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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자격고사화 하고 대학에 학생선발권 주자

전문가 집단으로 수능관리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구성하고 이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차제에 수능제도 그 자체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져야 한다. 2008년 이후의 수능은 사실상 변별력이 없는 등급제 수능으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수능을 자격고사로 하고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남경희 | 서울교대 교수


수능 부정 사태 왜 막지 못했나
대학 입학 수능 부정 사건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내신 부풀리기, 고교등급제, 등급제 물수능 예고, 고교 간 학력 격차, 천정부지 사교육비, 뒷북치기 교육행정 등에 이어 조직적 수능 부정이 2004년 한국교육을 부끄럽게 하는 자화상 군단에 합류하고 있다. 교육당국도,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와 교사도, 배우는 학생도 모두 자기 위치와 자기 역할에서 저만큼 탈선하고 있다. 교육 주체들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수능은 우리 사회가 학벌과 성적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회라는 점과 전국에서 하루에 동시에 치러지는 시험이라는 특성으로 다양한 부정 행위가 발생할 소지가 매우 높다. 이런 점에서 수능 부정과의 싸움이란 시험 관리 측면도 충분히 고려하여 휴대폰을 비롯한 인터넷 기기들의 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부정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이번 수능 부정은 지난 1993년 후기대 입시에서 무선호출기를 이용한 ‘비퍼(beeper)’ 입시 부정사건과 수법이 동일하다. ‘선수’ 역할을 맡은 학생이 답안을 작성한 후 시험장을 나와 ‘중계 도우미’에게 답안을 건넨 다음, 커닝 수험생들의 호출기로 전송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뼈아픈 교훈이 있었음에도 교육당국의 무사안일한 대응과 대처로 수능 부정이라는 재앙이 일어난 것이다.
교육당국의 거듭되는 실책과 무능으로 국민들의 수능시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한 번의 승부로 인생을 좌우하는 수능의 속성으로 한탕주의 사고가 만연하고 갖가지 입시 부정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 수능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능 부정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어느 고교 교사의 고백처럼 ‘수단의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려는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다’는 극도로 위험한 이기적 사고 방식이 수능 부정이라는 엄청난 화를 자초한 것이다. 광주의 수능 부정은 개별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도덕성을 함양할 교육의 장에서 거꾸로 내신 부풀리기나 수능 부정 같은 파렴치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으니 한마디로 도덕과 양심이 송두리째 실종된 사회이다. 교육의 장이 이 정도이니 우리 사회에서 도덕과 양심을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있는 교육 현실인데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저 덮으려고 하거나 모른 체하고, 실책의 반복 후 ‘사후 약방문’식 행정이나 하는 교육당국일 바에야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교육부 해체론이 그 전부터 불거져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음미해 볼 일이다.

수능 부정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내신 부풀리기를 보더라도, ‘수’를 받았지만 석차는 과목에서 최하위인 경우도 있고, 1등이 100명이 넘는 과목도 많으며, 심한 경우 수강인원 138명 중 134명이 1등인 경우도 있다. 같은 실력을 가지고서도 학교에 따라 어느 학생은 ‘수’를 받고, 어느 학생은 ‘가’를 받고 있는 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막아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왔다.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의 미온적 대처로 불공정한 내신성적이 대학 입학과 수험생의 진로를 좌우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 주소다.

내신 부풀리기를 하는 학교나 교사는,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범죄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가장 모범을 보이고 가장 규범을 준수해야 할 학교나 교사가 도덕적으로 부정한 성적 부풀리기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학생들이 그런 학교와 교사들에게서 무엇을 배우겠는가. 성적 지상주의 사고방식을 경계할 학교가 거꾸로 내신을 부풀리고 커닝을 묵인하여 학생들에게 도덕불감증에 빠진 모방 범죄를 일으킬 심성을 키워주는 셈이다.

그저 눈앞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덕적 타락을 목격했을 테니 이들이 이번과 같은 수능 부정을 하지 않았겠는가. 광주 지역의 수능 부정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학교와 교사가 도덕적 모범을 보이지 아니하고 사회가 도덕률로서 정직을 존경하지 않은 결과로 발생한 산물이라 하겠다.

