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육·구, 삼·육·구”
14년만에 만나 손뼉을 치며 빙 둘러앉아 ‘삼·육·구’게임을 하며 어느새 다 커버린 너희들과 마셨던 술 한 잔은 그 어느 술보다 달콤했단다. 언제나 씩씩했던 창원이, 얼렁뚱땅 백호, 새침이 영실이, 예쁜이 세은이 모두가 정다운 내 아이들이었지.
스승의 날이라고 찾아온 너희들에게 마음속으로 흐뭇함을 느끼며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창원이가 물었지.
“선생님, 그런데 왜 그렇게 기합을 많이
주셨어요?”
“그래, 내가 기합을 많이 주었었나?”
대답을 하면서도 순간 당황스럽기까지 하더라.
“다 저희 잘못이죠. 선생님께서 저희들에게 참 자상하게 잘 해주셨는데요, 가끔 발표를 안 한다고 화를 내시며, 모두 일어나! 운동장 두 바퀴. 선착순!” 제스처를 취하며 넉살스럽게 말하는 기훈이의 고마운 말을 들으며 내 머릿속에서는 그때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단다.
혈기도 왕성할 때이고 세상에서 최고로 열심히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너희를 대했으니 여러 가지로 욕심이 좀 지나쳤나보다. 내 자신의 교육방법에 대해 잘못된 점은 없는지, 문제해결 방법을 찾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
나를 탓하기 전에 모두 너희들의 부족 때문인 것으로 전가시킨 채, 체벌이 동기가 되고 자극이 되며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인 것으로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구나.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귀여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의 조상들은 서당에서 천자문을 가르치면서 종아리 몇 대쯤 때리는 것을 좋은 인간을 만들기 위한 당연한 교육 행위로 여겨 왔지. 현장의 많은 교사들이 그래 왔고, 이 선생님 또한 그러한 생각으로 너희들을 대했단다.
그래도 너희들은 이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묵묵히 따라 주었지.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런 너희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고맙다.
지금은 학교 체벌이 교육적이냐, 비교육적이냐에 대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동안 교육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일선 학교에 ‘체벌 대신 사랑을 가지고 학생을 지도하라’는 내용을 내려보내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방법적 측면의 체벌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구나. 선생님도 사랑하는 마음만 담겨 있다면 체벌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요즘 어질러진 사회적 세태 속에 매우 우려할 만한 사건을 종종 접하면서 과연 어느 것이 효과적인 방법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너희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난 뒤부터 ‘체벌을 억제하고 체벌 대신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며, 격려와 칭찬 위주의 대화를 통해서 지도했을 때 사제지간에 서로 신뢰하게 되고 즐거운 학교 생활을 만들어 갈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너희들 덕분에 후배들은 덕(?)을 보게 된 셈이지.
“컴퓨터 고장나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즉시 고쳐드리겠습니다.”라는 백호.
“이(齒) 아프면 저희 병원으로 오세요.” 라는 치과 병원 간호사 윤경이.
“은행은 저희 은행으로요.” 라는 영실이.
“선생님, 그런데 왜 그리 기합을 많이 주셨어요?”라고 묻던 창원이의 말 모두가 선생님한테 큰 교훈을 주었다. 고맙다 제자들아.
나의 은사님이시자 현재 한 학교에서 모시게 된 김창규 교장 선생님의 “칭찬은 달리는 말에게 날개를 달아 준다.”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앞으로 제자들과의 만남에서는 좀더 자랑스러운 스승이 되고, 친구 같은 스승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련다.
그날 와줬던 창원이, 백호, 영실이, 세은이를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아! 사랑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면서 노력하자꾸나. 이 말 안 들으면 운동장 두 바퀴 선착순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