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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위기,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새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GDP 6%의 공교육재정을 확보하고 그로 인해 추가로 확보된 재원 중의 최소한 1/3을 지방대학에 투자한다는 정책방향을 정립하고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할 것이다. 고등교육교부금법의 책정이나 지방대학교부금법의 책정과제는 이런 측면에서 바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리 사업에 대해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천세영 | 충남대 교수·교육학



1. 지방대학 위기의 정체

지방대학 위기는 지방대학경영자의 위기와 지방대학 학생의 위기가 합쳐진 현상이다. 지방대학의 위기가 곧 지방대학생의 위기라고 할 수도 있으나 꼭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동안 지방대학의 위기는 오히려 지방대학경영자의 위기 측면이 더 부각되어 온 경향이 많았다. 만약 경영자의 입장이 아니라 정작 지방대학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지방대학생의 입장에서 지방대학의 위기를 다시 생각해보면 사태는 제법 달라진다. 오히려 지방대학의 위기는 경영자의 입장보다는 학생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는 해법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방대학의 위기 해소 해법을 찾아나가는 첩경으로서 지방대학생의 입장에서 문제를 먼저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서러운 지방대학생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보는 일이며, 그 ‘서러움’을 달래주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일이다.

2. 서러운 지방대학생 이야기

지방대학생은 서럽다. 여러 가지로 서럽다. 서러운 것을 열거할라치면 이루 헤아릴 수 없겠지만 세 가지만 들어보기로 한다. 지방대학생들은 화가 나고 슬프고 속은 기분이 자꾸만 든다고 한다.
우선 지방대학생들은 화난다.
“공부도 못 하던 같은 반 친구들 중에 ‘서울대학(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애들을 보면 화가 난다. 나도 서울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 분명히 되었지만 난 서울대학보다는 지방대학을 택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서울대학에 진학하려면 돈이 정말 많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 만큼 좋은 대학도 아닌 것이 서울대학이다. 지방대학의 값어치가 돈에 비하면 훨씬 좋은 편이다.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에 가고 못 가는 것은 분명히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안 했는가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학교선생님들께 들었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내가 공부할 때 놀기만 하고 성적도 나보단 못한 친구들이 무슨 이유인지 서울대학에 진학을 하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느 새인가 그 친구들은 나에게 와서 뽐내기 시작하고, 뽐내다 지치면 나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어느 새인가 나는 그 친구보다 공부 못한 아이가 되어버린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PAGE BREAK]다음으로 지방대학생들은 슬프다.
“가끔 서울에 가보면 정말 슬프다. 서울 대학생들은 대학만 다니는 것이 아니고 시내 영화관과 연극장, 오페라 극장과 멋진 카페를 드나들고 화려한 쇼핑가를 다닌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때 공부하느라 한번도 못 가본 연예인 쇼에도 서울 대학생들은 쉽게 가고,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의 고급 레스토랑과 심지어는 길거리에서도 연예인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 정말 부럽다. 그리고는 슬퍼진다. 대학에 가면 캠퍼스에서 멋과 낭만을 느끼고 훌륭한 교수님의 명강의를 듣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는데 대학생활은 대학밖에 더 큰 것들이 있었던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지방대학에도 훌륭한 교수가 있고 캠퍼스는 더 아름답기까지 한데 지방대학을 품고 있는 지방도시는 정말 서울에 비하면 보잘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슬퍼지는 걸까?”
끝으로 지방대학생들은 속았다.
“그래 속은거다. 부모님께서 날 속였고 선생님께서 날 속였다. 세상이 날 속인 것이다. 물론 속은 나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분명한 것은 속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서울대학에 갔어야 했다. 엄마 아빠를 졸라서라도 가야 했고 선생님께 우겨서라도 가야 했고 재수를 해서라도 가야했다. 정말 속은 것이고 쉽게도 포기해 버린 나의 잘못이 정말 크다. 더구나 공부도 못하던 그 친구들이 이제 어엿한 서울 대학생들이 되고 4년이 지나 졸업할 때가 되면 어딘지 모르게 나보다 훌쩍 커버린 것을 볼 때 속았다는 생각은 현실이 되어 버린다. 그들은 그렇게 서울에서 풍요롭게 자신있게 대학생활을 보내고 보다 좋은 조건에서 나보다 좋은 직장을 찾아 나갈 것만 같은 나의 불안감은 어느덧 사회에 대한 배신감으로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들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까? 어떻게 보면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하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속이지 말고 모두 서울대학으로 진학시켜 주어야 한다. 돈이 모자라면 장학금을 지원해야 하고 숙소가 모자라면 기숙사를 지어주어야 한다. 예부터 사람은 나서 서울로 보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지방대학들이 다 망한다고 한다. 도대체 지방대학이 망할까 두려워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러면 지방대학을 모두 서울대학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서울에 있는 좋은 연극장과 음악관과 멋진 식당들을 지방대학촌에 건설해 주어야 한다. 그러지도 못하면서 어줍잖은 지방대학살리기 정책들을 잊어 버릴만 하면 내뱉고는 금방 또 감추어버리는 속임수는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한다. 이제 꼭 짚어져야 할 몇 가지 정부 차원의 정책 어젠다를 생각해보자.