학생들의 탈법과 불법에 대한 지도 감독도 그렇다. 학생들이 커닝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후 처리가 귀찮아서거나 지나친 온정주의로 탈법이나 불법을 묵인하는 것은 엄청난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다. 탈법과 불법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잘못된 법의식과 도덕 불감증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탈법과 불법에 눈을 감은 사례가 너무 많다. 과거에는 동네나 거리에서 잘못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엄하게 꾸짖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못 본 체 외면만 하니 청소년들의 탈법과 불법이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수능 부정 학생들만의 잘못인가
이번 수능 부정사건은,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청소년들의 도덕적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민 모두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학생들만의 잘못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할 정도의 조직적인 범죄형 부정이다.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학벌주의 병리가 자리잡고 있다.

먼저,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경제성장의 과실 배분 과정에서 기성세대들의 심각한 도덕적 타락을 초래하였다. 도덕적 타락은 천박한 이기심과 도덕 불감증으로 나타난다. 천박한 이기심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하여 동기나 수단, 방법 따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목적 성취에만 혈안이 돼 매달린다.

이로 인한 도덕 불감증은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을 선악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세상이 다 그런데 어쨌다는 것이냐 하는 식의 풍조가 만연하여 탈법과 불법이 정의와 정직을 몰아내고 염치를 모를 정도로 사람들의 양심을 마비시킨다.

수능 부정 사건은 이와 같은 기성세대의 도덕적 타락이 청소년들에게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투사된 사건이라 하겠다. 수능에서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을 떠나 어떻게 하든지 다른 학생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우위에 서겠다는 천박한 이기심도 그렇고, 커닝을 좀 했기로 뭐가 그리 잘못됐느냐, 나만 커닝한 일도 아니고 어쩌다 운이 나빠 들통난 것뿐인데 하는 식의 도덕 불감증이 그렇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는 실력보다 학벌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는 학벌 사회가 되었다. 이는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기능주의 교육을 우선한 결과 서열에 따른 학벌이 중시돼 나타난 병리 현상이라 하겠다. 학벌주의 사회의 병폐는 수없이 많은 논자가 지적해 왔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학벌은 관청이나 대기업과 같은 조직체 내부에서 특정 학교 출신이 패거리가 되어 해당 구성원들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다.

우리의 대학 서열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권력을 독점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학벌을 중시할 수밖에 없게 되는 사회 구조를 연출하게 된다. 학벌 사회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기성세대가 거꾸로 학벌을 중시하게 된다는 것은 학벌이라는 사회 병리가 치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 부정 사건은 기성세대의 학벌중시 풍조가 청소년들의 가치관에 그대로 투사된 사건이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서열이 상위에 있는 대학을 가겠다는 것은 자신도 그 대학 구성원에 끼임으로써 인생을 바꿔보고 권력 독점의 다양한 과실 배분에 특혜를 받아 보겠다는 왜곡된 의식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다.

수능 부정 사태 극복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당국은 내신 부풀리기가 고교등급제라는 돌출 변수를 만나 커다란 사회 문제로 비화하자 마지못해 내신 부풀리기를 단속하겠다는 식의 면피용 행정을 하더니 이번 수능 부정 사건에서도 그 파장이 커지자 호들갑을 떠는 뒷북치기 행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로는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지 못한다.

교육당국은 교사들이나 청소년들이 내신 부풀리기나 수능 부정과 같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교육 환경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전문가 집단으로 수능관리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구성하고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국민 불안을 해소시켜야 한다. 또한 차제에 수능제도 그 자체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져야 한다. 2008년 이후의 수능은 사실상 변별력이 없는 등급제 수능으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수능을 자격고사로 하고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교육환경은 매우 중요한 변인이다. 청소년들이 공정하고 정직한 경쟁을 통하여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도록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중요하다. 교육당국이 수능 부정을 차단하는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한다면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학생들을 범죄의 소굴로 들어가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 역시 도덕적 타락이나 학벌주의 병리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언제든지 수능 부정과 유사한 범죄에 빠지게 하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번 수능부정 사건을 우리 사회를 자성해 보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바르게 하는 일은 스스로를 정직하게 하는 일로, 정직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핵심이 되고 생명력이 된다는 공자의 말씀을 깊이 음미할 일이다. 궁극적으로 교육당국, 학교, 교사, 학생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도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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