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다.
바로 이정명이다.
친구 정명이는/ 형편이 안 좋은/ 애이다.
우리 집에 오면/ 엄마는 내 친구를/ 챙겨주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우리 반 친구는/ 정명이가 너무/ 가난하다고 때린다.
나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정명이가 불쌍하다.
또 어쩔 때는/ 학교에 오지 않는다.
지금도/ 학교에 오지 않아/ 정말 걱정이 된다."
지금 우리 경제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계층간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더욱이 1997년 IMF 사태가 오고 이후 사회적으로 계층 격차가 커졌다. '내친구 이정명'이라는 제목으로 한 초등학교 학생이 쓴 시는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지금 학교에서의 계층 격차는 어떠한가? 부유한 지역의 학생들은 한 달에 수백만원 하는 과외를 하고 방학이면 해외어학 연수를 떠난다. 2001년 서울대의 신입생 중 부모가 고위 관리직, 전문직인 부유층 자녀가 절반을 넘는 53%를 차지할 정도로 교육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서울대에 BK21 자금의 50% 이상이 가는 등의 교육적 차별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가난한 계층의 학생들은 '여러 줄 세우기 선발정책'이나 창의력 평가에서 오히려 불리한 경쟁만이 주어진다. 가난한 계층의 학생들은 주5일제 수업과 같은 개혁 정책에서도 급식이 줄어들까 걱정이 앞선다. 가난한 계층에게 이러한 정책들이 불리하다 하여 이것들을 개혁 노선에서 지우라고도 할 수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을 보여준다.
지금 교육정책 당국자들이 학교와 교사들이 일부러 계층 격차를 부추기지도 않았다고 말해도 그리 무리는 없다. 실제 IMF이후 정부는 중학교 의무교육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결식아동을 위한 무료급식 지원을 실시하였고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특기적성 교육 활성화 정책도 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격차들은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IMF 사태 이후 그 역작용으로 일어났던 신자유주의 풍조가 교육을 통한 계층 격차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지금 우리 교육계에는 교육 격차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교육정책 밖의 일이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교육학계에서 소외 학생들에 대한 조명도 그리 많지 않거니와 교육 관련 기사에서도 이들의 소외된 삶을 비추는 일은 많지 않다. 소외 학생의 문제는 교육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밖의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옳지 못하다. 학교는 학생이 부유한 부모의 아이이든 가난한 부모의 아이이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학교는 장애아이든 비장애아이든 이들에게 똑같은 학습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학교 자체의 문제 때문에 부적응을 겪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이러한 신성한 의무를 제1차적으로 수행해야 할 기관은 다름 아닌 학교다. 학교가 소외 학생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내 친구 이정명'처럼 지금 학교에서 소외 학생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학교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우리는 소외 학생들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과연 학교는 소외 학생들을 통해서 어떻게 스스로 변화되어야 하는가?
2. 소외 학생의 범주
소외(Alienation)를 문자 그대로 표현하면 원래의 것 혹은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떨어져 존재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신의학에서 소외란 정신 이상(mental disorder)을 의미하며 사회학에서 소외란 인간들의 관계 상실을 의미한다. 철학에서 소외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 즉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소외 학생이라 하였을 때의 소외는 학생으로서의 정상적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소외 학생이라는 용어 대신에 청소년계에서는 '소외 청소년'이라는 개념을 흔히 사용한다. 청소년이라는 법적 정의는 1990년에 제정된 청소년 육성법에서는 9세에서 24세의 인구로 규정되어 있으며 일반적 관념상으로는 중·고등학교 학령대에 속하는 13세에서 18세의 인구로 규정되기 때문에 소외 청소년이라는 개념은 유·초등학교의 연령 인구가 배제된다는 한계를 갖는다. 반면에 소외 학생이라는 개념은 유·초등에서 대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연령대에서의 소외를 말하기 때문에 학교가 무언가를 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연령층은 모두 포괄한다. 그렇지만 이미 학교에서 내몰린(push-out) 청소년은 또다시 소외되는 한계를 갖는다. 한준상(한준상, 1999)은 이들을 '교육 소외 청소년'이라 부른다.
