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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역사적 사고력을 키우게 하자





역사적 사고력은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역사문제에 관하여 가설을 설정하고 사료를 수집하여 가설을 검증하면서 역사이해에 도달하려는 의도적이고 복합적인 정신활동을 수행하는 정신적 조작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최상훈(서원대 교수)



역사교육의 목적

학교에서 역사를 왜 가르치는가? 이 질문은 역사교육의 목적을 의심하는 저의가 담겨 있다. 근래에 들어 학계나 학교교육 현장에서 역사학과 역사교과의 위상이 실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과 대안 모색을 위한 노력이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대개 집안 잔치로 끝나버리고, 역사학이나 역사교육의 가치를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역사의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그리 소용이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인가 어느 교육부장관이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한 이후, 학생들은 더더욱 기본적이고 폭넓은 공부를 하기 싫어하였고, 그 결과는 말초적이고 즉각적이며,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골치 아프고 공부할 양이 많은 역사교과는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실용성이 모든 가치의 근본인 양 행세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역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역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일종의 신념이나 종교와 같은 것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의 가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거나 늘어나게 해서는 인간의 삶이 점차 황폐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포교를 하는 심정으로 역사의 가치를 강조하고 유용성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역사교육은 여러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은 현재의 뿌리가 되는 과거를 알고 싶어했다. 따라서 현재에 남아있는 과거의 갖가지 흔적을 더듬어 과거의 모습을 밝혀내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였다. 과거를 기록하는 행위는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역사는 현재 문제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지식이므로, 인간은 역사를 통해 현재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문제 상황에 접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인간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과거의 많은 사례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동일한 사건은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역사학도 사건의 일회성이나 특수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재와 똑같은 과거의 사례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은 재발하지 않지만 사건이 처한 상황이나 특성은 다시 나타날 수 있으므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구석기 시대 이래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얻으면서 생활해 왔다. 가정부터 국가까지 인간이 형성한 사회는 나름대로의 유산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의 사회는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구성원의 동질감과 정체성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사회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조상들의 유산을 전수할 필요가 있어서 역사를 통해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였다.
[PAGE BREAK]이러한 목적을 지녔던 역사학은 19세기말까지만 하더라도 실용적이고 진보적인 학문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렇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역사학은 방법론 면에서 특별한 진보를 거두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구식의 학문으로 치부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역사학계에서도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경제사, 사회사, 심리사 등을 연구함으로써 변신을 꾀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역사의 본질이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리고 근래에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는 역사학 자체의 존립 근거를 비판함으로써 역사학의 입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인간과 역사의 꾸준한 진보를 의심하고 부정하였으며, 역사는 역사가가 구성한 작품일 뿐이므로 역사적 진리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포스트모더니스트 중의 한 사람인 화이트는 역사적 진리의 허구성을 밝히고 문학과 역사 간에는 실제로 뚜렷한 경계가 없다고 말하였다. 화이트는 역사의 사실이 발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역사가의 활동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역사학의 고유한 특성이라 믿어온 실재적인 연구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주장이 한 시기를 풍미하였지만, 역사학의 학문적 성과와 존립가치를 무너뜨리지는 못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진실이 존재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고 믿고 그들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역사교육의 목적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역사적 사고력의 육성이다. 역사적 사고력은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역사문제에 관하여 가설을 설정하고 사료를 수집하여 가설을 검증하면서 역사이해에 도달하려는 의도적이고 복합적인 정신활동을 수행하는 정신적 조작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고력은 연대기 파악력, 역사적 탐구력, 역사적 상상력, 역사적 판단력이란 하위영역으로 구성된다.
연대기 파악력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중시하고 인간의 삶과 여러 현상을 연대기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능력을 말하고, 역사적 탐구력은 역사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인지, 가설설정, 사료수집, 사료비판과 해석, 가설검증, 결론도출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데 발휘되는 능력을 뜻한다. 역사적 상상력은 역사증거의 단편성과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능력으로 부족한 증거를 메우거나 증거에 빠져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능력을 말하고, 역사적 판단력은 사료를 선택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가치판단을 함으로써 종합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능력을 뜻한다.
역사적 사고력의 신장을 통해 학생들은 오늘날의 사회가 직면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획득할 수 있고,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맞부딪치게 될 중요한 문제에 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적 성숙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학교에서 역사교육을 실시할 때 역사적 사고력의 육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역사교육의 내용

