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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반문맹(半文盲) 문자정책 경쟁력 없다

진태하(명지대 교수)


우리 나라 초등학교에서 왜 한자(漢字) 교육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은 마치 초등학교에서 왜 국어 교육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같은 우문(愚問)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 있어서 한자는 외국어를 학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어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국자(國字)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그 중에서도 법률·경제·의학·공학 등 전문용어에 이르면 95% 이상이 한자 어휘로 되어 있는데도 한자를 초등학교에서는 가르치지 말고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나라 학생들에게 국어 교육의 기초과정을 학습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漢文’ 과목이 설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제2 외국어의 한 과목으로서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는 데다 대학 수능시험에서 ‘漢文’이 출제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별로 열심히 학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생이 선택하지 않을 때는 중·고교 6년 동안 ‘漢文’을 전연 학습하지 않고 졸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국어 어휘의 대부분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교육과정에 없어서 한자를 배우지 못하고 중·고교 과정에서는 대학 입시 준비에 밀리어 한자를 학습하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로 배출되었을 때, 학생들은 부득이 반문맹(半文盲)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반세기 동안 이와 같은 문자정책으로 인하여 중·고등학교 학생은 물론, 대학생들까지도 일상 신문이나 교재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심지어 호적에 등재된 자신의 성명도 올바로 쓰지 못하는 기막힌 결과를 초래하였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 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각 대학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장서(藏書)를 읽을 젊은이들이 없어서 거의 사장(死藏)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대가 오래된 고서가 아니라 당대의 서적을 대학생들이 읽지도 못하는 현상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오늘날 지식산업시대에 있어서 이처럼 교재 자체를 읽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 어디에 가서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렇게 반문맹으로 만든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지능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부의 문자정책이 잘못되어 초래된 결과이다. 일부 한글 전용론자들은 한자를 가르치지 말아야 자연적으로 한글 전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국가 민족의 장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한글 전용의 목적만을 성취하려는 반시대적, 반사회적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곧 하향평준화의 우민 정책인 것이다.
과거 일제가 침략하여 우리말을 말살하려고 하던 시대에 한글 운동은 애국운동임에 틀림없었으나 광복이 되자 여론도 수렴하지 않고, 일 개인의 주장에 의하여 한글 전용 정책을 실시한 것을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은 위정당국에서 일반국민의 문맹퇴치 정책에만 급급하고, 전문지식인을 배양하는 정책에는 소홀히 하였음을 시급히 각성해야 할 것이다. 한글 전용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세계에서 한국이 문맹률이 가장 적은 나라로 만든 공은 인정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신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고등문맹(高等文盲)을 배출하는 문자정책을 더 이상 끌고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모순된 문자정책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우리의 유구한 전통문화는 단절되고, 국제 지식산업사회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는 문화위기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실은 이미 심각한 문화위기에 처하여 있는데도 위정당국이나 일반국민이 그 심각성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21세기는 동북아시대가 도래된다고 세계적인 석학들이 예견하고 있다. 동북아시대는 곧 한·중·일의 한자문화권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자만을 사용하고 있는 13억 인구의 중국과 유치원에서부터 논어를 가르치고 있는 1억 3000만 인구의 일본 사이에 위치한 한국에서 오로지 한글만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 어리석은 아집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개인적으로 손해일 뿐만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되는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한자 학습은 학문이 아니라 도구교육(道具敎育)이기 때문에 학습능률이 가장 높은 6세에서 13세, 곧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한자를 교육해야 함은 다시 왈가왈부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우리 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역대 교육부 장관 열세분이 최근에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시급히 촉구하는 건의문을 대통령과 정부에 제출한 것은 어떠한 여론보다도 중차대한 우국충정의 제의가 아닐 수 없다. 위정당국은 집단이기에서 주장하는 일부 한글전용론자들의 의견에 좌고우면(左雇右眄)하지 말고, 국민 대다수의 여론을 하루속히 수렴하여 조속히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실시하는 것만이 당면한 이 나라의 문화위기를 극복하는 첩경이라고 재삼 강조하고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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