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나의 이쁜 <날개> 친구들아.
오늘 덕수와 성일이의 전화를 받고 7년 전을 돌아보았다. 교사 휴게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서툴지만 열정으로 시의 언어를 조탁하던 어린 새들, <날개>라는 이름으로 인창고의 자랑스런 동아리를 꾸려온 너희들 모두가 다 자랑스럽다. 특히 1기생들의 <날개>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는 걸 안다. 그 애착이 맑고 깊은 마음인 걸 문학을 사랑해 본 자들은 다 알 것이다.
여러 친구들의 좋은 소식도 덕수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다. 우선 이 카페의 주인장 덕수와 축구왕자 성일이의 제대를 축하한다. 대한민국 남자의 통과의례를 무사히 마쳤으니 이젠 코리아의 당당한 시민이 되어 활보해도 되겠구나. 군에 있는 동안에도 이 카페에 너희들 얘기 끊이지 않았음은 둘의 인기가 바람이 아님을 보여준 게다.
혜은아! 너의 소식-기쁘다. 늦은 나이에 세칭 일류대생이 되었다며? 그 크고 맑은 눈 세사에 물들이지 말고 문학소녀의 마음 잊지 않기를 바란다. 동그란 얼굴의 연옥이 얘기도 들었다. 큰 키에 고운 얼굴, 식물같던 혜림이는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못 물어보았구나. 수경이는 국어선생님이 되었는지, 은경이는 어떤 모습의 숙녀가 되었는지, 날개 한 명, 한 명, 모두 보고 싶은 얼굴인데 ……카페에 얼굴이라도 띄워라. 너희들이 생각나면 이 곳에 들려 살피곤 하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치는 친구가 여럿 되더라.
<날개> 동아리의 신입생 모집이 어렵다는 전화를 받고 나도 무언가 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루나무(내 이메일) 편지함을 열어보니 첫 창작집을 내면서 썼던 내 글이 큼지막하게 뜨는구나.
‘……/ 날기를 꿈꾸는 어린 새들 / 너희들의 작은 광장에 / 부끄럽고도 그리운 어린 날의 꿈을 한 줌 뿌려 놓는다. / 사랑이며 부끄럼이며 아픔이었던 문학 / 아! 그 고적한 숲속에 다시 서고 싶다.’고 끝맺음했던 옛 글을 만나니 새삼스레 반갑고, 이런 마음이었던 그 때가 아련히 그리워진다.
케케묵은 옛글을 다시 띄워 준 <날개>의 왕회장 덕수야, 너 고교 때의 네 모습 생각나니? 너희 반은 수업태도가 진지하고 성실한 문과 우수반이었는데, 너는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있곤 해서 선생님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었지. 작문을 맡으면서 너와 만났어. 첫 실기 시간에 쓴 글을 읽는데 유난히 이상한 글씨가 내 눈을 끌었단다. 읽기 어려울 정도의 난필이었는데 내용은 참신하여 네 이름을 기억했지. 그러던 어느 날, 아마 4월쯤으로 기억된다. 네가 교무실로 찾아와 습작 공책을 한 권 내밀고 갔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시가 여러 편 적혀있었는데, 첫 페이지에는 중세시대의 우울한 정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어. 너도 기억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평가에 반영되는 것 외에는 눈짓 한 번 안 주던 때에 시인 지망생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발견이었지.
축구왕자라는 아이디로 종종 따뜻한 글 올리는 성일아, 덕수가 도화선이 되어, 글에 재능이 있는 애들을 눈여겨 찾기 시작할 즈음, 네가 나타났어. 모두가 좋아하는 모범생 반장이자 매력적인 미소의 미소년이었던 너, 그런 네가 글 몇 편 적힌 공책을 가지고 와서 수줍게 내밀더라. 그 때 네가 내민 글은 ‘사랑에 관한 글’이었는데, 내가 그 글을 읽고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그리고 네가 더욱 귀여워 보여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이제야 고백하는구나.
[PAGE BREAK]곧, 덕수와 성일이를 주축으로 문예반이 만들어졌지. 작문 실력이 뛰어난 수경이가 들어오고, 혜림이, 은경이, 그리고 혜은이와 연옥이가 나타나면서 1기 모임이 만들어졌어. <날개>라는 동아리명을 만들고, 매주 화요일 방과후에 여교사 휴게실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면서 토론회를 했었지. 동아리실 하나 확보하지 못해서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고, 당시 컴퓨터 없는 애들도 많아서 각자 공책에 써 온 글들을 옮겨 적고, 찢어 붙여서 돌려 읽었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모였던 화요일의 저물녘, 어두워가는 교문 길을 나설 때면 나는 선생님이란 내 직업이 참 행복했었다.
2기가 졸업하던 해 그 곳을 떠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도 <날개>와의 헤어짐이었는데 올해는 지망생이 세 명밖에 없다니 어린 자식 버리고 재가한 어미 맘처럼 저려오는구나.
모두 힘내거라. 글쓰기를 통한 행복한 이탈의 세계를 우리만이라도 지켜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