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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를 즐길 줄 아는 보노보 원숭이

한국, 일본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2002년 침팬지의 게놈 지도 초안을 발표했다. 침팬지와 사람의 생명체 설계도를 열어 보니 유전 정보를 기록한 DNA 염기서열 가운데 98.8%가 같았다. 침팬지와 인간의 염기서열 차이는 1.2%에 불과하다. 특히, 피그미 침팬지로 불리는 ‘보노보’는 인간과 닮은 점이 많다. 일반 침팬지는 포악하며 공격적인데 반해 침팬지의 아종인 보노보는 평화와 사랑을 즐긴다.

침팬지는 유전자로 볼 때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침팬지에게 거울을 주면 거울 속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침팬지도 사람처럼 자의식을 갖고 있다. 다른 원숭이들은 이런 자의식이 나타나지 않는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인간과 유전자가 흡사한 침팬지
침팬지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개미굴에 넣고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여기에 개미가 까맣게 묻으면 꺼내 핥아먹는 영리한 동물이다. 인간처럼 집단을 이뤄 사냥하는 것은 물론, 사냥한 음식을 나누어 먹을 줄 알고, 돌과 나뭇가지를 도구로 사용한다.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쳐 주면 수백 단어의 수화도 할 줄 안다.

한국, 일본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2002년 침팬지의 게놈 지도 초안을 발표했다. 침팬지와 사람의 생명체 설계도를 열어보니 유전 정보를 기록한 DNA 염기서열 가운데 98.8%가 같았다. 침팬지와 인간의 염기서열 차이는 1.2%이다. 침팬지 다음으로는 고릴라, 오랑우탄이 인간과 가깝다. 고릴라는 사람과 DNA가 97% 같다.

최근에는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너무 흡사해 사람과 같은 호모(Homo)속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35억 년 전을 24시간 전이라고 보면, 사람과 침팬지가 한 몸에서 갈라진 600만 년 전은 3분 전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동물의 행동과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침팬지를 거울삼아 인간의 본성을 알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초기 침팬지 연구자들은 침팬지의 공격성과 잔혹성에 매우 실망했다. 야생의 침팬지들이 무리지어 다른 집단의 침팬지를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침팬지 수컷들은 몇 마리씩 떼 지어 정찰을 하다가 혼자 떨어져 나와, 근처 다른 그룹의 침팬지를 발견하면 기습해 사지를 붙잡고 입으로 물어뜯고 돌로 쳐 죽인다.
침팬지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여성 동물행동학자인 제인 구달은 1970년대에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브 국립공원에서 침팬지 4개 집단 가운데 두 집단이 참혹한 동족상잔과 유아 살해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구달과 곰브 국립공원에서 1974년부터 침팬지를 관찰해 온 하버드 대학 리처드 랭햄 교수는 “수컷이 무방비 상태의 동족을 치명적인 공격으로 죽이는 것은 동물 사회에서 인간과 침팬지만의 유일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프로 사냥꾼인 사자나 호랑이의 경우도 동족끼리 싸우면 자기 자신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기 때문에 승부가 어느 정도 가려지면 싸움을 중단한다. 반면 사람과 침팬지들은 자신은 다치지 않고 상대방 동족에게 치명상을 가하는 전문 킬러라는 것이다.

동물행동학으로 노벨상을 탄 독일의 콘라드 로렌츠 박사는 1963년 ≪공격성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행동은 굶주림, 번식, 두려움, 공격성이 결정한다고 썼다. 그는 2차 대전의 대학살도 인간 본성의 표출로 보았다. 그는 “사자나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도 자기 자신의 종족에 대해서는 무기를 쓰지 않도록 억제하는 능력을 진화시켜 온 데 비해 불행하게도 인간은 이런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했다.”고 통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침팬지에게는 공격성과 더불어 화해 본성이 있다는 증거가 많이 발견되면서 동물행동학자들이 인간을 보는 눈도 크게 변하고 있다. 침팬지는 쉽게 화를 잘 내며 흥분하고 공격한다. 그런데도 특이한 점은 침팬지들은 안정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전 세계 수십 명의 동물행동학자들이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 보고서 100편 이상을 묶어 2001년에 ≪자연의 갈등 해소≫란 책을 펴냈다.

보노보 침팬지는 성행위까지 인간과 흡사
이 책에는 침팬지, 보노보 등 영장류가 싸움 뒤 의식적인 키스, 껴안기, 섹스, 손잡기 등을 통해 화해를 모색하는 것을 밝혀낸 11건의 보고서가 포함돼 있다. 670번에 걸친 ‘짧은꼬리원숭이’의 싸움을 관찰한 결과 싸움 직후 10분 동안 이들 사이의 ‘몸 접촉 행동’은 평소보다 크게 증가했다. 또 격렬하게 싸웠던 암·수 침팬지가 10분 뒤 제3의 장소에서 껴안고, 키스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공격적인 침팬지들이 분쟁이 초래한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화해를 시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동물행동학자들이 영장류 사회에서 화해와 평화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흔히 피그미 침팬지로도 불리는 보노보에 대한 연구가 1980년대부터 활발해지면서부터이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더불어 지구상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지만, 전쟁을 좋아하는 침팬지와는 달리 평화와 사랑을 즐긴다. 또한 침팬지가 남성 중심 사회를 이루는 데 반해 보노보는 여성 중심 사회를 이뤄 산다.

235종의 영장류 가운데 남·여가 서로 마주 보고 성 행위를 하는 것도 인간과 보노보뿐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은 마주 보고 하는 성 행위를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침팬지나 말, 개처럼 하는 후방위를 죄악으로 여겨왔다.

