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년이 되어 한 교실에 모인 우리 반 아이들. 그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태어난 곳이며 그 아이들이 속해 있는 가정환경, 그 동안 가르침을 받아온 교육환경까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이렇게 다른 40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 1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기 힘들다는 점보다 각자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기에 끼리끼리 어울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면 참으로 뜻깊은 1년이 될 것이다.
교사가 된 후 두 번째를 맞이했던 그 해, 담임배정이 된 후 가출석부를 받아보고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우리 반에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준성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학하기 전까지 준성이 전 담임 선생님들을 만나 준성이가 어떤 아이이며,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교사가 어떤 것을 도와주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그러면서 성진이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 성진이를 꽉 잡으면 1년이 편할 거라는 말씀과 함께 성진이에게 뇌성마비인 준성이를 맡기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어린 3학년과 1년을 지내다가 5학년을 맡게 되어 긴장하고 있던 나는 ‘성진이를 잘 잡아야(?) 한다’는 말씀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첫날부터 성진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성진이는 4학년 때부터 학년 전체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로 일명 ‘짱’으로 통하는 아이로 ‘짱’답게 덩치고 크고 힘도 셌다. 그러나 교사인 나에게는 깍듯이 대하는 것 같으면서도 간간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시험해 보는 듯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척 하면서 곤란한 질문을 한다든지, 답이 뒷면에 나와 있는데도 정말 모르겠다며 어려운 퀴즈를 묻기도 하였다.
성진이와 나와의 탐색전이 지나가고, 어느 날 성진이가 완전히 내 편 되는 일이 생겼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다 하고 아이들끼리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심심하기도 하고 같이 놀고 싶기도 해서 “선생님이랑 팔씨름 할 사람?”하고 말했더니, 남자아이들이 “저요! 저요!”하며 모여들었다. “선착순 5명만이다!”라고 외치는 나를 뒤로하고, 몇 명의 아이들은 ‘힘’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성진이를 찾으러 가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성진이는 안타깝게도 6번째였다. 성진이는 5번째로 선 아이에게 “너 나보다 힘 세? 아니지? 그럼 내가 대신 선생님과 팔씨름 할께.”라고 말하고는, 여유만만하게 나와의 팔씨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팔씨름 하면 자신 있는 나였지만 나보다 몸무게도 10㎏이나 더 나가고 워낙 힘이 세다고 소문이 난 아이라 조금 긴장되었다. 안 그래도 성진이 편이 많은데 선생님과 팔씨름에 이겼다고 하면 더욱 그 인기가 높아질 것 아닌가? 성진이 앞에 선 4명의 아이와 팔씨름을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그런 와중에도 가뿐하게 4명의 팔을 넘겼다. 드디어 성진이 차례가 왔다. 팔씨름을 하기 위해 손을 잡았는데 역시나 앞에 있던 아이들과는 다른 ‘힘’이 느껴졌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지면 절대로 안 된다며 나도 모르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아직 아이여서인지 힘의 지속력이 떨어져 결국에는 내가 이기고 말았다.[PAGE BREAK]아이들은 모두 성진이가 이길 줄 알았는지 내가 이긴 것에 아주 놀라워했고 성진이도 체구가 작은 여자 선생님한테 팔씨름을 져서 멋쩍었는지 “역시 어른이라 힘이 세시군요.”하고는 돌아섰다. 난 당연한 결과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성진이의 얼굴이 달라졌다. 나를 시험하는 듯한 질문은 없어지고 대신 그 동안 자기보다 훨씬 힘이 세지만 평소 부드러운 나의 모습을 알고는 깍듯이 존경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런 성진이의 모습에 성진이를 따르던 많은 아이들도 성진이와 같이 나를 르게 되었다.
용원이는 반에서 성진이 다음으로 힘이 센 아이였다. 교과 성적도 우수하고, 운동도 잘 하고, 리코더나 단소 불기, 그림 그리기 등 여러 가지 재능을 가졌지만 성진이 외에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부하(?) 정도로 생각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교사 앞에서는 잘 하지만 뒤에서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명 ‘깡패’였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된 건 2학기 수련회를 가기 전 창민이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모든 친구들이 참여하는 수련회에 창민이를 보내고 싶은데, 창민이가 반에서 괴롭히는 아이가 있어서 수련회를 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창민이 아버지 전화를 받고 다음날 창민이와 면담을 한 결과 창민이를 괴롭힌다는 아이는 용원이였고 괴롭힘을 당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용원이는 학기초부터 특히 운동할 때 승부욕이 커 다툼이 많았다. 발야구를 잘 못한다며 4학년을 때려서 계발활동 부서였던 구기부에서 쫓겨날 뻔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용원이에게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 버린 일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꺼낼 것이며, 다시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하는가에 대해 그 날부터 고민했다.
