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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국사교육

국사가 우리 민족의 문화 전통을 확인시켜 민족사 전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정신을 기르고, 민족의 저력을 생동감 있게 이해하여 다가오는 21세기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가진 교과라고 한다면 국사교육은 그러한 목적에 맞게 강조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7차 교육과정에서 국사교육은 제6차 교육과정에 비해 배당시간도 줄어들고 있는 등 전반적으로 약화되었다.

김대용 | 충북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1. 시작하는 말

삼성경제연구소와 성균관대는 2004년 6월 전국의 18세 이상 남녀 1315명을 대상으로 국가 자부심 등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국가 우월감’은 비교 대상 24개국 가운데 중간인 12위로 나타난 반면 민주주의, 정치적 영향력, 경제적 성취, 사회보장, 사회평등 등 구체적인 항목별로 물어본 ‘국가 자부심’의 순위는 20위였다. 국가 자부심의 순위가 국가 우월감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것은 민주주의 운영에 대해 ‘자랑스럽지 않다’(64.6%)가 ‘자랑스럽다’(32.1%)보다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나는 등 정치적 영향력, 경제적 성취, 사회보장, 사회평등의 구체적인 항목들에서 만족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많았기 때문이다.1)
전국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 청주 지역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국가 자부심을 설문 조사한 결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04년 6월 충청북도 교육청이 청주 시내 초등학교 6학년 363명과 중 고교생 713명 등 10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34.2%가 ‘다시 태어나도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답했고, 33.1%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랑스럽다’고 응답한 반면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한다’는 답변은 3.3%에 불과했다. 또한 ‘전쟁이 발생하거나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성금을 내겠다’ 38.5%, ‘자원해 봉사활동을 하겠다’ 32.6%, ‘군대에 지원하겠다’ 16.3%(175명) 등으로 나타나 대부분 국가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2)
40대 후반인 글쓴이는 국가 자부심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서 어릴 때 한국인을 비하하던 수많은 말들이 생각났다. ‘한국놈들은 맞아야 한다’는 말은 그 대표적인 것으로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교육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오늘의 시점에서 국가 자부심과 관련하여 우리 청소년에게 필요한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문제부터 살펴보려고 한다.
[PAGE BREAK]2.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비하 발언은 여전히 가끔씩 들을 수 있는 일본의 고위관료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 내부에도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4년 3월 미국을 순회공연하던 서울 팝스오케스트라의 단장 겸 지휘자 하성호씨는 공연중 한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미국이 최고다. 음악은 미국에서 온 거다. 미국이 한국에 음악 및 다른 것들을 전파해줘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으며 “한국은 5천 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미국은 200년 짧은 역사 동안 훨씬 많은 것을 이룩해냈다.”고 말했다.3)
현재 우리 사회에 한국과 한국인을 비난 내지 비하하는 서적들이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 의해 많이 출간되어 있으며, 그러한 서적들이 널리 읽히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를 비하하는 발언들을 자제할 뿐이지 내심으로는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4)
한국과 한국인을 비판하는 책을 낸 외국인들이 대부분 신문과 잡지들에서 칼럼니스트 또는 대담자로서 환영받았다는 사실도 우리 사회 안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비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흐름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출판시장에서 ‘한국·한국인 비판’은 시장성이 있으며, 외국인들이 출간한 책 중에는 이러한 시장성을 이용하여 출간된 것도 적지 않다.5)
모모세 타다시가 토로한 바와 같이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여러 출판사들이 이러한 관심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였다. 예를 들어 이케하라 마모루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은 일본적인 사고와 관습을 기준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비판한 것으로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없이 우리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한국인이 저술한 책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97년에 출간된 최준식의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라는 책은 아파트에서 주차 문제로 욕설까지 들었던 자기 아내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한국인에게 문화가 있는가’라는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예로 들었던 사건은 상대방의 잘못만을 지나치게 과장하였으며, 개인적인 경험을 한국인 전반에 걸쳐 확대 해석하였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 욕을 한 남자를 ‘정신적으로 불가촉천민’이며, 남자가 한 욕을 ‘대한민국, 아니 단군 조선 이래로 한국 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말’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이 사건 이후에 그 남자에 대해 알아본 후 “우리 나라는 명문 학교를 나오고 아이들끼리 같은 학교에 다녀도, 또 바로 옆 동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고단위의 욕을 하고 사는 ‘불쌍놈’의 나라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6)
이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한 그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제대로 비판하기는 어려웠다. 그가 한국인의 문제로 지적한 내용은 목차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집단을 못 떠나는 한국인, 가족 집단주의와 한국인, 한국인의 우리주의(Weness), 아래위를 따져야 시원한 한국인, 다른 것을 못 참는 한국인, 그래도 멀리 보는 한국인, 신명에 둘째라면 서러운 한국인, 한국의 문화에 나타난 무교의 영향 등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는 한국과 한국인의 긍정적인 모습은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다.
[PAGE BREAK]최준식이 한국인에 대해 비판한 내용은 조선일보 논설고문인 홍사중이 쓴 <<한국인, 가치관은 있는가>>라는 책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가 지적한 한국인의 문제점으로는 화끈하게 놀기를 좋아하며, 양철냄비와 같이 달아오르기도 쉽지만 식기도 잘 하며,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권위를 중시하지 않으며, 우물 안 개구리로서 시야가 좁고 근시안적이며, 허풍을 떨기 좋아하며, 예의를 모르며, 오만한 졸부 근성 등이 있다.
이러한 근거없는 비판은 미국인 승려 현각이 자신의 구도 생활을 기록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 기술한 내용과 대조된다. 현각은 이 책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예로 그는 한국이 IMF의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을 때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해서 미국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너도 나도 한 마음이 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며, 자신이 한국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하였다.7)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에게도 널리 확산되어 있다. 청소년이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이다. 반부패국민연대가 서울 시내 남녀 중고생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여 2002년 1월 2일 발표한 “청소년 부패-반부패의식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부패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1.6%가 ‘매우 그렇다’고 응답하는 등 91%의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가 부패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가 부패한 가장 커다란 이유’로 ‘정치권의 부패’(47.9%)를 꼽았으며, ‘부패를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의 부재’(17%), ‘연고주의’(16%), ‘사회 문화적 환경’(14%)을 그 다음으로 지목했다. 이와 함께 ‘아무도 보지 않으면 법질서를 지킬 필요가 없는가’는 질문에는 41.3%(매우 그렇다 7.4%, 가끔 그렇다 33.9%)가 ‘그렇다’고 답하였으며, 또 ‘부정부패를 목격해도 나에게 손해가 된다면 모른 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33%의 청소년들이 ‘그럴 것’(매우 그렇다 11.9%, 가끔 그렇다 21.1%)이라고 대답했다. 세계 100개 국가 중 부패순위를 매길 때 청소년의 72.5%가 한국을 ‘부패순위 1~20위군에 속하는 부패국가’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조사 대상의 82%는 ‘내가 어른이 될 때쯤 한국사회의 부패가 더 심해지거나 지금과 별 차이 없을 것’이라고 응답했다.8)

