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많이 달라졌다지만 변화가 느린 것도 많다. 두꺼운 교과서와 참고서, 그 때문에 입이 벌어지는 책가방, 어깨가 반쯤은 쳐진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세상인데 이 오래된 풍경은 언제쯤 바뀔까. 휴대폰처럼 작은 도구에 교과 내용이 전부 들어가고 컴퓨터만 켜면 다양한 참고자료들이 튀어나와 언제든지 학습할 수 있다면 아이들의 고통을 그만큼 덜어지지 않을까.
IT 기술의 발전은 그 동안 학교 시설에서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자연히 교수-학습에서도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전자교과서에 대한 논의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ICT를 활용해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교과서와 교과서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점차 증대되고 있다. 기존 교과서제도로는 폭주되는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제3차 정보화촉진기본계획안에서도 교과서의 단계적 디지털화 작업이 포함됐다. ICT가 활용이 아니라 생활이 될 시간이 머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자교과서는 학교에서 교육을 위해 사용되는 학생용의 주된 전자도서로 정의된다. 기술의 형태에 따라 온라인(네트워크)형과 오프라인(패키지)형, 개발 방식에 따라 교과별과 통합교과형, 사용 용도에 따라 주교재와 보조교재로 구분된다. 또 학습자와의 인터페이스 기반에 따라 PC, 전용단말기, PDA 등으로 나눠진다. 현재 국내에는 학교의 교실학습을 위한 전자교과서 컨텐츠, 전용단말기 등의 모습은 거의 없다. 업무용 PDA, 포켓PC 등에서 구현되는 E-Book 등이 대표적인 전자책의 형태다. 공부를 하기 전에 책만 보고도 겁에 질리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은 전자교과서 필요성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종이와 연필에 의존한 학습으로는 정보화시대의 교육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이유가 그 중심에 서 있다.
전자교과서는 교육적 측면에서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여러 해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공교육의 교단 선진화와 정보화를 촉진하고 학습자의 학습 효율도 대단히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종이 교과서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지금까지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사회에서 교과서로 사용되기에는 많은 제약을 안고 있다. 전자교과서를 이용하면 종이교과서보다 교과 내용의 수정과 보완이 쉬워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지속적으로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링크를 통한 원격학습과 협동학습 등이 가능하다.
자연히 다양한 수업형태가 가능하기 때문에 교육적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교재 내용을 교사나 학생이 쉽게 수정하고 첨삭할 수 있어 각 상황에 적합한 능동적 수업을 할 수 있고, 개별 심화수업도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 또한 전자교과서가 갖는 중요한 특성인 멀티미디어 학습은 시청각 장애인 등이 정상인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통합교육을 가능하게 해주고, 때와 장소의 제한이 적기 때문에 국민의 평생교육에 활용할 수도 있다. 주변적인 이야기지만 전자교과서 보급이 늘면 교과서 분배를 위해 소요되는 유통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전자교과서의 멀티미디어적 요소는 청소년들의 학습동기를 유발하는데도 적합하다.
외국은 시작… 우리도 서둘러야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이 최근 수행한 ‘전자교과서 개발 및 적용을 위한 실행방안 구체화 연구’에서 전국의 교사, 교육전문직, 교육유관기관 연구원, 정보통신 관련 전문직, 출판사 관계자 27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자교과서 개발의 필요성에 대해 74.9%가 바람직하다고 응답해 전자교과서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대상자 중 찬성의 이유(중복응답)로는 내용의 수정 및 업데이트 용이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정보 전달, 학습자들이 흥미롭게 학습 주도, 교수활동에 도움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PAGE BREAK]전자교과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4.9%가 서책형 교과서의 내용을 보충해주는 참고 또는 보조자료라고 답했으며, 완전히 독립적인 교과서로의 역할 수행은 20.3%로 나타났다. 이는 특히 교사에 있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85.3%).
