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여름방학 즐겁고 유익하게 보냈겠지. 선생님은 취미인 달리기를 하면서 여름을 즐기며 보냈단다. 내가 이번 여름방학에 한 일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너희들에게 유적 발굴 현장체험을 시킨 것이다.
선생님은 학창 시절부터 발굴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였고, 교사가 된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발굴 현장으로 가서 땅을 파곤 했지. 그런 관계로 중·고등학생들이 발굴 현장체험을 한다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질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창 중에 연구원 또는 학예연구사로 있는 친구에게 협조를 얻어 2000년 여름방학 때 의왕부곡중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회암사지 발굴 현장 체험학습을 실시한 적이 있었지.
그 이후로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실업계 고등학교인 관악정보산업고등학교에 부임해서도 학생들의 성향을 보아 발굴에 관심 있는 학생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2학년생인 너희들은 내가 우리 학교에 온 이래로 학습에 대한 열의가 가장 높은 학생들이었어. 본능적으로 너희들을 발굴 현장에 데려가 봐야겠다는 의욕이 발동하더구나. 그래서 기말고사를 마친 직후 수업시간에 발굴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거야.
국사 시간에 배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유적, 유물을 상기시키면서 비록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만 보람 있을 것이고,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너희들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았단다. 예상대로 한 반에 몇 명씩 관심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쁨을 느끼며 쾌재를 불렀지. 방학중에 시간이 맞는 학생을 2박 3일 일정으로 2개조로 나누어 1차로 화성시 동탄면 소재 유적지 발굴 현장과, 2차로 양주시 회암리 화암사지 발굴 현장체험학습을 하기로 하였다.
기흥 인터체인지까지 마중 나온 김재연 연구원의 안내로 삼성전자가 계획중인 화성 지방 산업단지 내 발굴 현장에 도착했지. 김 연구원의 발굴 현장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유물 수장고에 가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청동기 시대의 토기와 석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코로 냄새도 맡아 보았다. 여기까지는 ‘뭔가 즐거운 일이 많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는 너무 뜨거웠고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너희들이 잘 견뎌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내일 아침 집에 가면 안 됩니까?”
“이런 정도를 못 참는 놈들이 사회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내일 가버리면 여기 계신 분들이 얼마나 실망을 하시겠으며, 너희들 마음도 찜찜할 것이다.”
1시간 정도 작업후 포기하려는 너희들을 나무라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
너희들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도 가동 안 되는 구형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괴로웠을 것이고, 컨테이너 박스 속에서 생활하느라 불편했겠고, 뙤약볕 속에서 땅을 파고, 긁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여하튼 힘들었지만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 나는 단언한다. 이번 체험이 너희들에게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번의 체험학습과 같이 힘든 과정을 겪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들은 힘든 과정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인내력을 길렀을 것이다. 그리고 멀리 공주에서부터 2시간 동안 이동하여 하루 종일 일하고 3만 원 벌어 가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을 것이며, 우리 부모님께서 나를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을 고생을 하시고 계신가를 느꼈을 것이다.
선생님은 늘 너희들에게 땀 흘리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음을 강조한다. 최선을 다한 뒤에 찾아오는 노동의 대가, 땀 흘리며 운동한 뒤에 오는 상쾌함, 열심히 공부한 뒤에 얻는 결과에 대한 보람 등이 그것이다. 힘들여 얻지 않은 즐거움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킨다.
나는 이번 발굴 현장체험학습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힘들었지만 일정을 끝까지 마친 너희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고맙다. 사랑하는 제자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