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일을 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나는 감히 그 대답을 교사라고 한다. 제일 창의적인 움직임,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학교가 아닌가? 창의적이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학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창의성이 학교 현장에 필요하다고 야단일까? 오히려 학교현장이 창의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져 있는 탓이 아닐까?
그러나 내 교실에서만큼은 창의적인 발걸음을 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공책의 제목은 스스로 붙이게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서 학교라는 곳에 처음 적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교사들은 어떤 서비스를 하고 있는가? 공책을 나누어 주고 모두 제목을 일제히 달아 준다.
‘창의성 교실’ ‘창의력 주머니’ ‘나의 하루 일기’ ‘알고 싶어요’ ‘그림일기’ 등등.
나름대로 좋은 제목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컴퓨터에서 똑같이 뽑아서 공책에 깔끔하게 붙여서 나누어 준다. 사물함에는 똑같은 스티커를 붙여 주고 나름대로 사물함 뚜껑을 잘 이용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먼저 아이들과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여러 가지 공책이나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제목도 스스로 붙이고 관심을 가지게 하면 좋다. 3학년인 우리 반 어린이가 작년에 일기장에 붙인 제목에 으뜸을 뽑자면 ‘나의 하루 경사났네’이다. 제목 옆에는 예쁘게 오선 악보를 그려 놓았다. 버금가는 제목은 ‘새로운 하루’였다. 아이들은 자신이 지은 제목을 통해서 자신의 창의성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자기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발성도 생기고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개방성도 생길 수 있다.
사물함 명패도 나름대로 정하도록 했다. 올해는 특히 눈에 띄는 제목을 찾지는 못했지만 ‘나의 문방구 창고’라든지 ‘나 말고 건드리지 마’ 등의 제목으로 아이들은 자신만의 새로움을 추구하며 노력할 수 있었다. 파일도 교실마다 예쁘게 정리해서 제목까지 똑같이 출력하여 잘 붙여놓곤 한다. 그러한 일들은 컴퓨터만 있으면 교사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파일 제목을 스스로 붙이고 표지 그림도 자신이 그리게 하면 좋다.
교실환경에서 아이들의 작품도 선생님들이 예쁘게 붙여 주어야 직성이 풀리고 관심이 있는 교사로 보인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자기의 결과물을 스스로 떼고 붙일 수 있는 공간과 자유로움 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에 좀 정돈되어 보이지 않고 느낌이 거북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소중하게 자신의 작품을 만지고 감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사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적어도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하루하루 새로운 것이다. 그것이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 해도 늘 새로움을 향한 발자국을 떼고 있고 새로운 몸짓, 새로운 생각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 혹시나 그런 아이들 앞에서 우리가 잘 인도해 준다고 하면서 그들의 사고와 창의성을 막고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창의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가르쳐 보려고 시도하게 되고 아이들의 창의성이 보인다. 수업중에 아이들은 때로 종이를 돌돌 말아서 교사를 쳐다본다. 그러면 나는 예전에는 당장 내리라고 했다. 그러나 이젠 아이의 그 순간의 시각을 먼저 생각한다. 그 아이의 호기심, 민감성, 유창성, 융통성, 독창성, 상상력을 생각하며 미래에 그 아이가 창조해 낼 세상도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 본다.
“그렇게 보니까 뭐가 다르게 보이니”라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남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아서 그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었지. 그렇지만 지금은 그걸 내리고 나를 바로 보아라” 하고 말한다. 아이들의 서투른 작품 하나도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 그 아이의 머리와 손이 애써 만들어 놓은 어떤 작품에서도 최대한 그 아이가 본 세계를 발견해 보려고 애쓰고 독려해 줄 수 있다.
컴퓨터가 교실에 들어오고 프로젝션 TV가 모든 학교에 보급되어 ICT 교육이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교사들이 그것을 오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들의 교실에서 컴퓨터가 아이들의 사고과정과 작용을 막거나 대신하고 있는 점은 없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어느 날 아이가 집에 와서 툴툴거렸다.
“우리 국어 선생님은 프로젝션 TV에 정답을 써 주고 베끼라고 해. 그런 건 아주 재미없어. 생각을 할 수가 없잖아.”
학교에 와서 정답을 베끼고 지식을 충족시키던 시대는 지났다. 그런 것은 이제 특별한 자격이 없어도 누구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가 있고 온갖 미디어들이 존재하고 정보의 홍수라고 할 만큼 지식검색은 어디서라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이제 교사가 전문성을 내세우려면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창의성이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있는 것도 특별한 상황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학교 현장이 창의성의 보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