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등학생들이 자연계열을 기피하고 대학의 이공계열 진학률도 떨어지고 있어 정책당국자들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여느 교육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따라서 한두 가지 성급한 단기정책방안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기대나 처방을 경계하면서 이 현상의 본질을 분석하여 개선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공계열 기피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하나는 이공계열 인력의 양적 감소의 문제이다. 이공계열의 잠재인력이라 할 수 있는 수능고사의 자연계열 응시인원이나 고등학교 이과반 학생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고등학생 연령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서 이공계열 진학률의 저하는 이공계열인력의 양적 규모의 감소를 의미하고, 이는 곧 과학기술관련 산업분야의 인력난과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의 취업난이라는 인력수급 불균형의 심화를 가져온다.
두 번째는 이공계열 인력의 질적 저하 문제이다. 2002년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자연계열 학생들이 의과대학 등 실용학문으로 집중되고 있고 기초과학과 공학 분야로 진학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초과학과 공학 분야의 우수한 인적 자원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서 OECD 각국에서 이 분야 우수인력의 양성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따라서 우수인력의 이공계열 기피는 국가 경제의 경쟁력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면 학생들의 이공계열 기피 현상의 기저에는 어떤 이유가 깔려 있을까?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을 회피하고자 하는 교육 내적 요인과 이공계열 전공자들의 장래 비전이 불투명하다는 교육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다. 따라서 이 현상의 개선을 위해서는 교육 내적·외적 방안이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을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있다. ‘어려워도, 하기 싫어도, 참으면서 해야 한다’는 사회 규범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상황에서, ‘왜 꼭 해야 하는지’ 하는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을 계속 공부해야 하는 자연계열을 기피한다. 수학과 과학 기피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 대해 친근감을 갖고 수학과 과학의 의미와 재미를 알 수 있도록, 교수 방법과 내용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책당국자들이 교수-학습 방법의 개선을 위한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공계열 출신들의 향후 진로와 관련된 문제는 정보의 부재로부터 오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막연한 불안감과 불안정한 진로라는 실제적인 측면이 병존하고 있다.
[PAGE BREAK]IMF 직후 대졸자들의 취업률이 급감하면서 이공계열 역시 취업률이 상당히 저하되었고, 비교적 취업이 잘 되던 이공계열이었으므로 그 충격이 더욱 컸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공계열 기피현상에는 이와 같은 졸업 직후의 취업 문제보다는 장기적인 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의·약학 분야는 장기적인 진로가 비교적 명확하게 보인다. 또한 인문사회계열 분야의 직업은 변화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지식과 기술의 발전 속도도 이공계열 만큼 급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공계열의 장래 직업비전을 더 불안하게 느끼도록 한다. 이공계열 전공자들의 장래 진로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기피현상은 이공계 출신들의 장래 진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안내를 통하여 일정 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고용환경에서는 어떤 직업이든 생애 내내 그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극히 어렵고 여러 번의 직업전환을 하게 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다른 전공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공계열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중년기에 다양하게 진로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학생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종합적인 직업연구를 통해 다양한 직업 경로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학교는 체계적인 진로지도를 통해 전달해야 한다.
한편, 이공계열 가운데, 특히 기초과학분야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야임에도 방치해 둠으로써 취업난과 낮은 경제적인 대우라는 실제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기초과학에 관심이 있던 우수한 학생들이 순수 물리나 생물을 전공하기보다 의과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우수한 인력을 유치할 수 있도록 좋은 연구환경과 높은 경제적 대우를 제공하는 국책연구소를 설치하고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각 대학이나 직업능력개발 관련기관들은 실제로 과학기술인력들이 장기적인 경력개발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교육이나 연수프로그램을 적극 제공하여야 한다. 최근 어느 대학에서 개설한 공학과 MBA 전공과의 복합 과정이나, 미국 대학원들의 공학분야 전문직업인들에 대한 다양한 직무연수과정 운영 등은 좋은 참조 사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