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읽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상담사례집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것일까? 부모의 손에 이끌려 상담원을 찾은 아이들 중에는 학교에 대한 흥미가 없어져서 또는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생활에 부적응한 아이들이 많이 있다. 어머니가 아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한마디도 안하고 앉아 있다가 상담을 해보겠느냐는 물음에도 고개만 좌우로 흔드는 아이들도 있다. 한동안 요즘 아이들은 무슨 질문을 해도 “그냥” “몰라요” 같은 단답형밖에는 못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말을 하는 대신 그들은 행동을 한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가출을 한다. 청소년 비행은 우울증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말은 안 하면서도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것이 청소년기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학교이다. 이런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과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아이들의 모습
1. 수업시간이 지루한 아이들 2001년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전국의 청소년 1275명에게 실시한 ‘수업중 수면 실태조사’ 결과는 청소년의 학교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체의 18.6%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1시간 이상 엎드려서 잔다고 하였고 자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 수업이 재미없어서,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워서라고 하였다. 수업중에 자는 시간이 긴 학생들일수록 부모와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였고 교사와의 관계, 수업 내용과 수업방법에 대해서도 불만족하였다. 또한 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과 교사 몇 명에 대한 면접조사 결과, 수업중에 잠을 자는 이유는 학생의 경우 과목 및 교사 요인(싫어하는 과목,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과목, 목소리가 작은 선생님 등), 방과 후 활동으로 인한 피로, 학업 수행의 어려움,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생각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반면, 교사들은 좀 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으로 인한 수면 부족, 흥미 부족, 미래에 대한 계획과 희망의 부재, 기초 부족과 같은 학업의 어려움, 학교 부적응 등의 이유와 학교 분위기가 느슨해진 것, 사이버 문화 등 감각적 정보와 재미를 추구하는 문화에 비해 변화하지 않는 학교 문화 등을 이유로 지적하였다.
이상의 결과를 보면 청소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소규모 학급운영으로 인성교육까지 책임진다는 보습학원들보다도 열악한 곳처럼 보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습학원의 강사가 시험이 끝날 때마다 전화를 해주는 것은 관심이요, 학교의 교사가 전화를 거는 것은 아이가 문제나 통보하는 가슴 철렁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부모와 학교, 그리고 교육제도가 손발이 안 맞아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교실에서 무력하게 잠자고 있다. [PAGE BREAK]
2.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해요.” 한 어머니가 울먹이고 있다. 험한 세상에서 여자 혼자 몸으로 아이 키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어렵게 키운 그 아이가 학교엘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유는? 폭력이다. 욱하는 성격을 참지 못하고 반 친구를 쳤는데 코뼈가 주저앉았다. 꾸짖는 선생님 앞에서 분을 참느라 주먹을 불끈 쥔 것이 처벌의 수위를 높였고 아이는 스스로 자퇴를 선언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어머니는 밤새 친구들과 놀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애쓰다 지쳐버렸다. 아이를 폭력범 취급하는 교사와 학교에 대해서는 섭섭하고 힘이 없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서럽기까지 하다. 결국 아이는 자퇴했고 어머니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수용해주는 만큼 묵은 감정들이 해결되면서 아이는 검정고시를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훈육과 처벌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아이를 학교로 돌아오게 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으로 수용되는 경험이었다. 학교 밖은 얼마나 유혹이 많은가.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은 충분히 벌 수 있다. 옷, 화장품, 술, 담 등등. 필요한 것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구할 수 있으니 인정받지 못하고 지루하기만 한 학교에 있는 것보다 빨리 나와 돈을 벌어 즐겁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처벌은 두렵지 않다.
3. 교사에 대한 기대가 있는 아이들 학교에서 아이가 맞았다. 가해자는 학교 폭력의 주범. 이전에도 여러 아이들이 맞았다. 어머니는 학교에 가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학교에서는 문제가 확산되어 외부로 알려질까 우려하여 조용히 덮어줄 것을 종용하였다.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을 해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피해자가 나올 것이 아닌가, 학교에서 이런 것을 가르쳐서야 되겠는가? 어머니는 분노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황당하게도 남들은 알아서 피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했느냐는 것이었다. 그 전부터 여러 가지 비상식적인 경험을 했던 아이는 학교가 싫다고 했고, 부모는 머리를 싸매고 며칠을 고심한 끝에 아이가 원하는 대로 유학을 보내기로 했다. 외국에 나가 살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고지식한 어머니는 아이를 혼자 보내놓고 밤마다 아이가 보고 싶어 운단다. 단 한 명이라도 상식이 통하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한국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이의 말을 생각하면서.
