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성교육 하에서의 수준별 이동수업은 곧 우열반 편성을 뜻한다. 우열반에 들어가려는 학생들간의 경쟁은 서열화를 더욱 고착시키고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하고 치맛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이의 실시를 통해 얻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나타나 학교교육을 더욱 파행케 하여 위기적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1. 들어가며 정부는 지난 12월 22일에 발표한 수월성교육 대책이 현행 평준화제도 하에서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를 발굴·양성할 수 있어 교육의 보편성과 수월성이 조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찮다. 개혁을 표방하며 발표된 수많은 교육정책들이 학교 현장의 적합성 문제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면서 흐지부지하게 된 전례 때문이다. 이번 수월성교육 대책도 교육현장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하부구조가 취약하고, 입시와 학벌위주의 사회구조 하에서 과연 계획대로 실현이 가능할 것인가이다. 발표된 수월성교육의 핵심은 전체 중등학교의 절반을 대상으로 확대 실시되는 수준별 이동수업에 있다고 판단된다. 즉, 수준별 이동수업을 통하여 현행 고교평준화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함으로써 학교교육을 내실화하여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사교육비를 경감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본고는 대학입시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문계 고교 교사의 시각에서 수월성교육 대책과 그 세부적인 계획에 대해 학교현장의 적합성 분석을 통해 부작용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수월성교육의 개선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2. 학교현장의 적합성 분석 수월성교육 대책에서 제시된 수월성교육 프로그램에 목표, 방향, 실현 내용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와 재정 지원조건 등을 명시함으로써 수월성교육에 대한 정부의 정책 실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안들은 수월성교육 희망자를 겨냥한 대규모 사교육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큰 데다, 우열반 편성에 따른 학내 갈등, 관련 전문교사나 교과담당 교사의 부족으로 인한 교육부실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계획대로 추진될지는 의문이다. 다음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영재교육이 초등학교 이전의 유아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쳐 수월성교육을 대비한 각종 과외가 성행할 수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수월성교육 대상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번 대책은 기존의 영재교육에 관심이 없던 부모마저 관심을 갖게 하였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초등학생부터 선행학습이 이뤄지는 등 사교육의 폐해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이제는 수월성교육을 대비한 또다른 과외가 성행할 것이 예상된다.
둘째, 수준별 이동수업이 우열반 편성으로 변질될 가능성과 수월반 대상이 되기 위한 또다른 사교육을 조장하여 사교육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수월성교육 하에서의 수준별 이동수업은 곧 우열반 편성을 뜻한다. 우열반에 들어가려는 학생들간의 경쟁은 서열화를 더욱 고착시키고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하고 치맛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이의 실시를 통해 얻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나타나 학교교육을 더욱 파행케 하여 위기적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셋째, 교육적 지원을 충분히 받고 자란 계층의 자녀들이 수월성교육의 수혜자의 대부분이 되고 상대적으로 빈곤층 자녀들은 교육적으로 더욱 소외될 소지를 낳을 수 있다. 현 교육체제에서도 빈곤층 자녀들의 교육적 소외가 심각한데, 수월성 교육을 위한 사교육이 횡행하고 관심이 고조된다면 그에 적합한 대폭적인 지원을 받은 부유층 자녀들이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는 반면에 빈곤층 자녀들의 교육적 소외를 더욱 깊게 할 소지가 크다.
넷째, 일반학교에서 수준별 이동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교사, 수업내용, 수업평가, 수업환경지원조건 개선 등이 필수적인데 이와 관련된 대책이 미흡하다. 이는 교사와 학교가 수준별 이동수업의 효과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강력한 권고에 의해 수준별 이동수업을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실시를 하고, 계획하고 있는 게 있는 학교 현실로 그 만큼 학교현장이 수월성교육 실시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다섯째, 트래킹 제도, 집중이수과정, AP제도 등의 미국식 교육제도가 교육 인프라와 과열입시 등의 한국적 교육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될 때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트레킹 제도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수준에 따른 적절한 서로 다른 과목을 학습하게 되고, 학습한 과목의 내용을 평가받게 된다. 교사들은 외부에서 개발된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별도로 교수-학습 자료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교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의 성적을 상대적 석차로 파악하는 것은 복잡하고 매우 어렵다.