3. 지방대학들은 왜 서울 대학보다 못한가?

지방대학들은 서울 대학에 비해 정말 못한가? 많은 지방대학생들은 속았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 그래 보였는데 막상 입학하고 나면 그 차이가 실로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우선 지방대학의 현실부터 좀 짚어볼 필요가 있다.[PAGE BREAK]지방대학이 낙후되는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재정 능력의 부재에 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방대학 위기의 원인은 수도권에 모든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절대지배적이다. 이외에 교육부의 정책 잘못이나 자구노력 부족 등도 지적되고 있으나 지방의 자원부족이 가장 큰 이유임에는 분명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방대학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집중된 인적·물적 자원을 지방으로 이관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 귀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 함정이다. 말하자면 수도권에 집중된 인적·물적 자원이 지방으로 이관되면 자연히 지방대학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순환론적 오류에 빠져 능동적 대책을 세워서 상황을 바꿔놓기보다는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논리를 뒤엎어야 한다. 즉, 지방대학의 위기가 인적·물적 자원의 수도권 집중을 야기하는 원인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대학을 살리지 않고는 이와 같은 집중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지방대학을 살림으로써 새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서 지방대학의 교육과 연구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에 지방대학의 위기가 가속되었고 그 결과 다시 수도권집중이라는 모순을 낳았다고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지방대학의 미비한 교육과 연구여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지방대학만이 안고 있는 재정문제에 대한 생생하고 정확한 정보 자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나라 대학이 안고 있는 재정의 전체적 구조로부터 추정해낼 수밖에 없다. 물론 이와 같이 전체 대학의 상황을 지방대학의 것으로 환원하여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런데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반박할 수 있다. 첫째 지방대학의 상황은 전국 평균에 비해 최소한 더 낫지는 않다는 점이다. 민관 연구비 배정이나 각종 정부재정지원금, 특히 최근에 부쩍 늘어난 각종 대학평가에 연계된 재정지원사업들에 있어서도 지방대학은 서울대학에 비해 늘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둘째로 수도권의 대학이나 지방대학의 사정이나 다 똑 같은데 새삼스럽게 지방대학만 문제삼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대학은 외딴 섬이 아니다. 즉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여건은 단순히 대학 캠퍼스 내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문화적인 여건과 자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즉 수도권의 대학들은 자체 캠퍼스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각종 교육 및 여건들을 수도권에 온통 집중된 사회 인프라를 충분히 동원할 수 있으나, 지방의 경우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 대학의 전체 수준으로부터 훨씬 아래에 놓여 있다고 추정되는 현장이 지방대학이라는 가설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우리 나라의 고등교육 재정이 선진제국의 그것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총 GDP 중 고등교육비의 비중은 고작 0.4% 수준으로 OECD 평균 1%의 절반에 불과하고 미국의 1.4%에 비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또한 총교육비 중에서 차지하고 있는 고등교육재정의 비중도 OECD 평균이 20%를 상회하고 있지만 우리는 10% 미만에 불과한 수준이다. 결국 한국의 고등교육재정 전체 구조 자체가 원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국내적으로는 수도권 대학들에 다시 치이는 현상이 우리의 지방대학이 안고 있는 현실이다.[PAGE BREAK]대학의 교육 및 연구 여건을 위한 재정은 어디로부터 와야 하는가? 또 그 동안 우리 나라의 대학들은 이러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하여 왔는가? 그리고 대학들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가? 대학의 재정구조를 형태별·설립별로 살펴 본 결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요컨대 대학의 재원은 75% 이상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의 돈을 교직원 인건비에 지출하고 있다. 물론 국립대학의 경우는 등록금 의존도가 45%로서 비교적 덜한 편이나 사립 비중이 훨씬 큰 전문대학의 경우는 거의 90%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추론되는 우리 나라 대학들의 재정구조상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나치게 높은 학생등록금 의존도는 대학재원의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참고로 미국의 공립대학들은 학생등록금 의존도가 20% 미만이며 사립대학의 경우도 40% 수준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정부지원금이 약 1/3, 그리고 R&D 재원이 1/3정도로 구성된다. 이렇게 하여 미국대학들은 학생수의 증감에 의해 대학재정이 휘청거리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학생수의 감소가 곧바로 대학의 위기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국립대학의 경우 상대적으로 최근의 학생감소 위기를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학생모집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방 사립대학들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는 불문곡지의 사실인 것이다.
둘째 우리의 지방대학들은 틀림없이 재원의 대부분을 인건비에 쓰고 나면 실제로 교육 및 연구여건의 개선에 쓸 돈은 거의 없게 마련이고, 다시 대학의 경쟁력 악화와 연이은 학생 모집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을 것이다는 점이다.

