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장승포 선착장에서 외도 가는 뱃길이 나 있다. 외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바위섬이다. 해안선이 고작 2,3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지만, 봄이 봉곳하게 담겨 있다. 흔히 외도하면 외국에서 들여온 아열대식물과 이국적 풍경을 이야기하지만, 외도는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에서만 관찰되는 우리 난대식물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자생 동백숲을 비롯하여 향나무, 편백, 삼나무, 만리향, 천리향, 조릿대, 마삭덩굴, 신우대, 측백, 복수초 등 우리 자생식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포인트로는, 약수터의 잘 자란 후박나무, 노송 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송악, 나뭇가지가 한쪽으로만 쏠린 늙은 해송, 짧으면서도 제법 그윽한 대나무 숲길 등을 들 수 있다.
원시성 간직한 아비들의 천국 외도를 떠나 해금강까지는 10여 분 거리이다. 바다가 마치 거대한 호수같다. 이 지역은 국내에서 유일한 아비 월동지이다. 배가 지나가면 마치 경주라도 하려는 듯이 아비가 앞서 마구 달려간다. 아비는 오리를 가리키는 ‘압(鴨)+이'에서 나온 말로 이름이 특이해서 한 번 기억해두면 잊어버리지 않는다. 천연기념물인 아비는 우리 나라에서는 1천 마리 정도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아비는 가마우지와 흡사하여 가끔 헷갈리게 하는 잠수성 겨울철새이다. 앞가슴이 희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그러나 아비는 현재 지구상의 조류 가운데 진화가 가장 늦은 새로 알려져 있다. 수면에서 더펄거리며 날아오르는 어설픈 동작을 보면 아비의 원시성을 실감한다.
장승포에서 학동에 이르는 동남부 해안은 곳곳에 아름다운 비경과 포구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해안선과 섬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난대림과 해송숲은 눈맛만으로도 제값을 한다. 특히, 구조라 마을 입구에 잘 자란 팽나무가 인상적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때마침 몇 그루의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거제도의 매화는 2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여 보름 정도 간다.
학동은 몽돌밭으로 유명한 바닷마을이다. 학동 바닷가는 보길도 예송리 바닷가를 연상케 한다. 활처럼 휘어진 바닷가, 그 바닷가에 깔린 몽돌, 그 몽돌을 끝없이 씻어내리는 하얀 파도, 그 파도 위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들…. 그리고 예송리에 예작도가 있다면 학동에는 외도가 떠 있고, 예송리에 격자봉이 있다면 학동에는 가라산이 있고, 예송리에 난대숲이 있다면 학동에는 동백숲이 있다. 학동 선착장 위에 사람들이 모여 낚시를 하고 있다. 미끼를 꿴 낚시바늘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학꽁치들이 낚시를 드리우기 바쁘게 떼지어 덤벼든다. 학꽁치는 이름 그대로 학처럼 길고 뾰족한 주둥이를 갖고 있다. 한 뼘 길이의 긴 몸통에 등짝은 연한 초록색, 배는 은빛이다. 입은 긴 주둥이 아래쪽에 붙어 있다. 겨울이 끝나면 남해안 바닷가에 흔하게 나타난다. 그 밖에도 복어, 노래미, 도다리, 망상어 들이 망태기에 함께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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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먼저 핀 백서향 꽃이 눈부신 섬 몽돌해변이 끝나는 바위해안 위로 동백숲이 그득하다. 학동 동백숲은 소문나지 않아 더욱 아름답다. 동백은 차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 소교목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산다'라는 별호를 지어 노래했다. 이름은 그렇지만, 모든 동백은 바닷바람을 마시고 자라야 튼실하다. 동백숲길은 호젓하고 으슥하다. 숲속은 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사스레피나무와 후박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난대수종이 어우러져 있다. 숲속에는 동박새를 비롯하여 직박구리들이 살고 있다.
가라산은 해발 580미터로 거제도에서 가장 높다. 가라산 위쪽은 활엽수들이 자리하고, 기슭은 동백숲을 비롯해 다양한 상록 난대수종들이 자리하고 있다. 봄볕이 가라산을 솜이불처럼 따사로이 덮고 있다. 봄이 오면 겨울은 그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봄볕으로부터 성적인 자극을 받은 풀꽃들도 모두 고개를 쳐들었다. 묵은 겨울낙엽을 밀어내고 제비꽃도 앙징맞게 꽃을 피웠고, 봄이면 서울 도심에서도 선을 보이는 보춘화도 꽃망울을 내달았다. 잎이 먼저 지고 꽃대만 올라와 꽃을 피우는 백양꽃, 다른 꽃을 시샘해 남 먼저 핀 백서향 하얀꽃도 눈부시다. 난대덩굴식물인 콩짜개난도 나무줄기를 시퍼렇게 기어올라가고 있다.
