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교육자. 나의 명함 이름 옆에 조그맣게 써 있는 문구이다. 교사가 되고 난 후 나는 줄곧 교사로서의 꿈과 희망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책을 읽으며 희망을 키워왔다. 그 꿈과 희망은 매년 학급경영에서도 반영되었고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그 희망도 조금씩 성장해 간다. 매년 7월이 되면 내가 꿈꾸었던 학급경영이라는 희망의 씨앗이 작은 나무로 자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해에는 보기 좋게, 어느 해에는 초라한 모습으로 성장해 있는 학급경영의 나무가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슬픔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슬픔이 앞설 때조차 희망의 나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초라한 모습으로 자라있는 학급경영 나무를 바라보며 슬퍼하기에는 아직도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할 많은 시간과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희망의 씨앗을 힘차게 뿌릴 소망도 함께 자라나기 되기 때문이다.
초등교사에게 있어서 학급경영은 참으로 중요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기에 학급을 어떻게 운영하고 학급의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일년의 교육 농사를 좌우 짓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급경영의 핵심은 교사에 대한 신뢰감이라 여겨진다. 교사에 대한 신뢰감이 없으면 어떠한 교육 프로그램과 좋은 교재를 가지고도 좋은 결실을 이루어내지 못하며, 아이들의 인격적인 변화 또한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선생님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러한 교사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오고 있다.
먼저, 교사가 신뢰를 확보하기까지는 교사의 모범과 실천이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리라 여겨진다. 우리 반에서는 정해진 등교시간에 지각을 하면 팔굽혀펴기를 하며 개인 운동을 하는데, 하루는 교사인 내가 교통체증으로 몇 분 늦게 교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선생님이니까 그냥 넘어가리라 여겼는지 늦은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얘들아∼ 선생님이 교통이 막혀서 이렇게 늦어 버렸네!”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팔굽혀펴기를 시작하였다. 이때 아이들의 반응이 참으로 궁금했는데, ‘우리 선생님 지각쟁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이 꽤 있으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가 팔굽혀펴기 하는 모습이 놀라웠던지 교실 앞으로 다 몰려와 구경을 하며 같이 개수를 세어 주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내가 약속한 개수를 다 마쳤을 때 우레와 같은 격려의 박수를 보여 주었다. 참으로 아이들의 넉넉한 격려의 마음이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웠다. 교사가 먼저 모범을 보일 때, 아이들은 오히려 감동하고 교사를 신뢰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며, 작은 것에서부터 먼저 실천하고 본을 보이는 교사의 태도가 더욱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PAGE BREAK]우리 반은 급훈의 첫 번째가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에서 ‘순종’이라는 낱말이 참으로 어색하게 들릴 법도 한데, 아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받아 주었다. 급훈은 교사인 내가 정하는데 순종에 대한 급훈을 말할 때에는 왕이 선포하듯 더욱 자신감 있게 말하곤 한다. 여기에서의 ‘순종’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따라가는 굴복의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따름’이라는 것을 태도로서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수록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져가고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 또한 점점 희석되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순종의 태도에 대한 자신감 없는 교사의 행동은 배우는 자인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필요 없는 옛 가치로 느껴지게 한다. ‘순종’의 가치를 아이들이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였을 때 교사에 대한 신뢰는 더욱 견고해 질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순종의 기초 위에 가르침과 배움을 쌓을 때 기초가 튼튼한 교육이 될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한다.
앞서 말한 ‘순종’은 교사가 말로만 강조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사가 먼저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교사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그것은 생명력을 잃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가치관을 가르치면서 나 또한 내 자신의 순종하지 않는 어그러진 마음을 추스르며 부단히도 내 자신과 싸우고 변화됨을 느끼며 ‘제일 좋은 배움은 가르침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교사인 내가 글이나 말로 내뱉은 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고자 다짐하니, 아이들에게 말을 할 때에도 신중하게 됨을 보게 되었다. 함부로 약속하는 습관도 사라지게 되었고, 기분과 감정에 따라 내뱉는 말도 점점 줄어들게 됨을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학급운영계획을 수립하면서도 한꺼번에 많은 계획을 쏟아내지 않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조금씩 운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하루에 선물을 모두 받는 것보다도 자주 선물을 받을 때 더욱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선물을 조금씩 자주 주는 것처럼 학급마다의 프로그램이나 일정을 잡을 때에도 이 점을 참고하면 아이들에게 신뢰받는 교사가 되리라 여겨진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수업시간에도 재미있게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교사인 나에 대해 갖는 신뢰가 적다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길에서 우리 반 아이를 만나면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달려가 악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그러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모르는 사람인양 제 길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는 나를 피해 다른 길로 가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동안 아이들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0여 명의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좋은 이야기는 했을지언정, 한 명 한 명의 아이와는 개인적인 만남과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거의 없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PAGE BREAK]그 해 이후로 나는 아침에 아이들과 악수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선생님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한다. 교사인 내가 바빠서 인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선생님의 손이라도 만지며 인사를 하게 하였다. 그것은 교사인 나와 아이들과의 최소한의 개인적 만남이기 때문이다. 인사를 할 때는 가급적 모든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것으로 그 아이는 선생님과의 의사소통을 최소한 하루에 한 번 시도했으며, 손과 손의 온기로 마음을 전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싶었다. 이 보잘 것 없는 시도가 내게는 참으로 큰 힘을 주었다. 요즈음에는 길 가다가 아이들을 만날 때 빙그레 미소를 짓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이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기회를 더욱 자주 가지리라 다짐을 하곤 한다.
아이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대화이다. 아이들과의 상담 활동은 교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아이의 생각과 마음 상태를 파악하고 진단하고 혹시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오히려 상담을 하고 난 후 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 없이 교사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때, 아이들은 금세 눈치를 채고 선생님에게 실망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이러한 실수를 하며 상담의 올바른 이해와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부모 역할 훈련>>의 저자로 알려진 토마스 고든의 <<교사 역할 훈련>>이라는 책이 나에게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의 태도에 대해 지혜롭고 효과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슬퍼하는 교사의 마음이 먼저 갖추어지고 성장해야 함을 또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하여 교사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신뢰를 받게 되며, 아이 또한 교사에게 신뢰를 받으며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건강하게 성장하리라 여겨진다.
신뢰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한들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인 듯 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감사’에 대한 말을 강조하곤 한다. “감사란 내가 받은 것을 받았다고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외치며,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이 함께 하는 교육의 꿈과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아이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으며 교사인 나 또한 ‘내가 신뢰받고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나고 용기를 얻게 됨을 부인할 수 없다. ‘하물며 아이들은 교사가 주는 신뢰에 얼마나 큰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까?’ 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40여 명을 맡고 있는 교사로서의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솔직히 아이들에게 내가 주는 사랑과 용기의 양에 비해 내가 아이들에게 받는 사랑과 용기의 양이 넘치도록 많음을 생각할 때, 감사할 뿐이다.
7월의 귀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무엇보다 교사로서의 신뢰가 바탕이 된 학급경영이 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1학기 성적표 종합, 수업 진도의 정리, 여름 방학 준비로 분주하게 다가온 7월의 시간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본분과 그 아이들 각자와의 개인적 만남이며, 그 만남으로 더욱 견고하게 세워질 신뢰 안에서 2학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결실을 바라보며 우리들이 붙잡고 가야 할 교육의 꿈과 희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