여섯째, 2008년 대학입시는 전적으로 학교내신을 바탕으로 선발하는 제도인데 수월성교육과 대학입시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이다. 치열한 입시경쟁구조에서 일반고에서는 학교내신이 부풀려지고, 특목고 학생들이 내신의 불리 때문에 일반고로 전입하고, 검정고시 등으로 진로를 바꾸어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외국으로 유학 가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개선 방향과 과제 첫째, 수월성교육의 성패는 훌륭한 교사자원의 확보와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지원체제의 확보에 있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학생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 교사의 전문적인 지도능력(교과지도 능력, 진로지도 능력 등)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의 수월성은 결국 학교에서 교사의 전문성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교사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교사의 사명감 고취와 전문성을 향상할 수 있는 교사지원과 평가체제가 확대되어야 하겠다.
둘째, 수월성교육을 지원하고 가능하게 하는 학교의 시설이나 환경 등 교육 인프라가 구축되고 조성되어야 한다. 수준별 수업의 경우 여유 교실이 확보되어 분반의 수준을 세분화할 때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학교 교실의 크기가 획일화되어 있어, 학습능력에 따라 필요한 수만큼 소집단을 구성하여 수업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일률적인 크기의 교실이 아닌 학습단위의 수를 조정하여 수업할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교실 설치가 요구되는 등 교육환경 개선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셋째, 학교 내 진로 상담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학교가 학생들의 특기나 적성, 그리고 학업수준에 적합한 진로를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진로선택으로 인해 학생 개인과 국가의 교육력 손실은 엄청난 것이다. 학생들을 단기적인 입시가 아닌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진로지도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수월성교육에서 소외가 예상되는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이 자신의 재능을 사장시키지 않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수월성 향상 지원대책을 강구하여, 부모의 경제적 지위로 인한 교육불평등 현상이 완화될 수 있는 장치가 요구된다.
넷째, 단위학교 운영의 내실화도 학교 수월성을 보장하는 또 다른 측면이다. 학교 내적인 요인 중에서 수월성을 저하시키는 교원갈등, 교원고충, 교수-학습 개선, 교사평가, 학교평가 등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통해 단위학교의 교육력을 증가시키는 컨설팅 장학체제가 적극 도입되어야 한다.
다섯째, 수준별교육의 실시를 저해하는 입시위주의 풍토, 대학서열화와 학벌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현재 학벌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문화,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구조, 입시위주의 경쟁적 학습풍토, 진로지도가 소홀한 학교실정, 학부모의 대학지상주의에 따른 교육열 등을 고려할 때 입시와 무관한 교육정책은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이라도 입시와 관련되지 않으면 유명무실하게 되는 것이 우리교육의 현실이다. 이를 위해 대학을 특성화하고 학벌보다 실력, 능력에 의해 인재가 등용될 수 있고, 나아가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4. 나가며 우수한 인재의 발굴과 육성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과제다. 수월성교육은 그 기본방향 수립과 운영에 있어서 기본 철학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아주 많은 폐해를 양산할 수 있는 제도로 인식된다. ‘누구를 위한 수월성교육인가?’ 수월성교육의 기본적 관점은 부모의 욕심이나 국가적 엘리트의 조직적 양산을 위한 이익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수월성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 바탕을 두고 교육의 수월성을 제고하고, 고교평준화 제도에서 야기된 학업성취도의 하향평준화를 보완하는 대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이라도 교육현장의 적합성과 거리가 먼 섣부른 정책 발표와 강행이 학교교육을 불신하게 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를 떠나게 해 학교교육위기를 초래한 주요 요인임은 지난날 교육개혁정책 실패가 주는 교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 국가백년지대계라는 말은 백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으로 교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 경비의 투여가 이루어져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