학동고개 마루에 올라서면 노자산이 우뚝하다. 노자산은 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 겨울에는 풍경이 좀 삭막하지만, 신록이 시작되면 가을 단풍 때까지 숲속이 어두울 정도로 울창하다. 노자산 기슭은 봄꽃들의 세상이다. 겨울의 무게를 얼음장의 무게에다 비유한다면, 봄의 무게는 꽃잎 한 장의 무게처럼 가볍고 경쾌하다. 3월이면 노자산 기슭에서 팔손이나무를 볼 수 있다. 외모는 이국적이지만 거제도 곳곳에 자생하는 상록난대수종이다. 8개의 잎사귀가 마치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져서 팔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봄이면 물을 한껏 머금어 잎이 파랗게 반들거린다. 잎자루는 길고 둥글며, 꽃은 봄에 하얗게 터진다. 거제도 봄꽃은 서울쪽보다 훨씬 빠르다. 내륙에서는 4월이나 되어야 볼 수 있는 것도 이곳에서는 3월이면 볼 수 있다. 노루귀, 구슬봉이, 산자고, 흰얼레지, 냉이꽃, 꽃다지, 참나리,
광대나물, 족도리풀, 졸방제비꽃, 고깔제비꽃, 노랑제비꽃, 이질풀, 봄맞이꽃, 개불알풀, 민들레, 할미꽃…. 구슬봉이는 양지 바른 산기슭을 좋아하는 용담과의 두해살이풀로, 연보라꽃을 한두 송이 피운다. 얼음 속에서도 핀다고 해서 파설초라고도 하는 노루귀는 연한 꽃대가 잎보다 먼저 나와 꽃을 피운다. 밤에는 꽃잎을 닫았다가 아침에 꽃을 여는 얼레지는 밝은 자주색으로 핀다.[PAGE BREAK]고로쇠 수액을 받으려는 발길 이어져 참나무들이 적은 대신 거제도에는 고로쇠나무가 많다. 고로쇠는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지는 활엽수로, 나무껍질은 회청색이며, 얕게 갈라진 가지는 색깔이 좀더 연하다. 잎은 마치 손바닥을 편 것 같고, 철쭉이 지고나면 연한 녹색 꽃이 가지 끝에 핀다. 고로쇠는 겨울숲에서 가장 먼저 봄물이 오른다. 때를 기다렸다가 사람들은 줄기에다 구멍을 뚫어 수액을 받는다. 국유림은 주인이 따로 없다. 그래서 나무에 구멍을 먼저 뚫는 사람이 주인이다. 고로쇠 수액을 너무 뽑아내면 나무의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피부가 건조하면 피부가 거칠어지듯이, 고로쇠나무도 수액을 너무 많이 빼앗기면 나무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거나 잔 가지가 마른다. 수액 채취를 막을 도리는 없지만, 이제는 적당히 절제해야 할 때다. 그 길로 내려가면 산촌리 마을을 만난다. 산촌마을 바다쪽에 둑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수만 평의 습지가 자리하고 있다. 옆으로는 노자산 골짜기와 동부저수지에서 나오는 작은 하천이 흘러들고, 바다와 만나는 기수지역에는 왕모래와 잔자갈로 이루어진 갯벌이 있다. 담수로 채워진 물 위에는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등 몇
종류의 오리류들이 평화롭게 떠 있고, 그 주변으로 갈대와 물억새숲이 풍광 좋게 펼쳐져 있다. 봄이 깊어지면 개개비들이 갈대숲으로 돌아와 요란을 떨 것이다. 하천변 바위에는 굴과 따개비들이 붙어 있고, 게들도 봄햇살을 쬐러 여기저기서 기어나온다. 강물 위에는 백로, 왜가리, 논병아리, 흰뺨검둥오리가 보인다. 그들을 노려 이따금 말똥가리와 같은 맹금류가 나타나 하늘을 빙빙 돈다. 아니나 다를까, 둑방 위에는 힘이 빠진 오리들을 사냥해서 뜯어먹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런데 거제시에서 이 산촌습지를 매립해 농지로 만들 모양이다. 습지를 매립해 농지를 얻느니보다 생태공원을 조성해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 경제적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 생태적 지혜를 갖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목민관이 아쉽다. 산촌에서 해안을 끼고 나 있는 해안도로를 달리면 거제만이다. 거제도 갯벌은 주로 모래와 자갈이 섞인 갯벌들이다. 거제만에 접한 외간리 갯벌도 자갈과 굵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에는 김 양식장 말뚝이 이색적인 풍광을 만들어주고, 먼 바다에는 부표들이 마치 고니떼처럼 하얗게 떠 있다. 육지쪽으로는 갯잔디, 갯사초, 해홍나물 등의 식생이 보인다.
해물탕에 맛보기로 들어가는 눈고둥을 비롯하여 가시굴, 비트리고둥, 따개비 등등 다양한 생물들이 관찰되고, 바람결이 부드러워지면 많은 게들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방게를 비롯해서 이곳 게들은 거의가 육식성게들이다.
3월의 거제도, 동백잎에 내리는 햇볕도 새롭고, 하늘을 나는 새소리도 다르며, 바위섬을 때리는 파도소리까지 겨울소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