극단일 것이다. 한 쪽 이야기만 들었으니 오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의 마지막 말, “단 한 명이라도 상식이 통하는 선생님이 있었다면…”이라는 말이 귀에서 맴돈다. 상식이 통하는 학교,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님에 대한 기대를 마지막까지 갖고 있었을 그 아이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나 대우가 어떠하든 아이들은 교사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상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온갖 냉소적인 호칭을 사용하면서도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는 이처럼 큰 것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1.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이해해주자 에릭슨(Erikson)에 의하면 사람은 8단계의 발달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각 시기마다 수행되어야 할 독특한 발달과업이 있다. 그 8단계 중에서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은 자아정체감 형성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등등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분명한 정체감을 형성하느냐, 아니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정체감 혼미에 빠지느냐 하는 위기를 겪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PAGE BREAK]정체감 형성 과정은 자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같다. 다양한 상황과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역할들을 시도해 보고, 아동기까지 어른들에 의해 주입되었던 가치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 미지의 것을 탐색하는 과정은 불안과 두려움을 수반한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알 수 없고 낯선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가 말이다. 더욱 나쁜 것은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들고 낯설고 두려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에게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기 안의 많은 모순들과 불안정한 정서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혼란에 귀기울이고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부모가 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학교에는 아이들을 잘 이해하는 선생님들이 있어야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이야기해도 좋을까, 야단이나 맞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선생님을 찾을 때 그들의 그런 불안까지 공감하면서 편안하게 자신을 열고 탐색하게 해주는 이해심 많은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생후 1년 된 아기와 어머니의 관계를 일정기간 관찰 연구한 아인스워스(Ainsworth)는 아이와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어머니에 비해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였고 적절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2차 성징의 발현을 비롯한 신체적 변화와 그로 인한 정서의 변화를 겪게 된다. 청소년이 처해 있는 독특한 발달단계와 과업들에 대해 잘 이해한다면 그들의 변화에 민감하고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2. 상담자적인 마음을 갖자 교사의 주 업무는 교과지도와 생활지도이다. 각자 담당한 교과목의 전문가로서 지식을 전수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으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문제와 급속한 사회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학교 상담에 대한 요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상담이 학교현장에 도입된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학교 상담실 운영 형태를 보면 상담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단기간의 상담교육을 받고 교도교사로 임명된 교사가 주로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고 현재는 진로상담교사로 명칭이 바뀐 상담교사와 담임교사 혹은 교과 담당 교사가 면담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또한 단기교육을 받은 학교 상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집단상담과 개인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상담교사나 자원봉사자들은 단기교육이라도 받지만 대다수 교과담당 교사들은 상담이나 생활지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교과지도 능력이 뛰어난 교사라고 해서 상담도 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담은 문제 행동을 처벌하고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갖고 있는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보다 전문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은 상담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과지도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연수를 받는 것처럼 상담이나 생활지도를 위해서도 전문적인 교육과정이나 연수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모든 교사가 전문적인 상담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교육과 연수를 받음으로써 상담자적인 태도와 마음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미 청소년 문제가 발생한 뒤에 조치하는 것은 늦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며 문제 예방에 있어 학교의 역할이 중요함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모든 교사가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들으려는 마음과 적절한 기술을 갖고 있다면 청소년의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며 필요한 경우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기관이나 시설에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 [PAGE BREAK]3. 가족, 지역사회와 협력하자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협력해야 한다. 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청소년들을 잘 키우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배워야 할 기본적인 것조차 익히지 못한 채 학교에 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가정에서는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이리저리 책임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가정과 학교가 연계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어머니는 학교에서는 예의바르고 서글서글한 아들이 어느 날부터 부모에게 반항하고 형제들과 싸우기 시작했는데, 이런 아이의 문제를 교사에게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행여라도 담임교사가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되면 오히려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사실 그 아이를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좋은 점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학교의 교사였을지도 모른다. 독립과 의존의 갈등을 겪으면서 자기를 형성해 가는 청소년기에는 부모보다 교사의 역할이 더 크고 중요하다. 독립과 의존을 반복하며 시험할 때, 독립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며 의존하게 해주고 다시 독립을 시도할 힘을 북돋아주는 사람이 교사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협력해야 할 대상에는 (상담전문교사가 있다면) 학교의 상담교사나 외부의 전문 상담자도 포함된다. 교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전문 상담자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담임교사는 마치 부모와 같이 반 아이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반 아이가 상담교사를 찾아가는 것을 섭섭해하거나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담임교사의 학급경영 능력이나 생활지도 능력의 부족으로 인식될 거라는 두려움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상담교사와 담임교사가 분리되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아이의 입장과 상관없이 내 아이는 내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담임교사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오히려 좀 더 깊은 상담이 필요한 아이를 학교상담실이나 외부의 전문상담기관에 적절하게 의뢰(refer)할 수 있는 것이 담임교사의 능력이라 하겠다.
나오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꽃밭이어야 한다. 수백송이의 꽃이 어우러져 피어있는 아름다운 화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에는 시들시들 자고 있거나 자의 반 타의 반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을 깨우고 학교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훈육과 처벌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여 그것을 꽃피우게 하려면 사랑의 눈으로 그것을 발견해 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 그 어느 곳이건 단 한 명이라도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학교는 그리고 교사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 상처를 회복시키기도 하는 존재이다. 한 사람 교사에 의해 아이의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기도 하나, 이해하고 수용하며 귀기울여 주는 한 사람 교사에 의해 극적인 변화와 성장이 가능한 곳이 학교인 것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우러져 피어나는 것이다. 모든 교사가 한 아이 한 아이의 개성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려는 상담자의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는 학교, 그리고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