그래서 우선은 아이들에게서 용원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로 했다. 다음날부터 청소가 끝나면 그 날 청소당번인 아이들과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누가 제일 좋은지, 어떤 점이 좋은지,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친구는 누구인지, 어떻게 힘들게 하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알게 된 용원이의 행적은 정말 놀라웠다. 문방구 앞에서 만나면 오락한다고 100원만 빌려달라고 해놓고 갚지 않기, 길거리에서 파는 떡볶이 빼앗아 먹기, 게임 CD 빌려가서는 안 돌려주기, 모둠별로 그 날의 일기, 준비물, 숙제 등을 점수로 기록해서 개인 스티커를 주는 생활표 마음대로 조작하기, 어떤 일이든 선생님께 이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등 용원이에 대한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더욱 난감해졌다. ‘그 동안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난 왜 하나도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진 것도 그랬다. 잔머리를 잘 쓰는 용원이는 이 모든 일들을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부터 용원이와 나의 밀고 당김이 시작되었다. 좋은 말로 시작되었던 첫날의 면담. 하지만 잔머리를 잘 쓰는 용원이는 능청스럽게 그 동안의 일들에 대해 시치미를 뗐다. 순순히 고백하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에게 그 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일에 대해 모두 쓰게 할 거라는 협박 반, 구슬림 반으로 일주일동안 매일 용원이를 남겨서 얘기하다가 끝내 용원이의 자백을 들을 수 있었다.[PAGE BREAK]그 일이 있고 일주일 정도 용원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교사 앞에서는 언제나 바르게 행동하는 척 하는 아이라 별 다른 점을 눈치 챌 수 없었다. 청소당번 모니터들에게도 물어보니 별로 변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 앞에서만 눈물을 흘리고 자신이 한 일들을 뉘우치는 척하고 행동은 여전히 그대로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용원이 어머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학부모 총회 날 용원이 어머니께서 학교에 오셨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 난감했지만 용기를 내 그 동안 일었던 일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용원이가 자기 잘못에 대해 직접 쓴 것을 보여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자세히 보시지도 않으셨다. 매년 이런 일로 담임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었었다며 용원이가 좀 산만하고 장난기가 많긴 하지만, 교사인 내가 아직 아이를 길러보지 않아 용원이 같은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난 어머니께 좀 더 자세히 용원이가 쓴 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드렸다. 그리고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용원이가 어머니와 선생님을 무서워한다는 것이며, 지금 용원이를 바르게 지도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말씀드렸다. 그제서야 어머니께서는 용원이가 쓴 글을 자세히 보셨다. 그리고는 용원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많이 힘들었겠다면서 집에서 잘 타이르겠다고 하셨다. 교사인 나보다 어머니를 더 무서워하는 용원이를 너무 심하게 나무라지는 말고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라고 용원이 어머니께 당부드렸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다음날부터 며칠간 살펴보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 후에 다시 청소하는 아이들과 얘기해봤더니 모두들 용원이가 변했다며 놀라워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일기장에 용원이의 행동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자신도 용원이 같이 착하게 변해야 겠다고도 적었다. 결국 며칠 뒤, 수련회는 우리 반 모두 가게 되었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 학기말 방학을 앞두고 찾아오신 용원이 어머니는 그 때 용원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해주셨다.
그 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간에 보이지 않는 조화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몸이지만 모든 것을 잘 해보려는 의욕이 크고 매사 긍정적인 준성이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면, 그 활동에 관심이 없거나 하기 싫어서 게으름을 부리던 아이들도 같이 열심히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용원이의 변화도 용원이가 그 동안 반 친구들을 많이 힘들게 했지만, 이제 괜찮아질거라고, 그리고 변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같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자는 말에 잘 따라 주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