동의 면대면 교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담임 교사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과 진로 선택을 돕기 위해 의무적으로 상담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보고용 근거 확보를 위한 형식상의 상담이 아닌 실질적인 상담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사회적 인식전환 필요

실업 교육의 위기를 느끼고 나름대로 다양한 육성 방안을 내놓은 교육부의 노력은 일단 환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처방은 아쉽게도 미봉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업고 학생들을 위한 동일계 특별 전형, 대학수능과목의 직업탐구영역 신설 등은 단기적으로 실업고 지망생을 유인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실업고를 준 인문계고로 전락시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또 다른 갈등과 혼란의 빌미를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장학금 수혜 및 학비 감면 혜택은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기술 자격증 수여 운운은 교육인적자원부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망국적 발상을 스스로 토로한 치욕의 극치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격증이 아니라 능력이다. 능력이 모자라는 데도 실업교육을 이수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하여 자격증을 남발한다면, 그나마 자격증이 갖는 자격의 의미마저도 상실하게 할 것이다.
정확한 진단에서 정확한 처방이 나오는 법이다. 교육부는 실업교육이 벼랑 끝에 몰리게 된 까닭을 깊이 살펴야 한다. 현장경험이 전혀 없어 마치 환자의 상태도 제대로 모르면서 치료하겠다고 덤비는 돌팔이 의사처럼 현실성도 없고 성공 가능성도 없는 정책을 양산하는 교육학자들이나 경직된 관료들의 단견을 경계하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단기적인 대중 요법은 오히려 더 깊은 추락의 요인을 품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교육 내적으로는 맞춤식 학과의 신설 및 산학 연계 교육, 특성화 학교 구축, 실업고 급당 학생수의 대폭 감축으로 상담 및 면대면 지도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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