역사수업 시간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역사 교사나 역사학자 및 역사교육연구자들은 모두 중요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라는 다음 질문에 이르면 답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에 대해 합의된 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PAGE BREAK]대체로 중요성이란 본질적 중요성과 도구적 중요성으로 구분된다. 본질적 중요성은 사실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가치 때문에 중요시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도구적 중요성은 다른 사건이나 후대에 미친 영향 때문에 중요시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중요성이라는 말은 가치 판단을 내포하는 용어이므로 사람들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관해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다시 말해 국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고 역사교사들은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이에 대한 반발이 전국역사교사모임을 통해 나타나게 되었고,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라는 대안 교과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사 배움책’이라는 교재를 둘러싼 파동도 생겼다. 이러한 현상은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역사교사의 고민과 주장이 표면으로 나타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역사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수해주는 과거의 수동적인 처지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 동안의 역사수업이 죽은 지식만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과정이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지식을 학생들이 스스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을 위주로 학생의 눈높이에서 교과서를 구성하려고 시도하였다. 그 결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인가? 역사는 과거를 다루지만 항상 현재와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 현재가 고려되지 않은 역사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현대사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현대사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 많고 왜곡되어 있는 부분도 많으므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 최근의 한국 근현대사 파동이나 현대사 배움책 파동 역시 이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학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대사 이전의 역사를 다룰 때에도 현재와의 관련성과 역사적 사건의 현재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두 번째 답은 신문화사나 미시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에 서양에서 등장한 신문화사, 혹은 미시사의 분야는 종래의 정치사나 전체사에서 경시하였던 새로운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새로운 분야는 그 동안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피지배층, 약소 민족 등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각시켰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역사가 지배층 중심의 정치사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학교의 역사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역사에 대해 지루해 하고 관심이 멀어졌던 원인 중의 하나는 역사에서 다루는 인물이 자신과 너무 동떨어진 뛰어난 인물인 데다가,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학생들을 역사수업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학생들 자신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 관련 소품이나 문화재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사가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PAGE BREAK]
역사교육의 방법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역사교과뿐만 아니라 근래에 학교에서 교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화두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하게 가르칠 수 있을까?’일 것이다. 역사교사들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말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온갖 소도구를 동원하여 ‘쇼’를 하고,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다양하고 화려한 수업을 하며, 채찍과 당근을 활용하여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금방 싫증을 내고 무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역사수업의 방법은 학생들을 활동시키는 것이고 다양한 수업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능력과 취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양한 수업방식을 통해 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근래에 등장한 구성주의 학습이론에 따르면 학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교사가 어떤 내용을 열심히 가르친다고 할 때 모든 학생들이 그것을 맹목적으로 똑같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수학습이나 선행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게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지식을 스스로 구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역사교사는 다양한 자료와 견해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에 적절한 수업방식은 어떤 문제에 관하여 시책이나 개혁방안 등을 작성하는 글쓰기 수업이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발표수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을 역사교육에 도입하여 학생들이 역사를 직접 작성하는 수업을 강조하기도 한다. 역사는 역사가의 작품이므로 학생들도 역사가처럼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학생들의 사고와 자료 해석이 미숙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활용할 필요가 있지만, 역사가 해석의 학문이고 항상 새로운 견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인식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역사는 가치와 판단을 다루는 교과이다. 따라서 교사는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투입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학생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횡포이다. 물론 구성주의 관점에 따르면 학생들은 알아서 나름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교사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지만, 영
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자료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적합한 수업이 토론 수업과 사료를 통한 탐구학습이다. 이 때 교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되 다른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료학습을 통해서 학생들은 사료의 의미와 취급방법을 숙지함으로써 역사학이 어떻게 연구되고 사실을 밝혀내는가를 알아야 한다.[PAGE BREAK]
역사교육의 미래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역사는 존재한다. 혹시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인간이 과거로 가서 과거의 모습을 샅샅이 뒤지고 과거의 인물과 인터뷰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역사는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가 올 때까지는 인간에게 역사가 관심의 대상이고 필요한 학문의 영역이다.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역사가 필요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실용성 지상주의가 판을 치더라도 역사는 여전히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학습을 통해 학생들에게 인내심을 길러 주고 지혜를 얻게 하며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알게 해준다. 오늘날과 같은 경박한 세태 속에서도 신중하고 사려깊은 인간이 되게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영상화되는 속에서도 역사학습을 통해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해주고 어떤 정보가 가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 제7차 교육과정이 시작된 것이 3년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제8차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과정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과거의 예처럼 몇몇 사람이 밀실에서 만들어 공포함으로써 많은 반발을 사게 되고 졸속으로 수정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의 제작은 공론화되고 장기간에 걸쳐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튼 다음 교육과정에서는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국사도 1종에서 2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 때문에 1종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다양성의 사회이고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민주사회이므로 1종 교과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따라서 국가는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교육과정만을 제시하고, 교과서 제작이나 교육 자체를 학교와 교사에게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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