전자교과서 형태로는 PC 38.0%, 노트북 24.4%, E-Book 전용 단말기 19.2%, 개인휴대단말기 PDA 15.1%, 휴대폰 또는 이동통신 단말기 2.2%로 나타났다. 전자교과서의 기본적인 기능에 대해(중복응답) 84.1%가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 제시기능이라고 답했으며, 다양한 학습 지원 기능과 인터넷 커뮤니티 지원 기능이 70.5%와 69.4%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도입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는 대답이 98.9%로 조사됐고 반면에 향후 교육과정부터라고 응답한 비율은 0.4%로 매우 저조했다.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서는 전자교과서 활용에 있어 진일보해 있다. 미국에서는 PC를 기반으로 하는 원격교육용 전자교과서가 있고 전용단말기를 기반으로 한 전자교과서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실험적인 프로젝트 형태로 전자교과서를 개발하고 있다. PC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교과서 제공의 경우를 보면 영국 개방대학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 설립된 원격교육 연구기관인 Annenberg/CPB는 미국의 생활사를 시대별로 구분하고 해당 시대의 특징적인 그림과 사진 등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하는 A Biography of America를 제공하고 있다. 26개의 비디오 시리즈를 웹의 형태로 지원하는 형태다. Awesome 전자도서관의 경우에는 수학, 과학, 미술, 언어 등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육 컨텐츠를 제공한다. 수많은 도서관들과 연계해 1만6000건의 컨텐츠가 지원된다. 이밖에 Virginia주 Celebration 중학교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과학교과서를 재미있게 구성한 새로운 웹사이트를 통해 학습하고 있다. 도표를 포함한 학습 내용들이 오디오와 비디오 형식으로 제공된다.
전용단말기 기반은 동남아쪽이 활발한 상황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2001년 6월부터 50개 학교, 약 400명의 중등학생과 650명의 교사들이 Psion netBook라는 전용단말기를 이용하고 있다. netBook은 학교와 lq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학습할 수 있도록 유선과 무선 기능을 갖춘 단말기다. 집에서는 전화선 케이블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학교에서는 무선으로 연결된다. 만약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2004년까지 모든 시에서 전자교과서로 교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싱가포르에서는 eduPAD라는 휴대용 단말기를 이용한다. eduPAD의 칩에 모든 책을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며 스크린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노트 필기도 한다. 사전 기능도 이용할 수 있고 정확한 발음을 자체 스피커를 통해 지원한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실제와 유사한 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새로운 교수-학습법 전제돼야
그러나 전자교과서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해서 수년 안에 전자교과서가 활용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활용된다고 하더라도 기존 교과서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완전 대체보다는 보조 학습교재로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시·도교육청에서는 교과 내용의 사진자료나 동영상 자료를 탑재한 초보적 형태의 전자교과서를 개발해 시험 적용하고 있다. 전자교과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논의일 뿐이다. 관심이 높아지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지 공교육 차원의 도입이 결정된 것이 아니다. 전자교과서가 도입되기까지는 많은 과제들은 그 이후의 문제다.
전자교과서가 단순하게 기존의 교과서를 디지털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교육목적 수립과 새로운 형태의 교수-학습 방법의 도입 등을 전제해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교육 체제를 설계하고 어떤 방법으로 기존 교육과정과의 통합 운영을 이뤄낼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비용과 학습효과, 하드웨어 및 관리 체제 지원 문제, 교사들의 전자교과서 친숙도 등 다양한 요인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또한 교육과정심의회 규정 개정, 교과용 도서에 대한 규정 개정, 디지털 자료에 대한 저작권 확보 방안 등에 대한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가르치는 주체인 교사들에 대한 연수 문제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사항이다.
[PAGE BREAK]전자교과서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수업모델이 개발돼야 하고 다양하고 질 높은 콘텐츠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어쩌면 이 부분이 그 동안의 교육정보화 추진을 집약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교과서 검인정제도에서도 필요시마다 내용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보사회가 갖는 지식과 정보의 빠른 변화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 문제는 가장 큰 난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 따르면 전자교과서를 전달하는 매체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PC 기반은 약 11조6597억원이, 전용단말기로는 7조2365억원이 소요된다. 또 전자교과서 개발비용을 산정하면 교과서 1종당 평균 5000만원∼6800만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일반계 초·중·고등학교와 특수학교의 232종 교과서를 고려한다면 약 116억∼157여억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자교과서의 시범운영을 위해서는 학교당 12억3800만원씩 전국에 64개의 시범학교를 운영하자면 792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또 교원 연수를 위한 연구종합계획 수립 및 사이버 연수 시스템 구축·운영에 따른 비용을 산정하면 1451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기존의 교육정보화 사업을 진행했던 예산보다 훨씬 많은 규모의 예산이 필요한 셈이다. 정부차원의 결단이 따르지 않는 한 쉽게 손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학교나 가정에서 전자교과서가 효용성 있게 쓰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 동안의 교육정보화 추진과정에서 알 수 있듯 얼마나 충실히 이를 대비하느냐에 따라 그 결실의 크고 작음이 가려질 것이다. 전자교과서는 컴퓨터에 익숙한 청소년이 사용자층으로, 외국어 및 과학, 음악 등의 과목에 특히 효과적인 학습매체다. 전자교과서 보급 노력이 바람직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기업, 학교가 그 역할을 제대로 분담하고 착실히 이행해야 한다. 전자교과서 도입이 교육 체제에 큰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므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정보화가 꽃 피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