4.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을 달래주는 길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은 달래주어야 한다. 다시 한번 지방대학생들이 왜 서러워 했는지 생각해보자. 다른 말로 하면 지방대학들이 왜 죽어가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보자. 그것은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수도권에 집중된 사회적 인프라 때문이다. 지방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지방대학에게만 자구책을 구하라는 것은 논리 모순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수도권에 집중된 대학들은 지방의 인재와 교육재원을 다시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흡착기제로 확립되어 버린 지 오래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지방의 가난한 천재들이 갈 곳을 잃게 되고 급기야는 아까운 재능을 썩혀 버림으로써 궁극에는 국가적 자원을 손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지방대학의 소멸과 수도권에의 종속은 지방의 소멸과 수도권 종속을 그 동안도 초래해 왔듯이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며 급기야는 수도권의 폭발로 인한 국가적 재난을 초래하고야 말 것이다.
이제야말로 보다 구체적인 방책을 생각해야 할 때다. 듣기 좋은 말의 나열이 아닌 자기 희생을 전제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몇 가지 대책을 생각해보자.[PAGE BREAK]첫째는 무엇보다도 새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GDP 6%의 공교육재정을 확보하고 그로 인해 추가로 확보된 재원 중의 최소한 1/3을 지방대학에 투자한다는 정책 방향을 정립하고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할 것이다. 고등교육교부금법의 책정이나 지방대학교부금법의 책정 과제는 이런 측면에서 바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 추진되고 있는 누리(NURI) 사업은 일견 획기적인 지방대학발전의 촉진제가 될 것 같지만 그 내용을 알고 보면 그 전망이 썩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누리 사업에 대해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긴급 진단과제로서 말미에 누리 사업의 기대와 우려에 대해 보론적으로 재검토해 보고자 한다.
둘째는 지방의 국립대학 및 사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부담하는 등록금은 원칙적으로 현 수준에서 동결하고, 그로 인한 대학의 재정 누실을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이 경우 정부는 대학에 대한 직접 재정지원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며 지방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 대한 대폭적인 장학금 지원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방의 경우 대학의 등록금 인상은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사립대학의 등록금 부담을 둘러싼 분쟁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으며, 국민가계의 경제규모를 생각해볼 때 현재의 등록금 규모도 이미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셋째로 대학간 통폐합 모델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래에는 외국 자본들이 대학 부문으로 들어오고야 말 것이며, 그 대상은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이며, 당연히 지방대학들은 또 한번 외국 대학들과의 싸움터에 나서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루 속히 대외적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대학간 협력라인을 구축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대학간 또는 수도권대학과의 M&A 모델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넷째는 지방대학생들을 위한 대단위 기숙사 단지를 조성하는 일이다. 지방대학생들의 학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수도권 학생들 못지 않게 숙식경비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서서 대단위 기숙사 단지를 조성하고 저렴한 값으로 학생들의 숙식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숙사 단지 조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 재정만 투자하기보다는 민간 재원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투자 사업은 건설투자 부양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5. 누리사업에 대한 보론적 긴급 진단