이러한 개념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외 학생이라는 용어에는 모든 청소년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데 이들이 학교 중단의 위기 상태에 내몰리고 있는 절박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학교가 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용어이다.[PAGE BREAK] 일반적으로 극빈자, 결손 가정 학생, 부적응 학생, 소년소녀 가장, 장애아, 결식 아동 등의 다양한 표현들은 소외 학생의 일반적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들이다. 만약 이러한 일상 용어를 보다 개념적 범주로 표현한다면 크게 경제적 빈곤, 가정 해체, 육체적 질병 및 장애, 정신적 부적응 등의 4가지 요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소외 학생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사호보장기본법에 따른 국가적 지원 그리고 학교 자체에서 운영하거나 각종 민간기관에서 제도적으로 운영하는 지원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면 세부적으로 이들 삶을 이해하고 어떤 지원들이 존재하는지 살펴보자.
3. 소외 학생의 지원 상황
경제적 빈곤은 생계비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을 의미한다. 경제적 빈곤은 이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소외, 정서적 위축, 가족 구조적 해체, 낮은 교육기회 등의 보다 중첩적 문제를 낳는다. 빈곤층이 가진 소외 현상은 열악한 소득에 의한 생활 불안정, 지속적인 주거 불안정, 불안정한 고용 상태, 자녀의 방치, 빈곤화에 따른 가족해체 등의 현상과 직간접으로 결부되어 있다.
절대 빈곤 학생에게 투여되는 공적 부조는 다음과 같다. 국민기초생활보장비로는 소득 및 가구규모에 따라 월 3만원에서 32만원까지 지급된다. 총 급여액은 최저생계비 전체를 지급 받는 것이 아니라 최저생계비에서 가구소득과 타법에 의한 감면액을 뺀 차액을 보충적으로 지급 받는다. 이 중에서 저소득층 학생은 10% 추가 지급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적은 기초생활비로는 소외 학생의 복지적 욕구를 제대로 채울 수 없다.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정부 장학금 수혜자 수는 연 40만명 정도이다. 학비지원 절차는 학교에서 모든 학부모(보호자)에게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 학비지원 신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통신문 발송→학비지원을 희망하는 학부모는 '학비지원신청서'를 작성해 학급 담임교사에게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신청→학급 담임교사는 신청자 중에서 지원대상 학생을 선정해 학교별로 구성되는 학생복지심사위원회에 추천→위원회의 심의·결정을 거쳐 학비 지원 등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올해의 결식 아동에 대한 급식지원 대상은 약 20만명 이지만 일선에서는 턱없이 부족하여 아직도 굶는 학생들이 많다고 호소한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지급된 급식비를 어른의 술값으로 치르는 사태가 발견되기도 한다. 학교가 열리지 않는 방학과 휴일이 되면 급식이 지원되지 않아 결식 학생들은 오히려 방학이 두려워진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급식 받는 것을 꺼려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정부는 결식 아동 학교급식 지원 대상을 올해 19만7000명에서 내년 30만5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장애는 지체장애, 시작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 등으로 분류된다. 1977년부터 특수교육 진흥법을 제정하여 장애아동에 대한 교육을 통합교육으로 하려는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의 실정은 아직도 통합교육이 적절히 시행되지 못하고 특수학교로의 분리교육이 상당 부분 시행되고 있다. 일반 학교에 60%, 특수학교에 40% 정도 수용되어 있는 것이다.
질병에 대해 학교가 수행해야 할 업무는 학교보건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생활보호대상자의 질병에 대해서는 의료보호법으로 사회보장을 제공한다. 의료보호란 생활유지의 능력이 없거나 일정 수준이하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국가재정에 의하여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공적부조 방식의 사회보장제도이다. 그러나 의약분업 이후 의료수가인상 및 약값인상 등의 여파로 생활보호 대상자들이 약국들로부터 약 지급을 거부당하고있어 경제력이 없고 질병에 노출되어있는 생활보호 대상노인, 장애인 및 소년소녀가장 등에 대한 행정당국의 특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단기적 질병의 경우는 학교에서 무결석 처리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학업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 요양이 필요한 경우 학업에 지장을 받게 된다. 수술 등으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질병의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이 함께 오기 때문에 이 경우 학생들은 외부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가정 해체는 부모의 이혼, 가출, 사망, 질병, 미혼부모의 출생, 본인의 가출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고아, 미아, 기아 등 부모가 없는 아동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에 의해 생활이 보장되고 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로 대리양육, 위탁보호, 시설보호를 규정하고 있으나 주로 시설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리양육 및 위탁보호, 재택보호 등 다양한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보호는 시설보호에 비해 너무나 미미하다. 거택보호의 유일한 경우로 소년가장지원사업이 있는데 이러한 소년가장 세대에 대해서도 금품지원 이외에 국가차원의 가사보조사업은 없고 다만 민간기관 등에서 소수 인원과 자원봉사자 또는 대학의 실습생 등을 통해 간단한 생활서비스가 일시적으로 행해지는 정도다.