3.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교육

기성세대는 물론 청소년이 한국과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9)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교육에서는 청소년에게 민족 정체성 내지 국가 자부심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민족 정체성 확립과 관련이 있는 대표적인 교과는 ‘국사’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하면 국사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의 총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교과목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함양시키는 구실을 한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국사교육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역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고 민족 정체성의 근원이기 때문에 이를 주체적으로 이해한다.
[PAGE BREAK]둘째, 역사는 현재의 뿌리이며 미래를 전망하는 단서이기 때문에 이를 발전적으로 파악한다. 셋째, 역사는 우리 민족의 삶의 총체이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파악한다. 넷째, 역사 자료를 분석, 비판, 종합하는 능력을 길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운다. 다섯째, 역사를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여 새 문화 창조와 사회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태도를 가진다.10)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제시한 대로 국사가 우리 민족의 문화 전통을 확인시켜 민족사 전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정신을 기르고, 민족의 저력을 생동감 있게 이해하여 다가오는 21세기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가진 교과라고 한다면 국사교육은 그러한 목적에 맞게 강조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7차 교육과정에서 국사교육은 제6차 교육과정에 비해 배당시간도 줄어들고 있는 등 전반적으로 약화되었다. 한국에서 국사교육이 약화되고 있는 것과 달리 오히려 일본과 중국에서는 국사교육이 강화되고 있다.11)
민족 정체성과 국가 자부심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사, 특히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근 현대사 교육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1970년대 후반 중국에서 대외개방이 본격화되면서 미국과 서유럽국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1991년 3월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인 강택민이 국가교육위원회 책임자에게 “소학생과 중학생 나아가서 대학생들에게 이르기까지 중국 근 현대사 및 국정교육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지시를 하였으며, 이후 역사교육 특히 근 현대사 교육이 크게 강화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2)
우리 나라에서도 제7차 교육과정에서 ‘한국근·현대사’라는 교과목이 새로 만들어지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 교과는 고등학교 제2학년과 3학년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심화선택과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의도하는 교육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울러 이 교과의 교육목표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 교과의 행동영역별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10학년의 우리 역사 이해를 토대로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여 종합적으로 인식한다. 둘째, 학습내용을 구조화하여 주제 중심의 시대사로 파악함으로써 우리의 근·현대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한다. 셋째, 우리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근·현대사에 나타난 특성을 세계사적 보편성과 관련하여 이해한다. 넷째, 역사의식을 가지고 우리 민족의 현실을 인식하여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를 가진다. 다섯째,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비교,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여섯째, 역사 자료를 조사, 분석, 종합하는 기능과 역사 인식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른다.13)
‘한국근·현대사’의 교육목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중국에서 근·현대사 교육을 통해 성취하려는 목표와 비교해 보면 잘 나타난다. 중국의 근·현대사의 교육목표 중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이 근대에 와서 빈곤하고 낙후하게 된 것은 제국주의가 중국을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침략·약탈한 것과 청 정부 반동통치배들의 부패성이 그의 근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여야 한다.
[PAGE BREAK]둘째, 근대사에서 제국주의와 중국의 봉건주의가 서로 결탁하여 중국을 반(半)식민지로 전락시킨 과정을 역시 중국인민들이 제국주의 및 그 주구를 반대하여 싸운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야 한다. 셋째, 근대사에서 중국의 인민대중과 많은 지사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굴함없이 진행한 영용한 투쟁 및 그 가운데서 겪은 좌절과 실패를 알게 하여야 하며, 중국공산당이 창건되어서야 중국혁명은 승리를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여야 한다.14)