2004년에 이르러 누리사업이 지방대학생들의 서러움을 일거에 덜어줄 만병통치약처럼 선전이 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약장사’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얘기를 잘 들어보아야 한다.
누리사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당초 참여정부는 지방대학발전을 중요한 선거공약으로 선언하였다. 이 과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2003~2004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역혁신체계(RIS: Regional Innovation System)로 이름 붙여진 지방과 대학의 공동운명체적 발전에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PAGE BREAK]그렇지만 정부 각 부처간에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히면서 일년 내내 이렇다 할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았고 2004년초에 이르러서야 교육인적자원부가 주도하는 독자적인 사업인 NURI(New University for Regional Innovation)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최근 각 지방대학들은 총 2200억여 원 규모의 사업비를 나눠 갖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 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BK21이라는 사업 때문에 온 나라 대학들이 한 바탕 홍역을 치뤘는데 이번에는 누리 사업으로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루고 있다. 두 사업 모두 우리 나라의 대학경쟁력을 제고하고 나아가 21세기 국가번영의 기틀을 놓는데 기여할 것으로 믿으면서도 어딘지 모를 찜찜함이 자꾸만 뒷꼭지를 잡아챈다. 아마도 bk21사업이 초기부터 있었던 비판들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과 이제 5년이 지나가는 마당에 애초의 화려했던 목표들이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가는 것을 보면서 갖게 되는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의미를 짚어 보고 만에 하나 있을 또 하나의 국가자원 낭비를 예방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첫째 누리 사업은 그나마 부족한 정부의 고등교육예산을 매우 비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당초 누리 사업은 범정부적인 RIS 틀 내에서 교육예산을 넘어서는 대규모의 재정투자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교육부가 마련한 2200억원 규모의 재정만 투입되고 있을 뿐이다. 실상 이 재원은 그동안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투입되어 오던 고등교육관련 예산들을 한데로 묶고 나서 상징적 수준의 추가 투자만이 합쳐진 것일 뿐이다. 누리 사업은 기존 사업들의 희생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그 동안 비효율적으로 투자되던 재원을 재배분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사업이 추진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신문지상에 보도되고 있는 누리 사업 신청사례들을 보면 대체로 산업현장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학문 분야들, 예컨대 생명공학이나 나노공학 등의 공업관련 분야와 벤처경영학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응용학 분야가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등으로 배분될 수 있었던 재정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누리 사업은 지방대학을 직업훈련기관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누리 사업의 최대 강조점은 지역산업현장에 필요한 인력양성이다. 말하자면 대학은 이제 지역 기업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지 않는 한 재정지원도 받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교육하는 곳이며 교육은 임시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자 양성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기르는 일이다. 물론 기술자양성도 필요하며 우리 나라 대학의 교육프로그램이 일부 기업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부적합한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에 필요한 재정은 교육예산으로 지원되기보다는 산업자원부나 재정경제부 등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목적을 가진 정부 부처의 노력과 예산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리 사업은 기초학문을 육성하고 폭넓은 안목과 인격을 갖춘 인재를 기르는 일에 쓸 돈을 모두 직업기술훈련에 돌려쓰는 우를 범하고 있다.[PAGE BREAK]누리 사업은 이미 활시위를 떠났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심각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보다 더 큰 재원과 규모로 RIS가 가동되고 그 안에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방대학들이 교육기관 고유의 역할을 훼손 받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현재처럼 그나마 작디작은 교육예산을 ‘누리’에 톨톨 털어주고 누리에 참여하지 못한 학문 분야와 대학들은 맨손만 빨아먹게 하는 화를 정말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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