부적응 학생이란 학교 교육에 대한 염증, 좌절 및 학생들과의 부적절한 인간관계, 범죄 및 비행 등으로 인한 학업 결손 등의 사유로 학업 중단의 위기에 있는 학생이다. 교실 붕괴,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등의 현상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소외는 청소년기가 인생에서 심리적 이유기로서 자율성을 강화하는 시기고 사회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삶에 나쁜 영향을 준다. 더욱이 부모로부터 전이된 소외가 다시 본인 세대의 소외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부적응 학생들에 대한 국가 지원으로 문화관광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소,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생 상담소, 그리고 일부 지역 교육청에서 시도되는 공립 대안학교 및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소외 학생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지원은 한 마디로 말해서 죽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해마다 매년 5만명에 해당하는 고교생과 2만명 수준의 중학생들이 학교에서 탈락한다. [PAGE BREAK]4. 학교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은?
지금 우리의 교실에 '내 친구 이정명'이 생겨나면 담임 선생님은 어떤 조치를 취할까? 만약 훌륭한 선생님이라면 정명이의 가난에 대해 함께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의 아픔을 나누려 할 것이다. 선생님께서 자신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힘닿는 데까지 할 것이다. 우선 결실아동 중식지원을 하게 될 것이고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하여 등록금 면제 혜택을 받게 할 것이다. 친구들에게 정명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부탁도 곁들일 것이다. 만약 좀더 훌륭한 교사라면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 '내친구 이정명'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먼저 이 교사는 정명이와 그의 친구들이 겪어야 할 학습 경로를 추적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가정에서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자라다가 새롭게 사랑을 체험하는 것은 또래 집단 속에서이다. 비슷해서 교감을 나누는 사랑보다는 진정 이질적인 대상과의 교감이 필요한 차원 높은 사랑을 배우는 것도 이러한 또래 집단에서이다. 아이들이 학교 속에서 배움을 얻는 동안 그 배움이 필연적으로 자신이나 혹은 타인이 병들거나, 가난하거나, 외톨이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선천적인 장애를 겪거나 하는 등의 불행한 사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싯다르타가 성밖에 사는 사람들의 생로병사를 보고 새로운 학습의 길을 의지하게 되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만약 이정명의 친구들이 정명이를 따돌리고 여전히 소외되지 아니한 그룹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를 학습하게 된다면 그 미래는 건강한 것일까? 만약 이정명이 도태되고 난 그 다음의 소외자 삶은 다시 도태 위기를 맞아야만 하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내 자식의 차례라면 이를 용인할 것인가? 이정명의 친구들이 이미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작동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정명이의 일을 상관할 것 없다고 단정하고 소외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대책을 세웠다면 그것은 과연 적절한 상호작용일까? 물론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작동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도 문제이지만 설사 잘 작동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친구 이정명'을 통해서 사랑의 의미를 배울 기회는 잃어버린 셈이 된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도움을 통해서 참사랑의 기쁨을 깨닫고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과 '교실 단위에서, 학교 단위에서 소외된 단 한 명의 학생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나라를 사랑하고 미래를 사랑한다는 말을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자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학교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은 자명해진다. 지금 여기에서 누가 소외되어 있는지 항상 살피고 이를 도울 수 있도록 깨어있는 조직이 되라는 것이다.
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계 사람들에 있어서도 '내친구 이정명'의 존재는 참으로 고마움 존재이다. 우리 교육계가 가진 권능의 한계를 점검하고 그 외연을 확장할 계기를 부단히 마련한다는 것이다. 곧 소외 학생 문제를 직면함으로써 교육이라는 것이 굳이 용어 한 자, 지식 하나 더 불어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터득할 수 있게 하는 수행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적 조치를 필요로 한다.
첫째, 교육계는 소외 학생에 대한 국가적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펴거나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한 요구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적 노력들은 결국 더불어 사는 데에 있으며 이러한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함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미래 사회에 대한 확실한 표식을 보여줄 것이다.
둘째, 어른과 아이들이 당장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올바른 기부 문화를 정착하고 자원봉사를 통해 헌신이 주는 기쁨을 공유하려 할 것이다. 아무 것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들이 일찍부터 체험하게 될 것이다.
셋째, 소외의 근원을 살피고 이를 더불어 해결하려는 각종 학습 프로그램을 강구하고 이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나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수업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면 '내친구 이정명'이 우리 교실에 존재하는 근원적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