중국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민족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한국인의 투쟁과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사회적 모순들이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해방된 지 60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반민족적 행위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1948년에 만들어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1949년 6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불법적으로 경찰에 의해 해체된 후 정부 차원에서 반민족적 문제는 묻혀 있었다. 2004년 3월 초 비로소 국회에서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통과되기는 했으나 법안의 본질이 크게 왜곡되었다는 지적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 법으로 반민족행위를 제대로 규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중국에서 근·현대사를 중시하고 그 목표를 올바로 설정할 수 있었던 데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 근 현대사를 올바르게 가르치기는커녕 제대로 된 연구조차 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사회적 모순들 중 상당수는 식민지 시기의 유산과 분단으로 인한 모순들이 중층으로 결합된 것이며, 우리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해방 이후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전세계가 놀랄 만한 성과들을 단기간에 성취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재 상태에서 청소년에게 올바른 근 현대사 교육을 하기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해방 이후 한국인이 성취해 온 역사적 성과라도 제대로 가르쳐 민족 정체성과 국가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일구어낸 역사적 성취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모순,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인의 노력, 그리고 앞으로 해결하여야 할 과제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은 한국과 한국사회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비난보다는 객관적이고 진보적인 비판을 바탕으로 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성세대는 물론 청소년들도 불신하고 있는 정치 분야만 해도 아직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많지만 그 동안 ‘성역’이라고 일컬어졌던 청와대와 국정원에까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는 등 정치권이 안고 있었던 고질적인 병폐들이 상당 부분 치유되고 있다. 해방 이후 거둔 정치 분야의 대표적인 성과는 평화적 정권 교체이다. 평화적 정권 교체는 민주화의 진전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군부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PAGE BREAK]민주화와 평화적 정권 교체는 우리 사회의 최대과제였던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 과제들을 성취하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찾을 수 있었다. 제3세계 국가 중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한 국가는 아직도 찾기 쉽지 않다.
경제 분야에서도 우리 사회는 자본과 자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여 2003년 실질 GDP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10위일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다. 외환위기로 1997년 12월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란이라고 표현되는 IMF의 재정지원을 받기도 하였지만 3년 8개월만에 IMF 체제를 졸업하였다.15)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이 IMF를 졸업한 것에 대해 영국의 는 “세계가 자랑할 만한 극적인 성과”라고 하면서 “한국이 개혁과 인내를 통해 이룩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보도하였다.16)
1983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이스라엘이 A등급의 국가신용등급을 회복하는데 12년이 걸렸지만17) 한국은 4년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우리의 저력은 잘 나타난다.18)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우리 사회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다. 해방 이후 서구, 특히 미국으로부터 생활양식을 구성하는 상당 부분을 수입하였던 한국이 최근에는 문화를 수출하는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이른바 ‘한류’(韓流) 열풍은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올드 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것을 필두로 최근 한국영화들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잇달아 수상하고 있는 것에서 나타나듯이 세계 영화계는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독특한 개성과 열정을 새로운 에너지로 평가하고 있다. 문화를 대체로 수용만 하던 한국의 문화가 해외에서 광범위하게 주목받고, 수출되는 현상은 우리 역사가 시작된 이래 거의 초유의 일로서 한국인이라면 충분한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4. 맺음말

2003년 6월 발표한 17∼39세 남녀 1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일기획의 P세대 보고서 <대한민국 변화의 태풍 - ‘젊은 그들’을 말한다>에 따르면 P세대는 한국사회의 주역으로 부상하였다고 한다. P세대는 월드컵, 대선, 촛불시위 등을 거치며 나타난 세대로 사회 전반에 걸친 적극적인 참여(Participation) 속에서 열정(Passion)과 힘(Potential Power)을 바탕으로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는 세대(Paradigm-shifter)이다. 조사대상자의 80%가 ‘내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응답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참여를 통한 사회변화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19)
사회 변화에 적극적인 P세대는 기성세대들이 우리 사회를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2004년 충청북도 교육청에서 조사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대부분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PAGE BREAK]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이 성공하려면 국가관과 민족관 등에서 기성세대보다 비교적 건전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교육내용을 결정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내용의 핵심은 모국어를 사랑하는 교육, 근 현대사를 위주로 한 교육이며, 한국인이 성취한 역사적 성취들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이 성공되면 우리 청소년들은 민족공동체 의식,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모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민족의 역군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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