보노보가 사람처럼 마주 보고 성 행위를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독일 뮌헨동물원의 두 연구자였다. 동물이 마주 보고 성 행위를 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1954년 이 사실을 논문으로 쓰면서도 비전문가는 볼 수 없게 라틴어로 발표했고, 녀석의 존재는 그 후 잊혀졌다.
보노보가 침팬지의 아종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1929년이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1970년대 들어 시작된다. 동물학자들이 아프리카 열대우림에 숨어 살며 몹시 수줍음을 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보노보 집단 옆에서 살면서 하나 둘씩 이들의 생활 모습이 공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노보는 평화와 자유분방의 상징
미국 에모리 대학 심리학과 프란스 드 왈 교수는 미국 최대의 동물원인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보노보를 연구해 1997년에 ≪보노보: 잊혀진 원숭이≫란 책을 출판했다. 지난 1982년에 ‘원숭이 정치학’을 통해 침팬지와 인간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남성 중심적 파워 정치학을 그렸던, 침팬지 연구가 드 왈 교수는 “보노보가 좀더 일찍 알려졌다면, 인간의 진화를 재구성하는 데 남성, 전쟁, 사냥, 도구, 파워 정치보다 남녀의 동등한 성 관계, 가족의 기원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인간이 침팬지류와의 공통의 조상에서 먼저 갈라져 나와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600만 년 전의 일이다. 그 뒤 침팬지류는 다시 침팬지와 보노보, 즉 피그미 침팬지로 갈라졌다. 현재 보노보는 자이르 강변 열대우림에서 1만 마리 이하가 생존하고 있다. 학자들은 보노보가 인간이나 침팬지보다 덜 진화해 이들 3종의 공통 조상의 원형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보노보의 세계는 여성이 중심이고, 섹스를 통해 공격성을 스스로 통제한다. 또 독재자가 아닌 평등주의자이다. 보노보의 사회 생활은 섹스를 빼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의 성 해방론자들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보노보 웨이(bonobo way)’를 외치며 보노보처럼 자유분방하고 평화적으로 살자는 주장을 할 정도다.

보노보는 남녀는 물론 남-남, 여-여, 어른-청소년 등 어떤 조합으로도 섹스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하지만 새끼는 아주 드물게 5∼6년에 한 마리씩만 낳는다. 사람의 특징인 섹스와 생식의 분리가 보노보에게서도 나타난다.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섹스는 인간과 보노보만의 두드러진 행동 특징이다. 만일 섹스의 목적이 오로지 번식이라면 왜 사람들은 적게 낳고 더 많은 섹스를 즐기려 하는 것일까?

보노보는 아주 쉽게 성적으로 흥분한다. 먹이를 가져다주면 수컷은 성기가 발기한다. 음식이 오기도 전에 보노보들은 서로 상대방을 섹스에 초대한다. 수컷은 암컷을, 암컷은 수컷이나 암컷을 초대한다. 또 사슴을 잡았거나 익은 무화과가 많은 숲을 발견해도 이들은 5∼10분 동안 섹스를 하고 난 뒤 음식을 먹는다. 음식을 둘러싼 쟁탈전을 피하기 위해 섹스를 통해 먼저 돈독한 분위기를 만들고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것이다.

또한 다른 어떤 유인원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보노보의 가장 전형적인 섹스 패턴은 어른 암컷 간의 생식기 문지르기이다. 이때 이들은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처럼 소리를 지른다. 수컷은 서로 등을 돌려 엉덩이를 붙이고 음낭을 문지른다. 특히 레즈비언 섹스는 암컷의 사회생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보노보 사회의 섹스는 사교적 행위”
보노보나 침팬지의 암컷은 어른이 되면 다른 그룹으로 이주해 새끼를 낳고 동화돼 산다. 암컷의 이주는 근친교배에 의한 열성 유전을 막고, 다양한 유전자가 서로 섞여 그 종이 생존해 나가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보통 다른 집단으로 이주한 암컷 보노보는 나이든 암컷을 한 마리를 골라 성기 문지르기를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간다. 상대가 답례를 하면 좋은 관계가 형성되고, 젊은 암컷은 그 집단의 일원으로 동화된다. 동성애가 이주자의 사회 진입을 순조롭게 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리고 새끼를 낳으면 그 젊은 암컷의 지위는 더 확고해지게 된다.

암컷 보노보는 수컷이 음식을 갖고 있으면 접근해서 섹스를 한다. 그리고는 섹스중 음식을 달라고 높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빼앗아간다. 보노보 수컷은 암컷이 먼저 음식을 먹도록 양보한다.

보노보 사회의 결속력은 암컷 사이의 결합에서 온다. 암컷들은 어떤 수컷이 특정 암컷을 괴롭히면 뭉쳐서 수컷을 쫓아낸다. 반면 수컷은 암컷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없다. 집단 내에서 어린 수컷의 지위도 보통 자기 엄마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수컷은 평생 엄마와 아주 가깝게 지낸다.

반면 침팬지 사회에서는 사냥을 통해 사회적 결속력이 형성되고, 영토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수컷이 중심이 된다. 또한 보노보 암컷은 사람처럼 언제나 섹스가 가능하다. 따라서 제한된 시간, 즉 발정기에 암컷을 차지하려고 수컷 간에 치열하게 벌어지는 내부 경쟁이 보노보 사회에는 거의 없다.

프란스 드 왈 박사는 “보노보 사회의 섹스는 호색이나 에로틱으로 해석되기 쉽지만, 나는 일상적인 애정 표현과 같은 일종의 사교적 행위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 보노보의 성 행위는 빈번하지만 성기 삽입 시간이 13초에 불과해 사람의 기준에 비하면 매우 짧다.

섹스와 번식의 분리는 긴밀한 남녀 관계와 사회의 기초인 가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제는 누가 이를 주도했느냐는 점이다. 흔히 여성은 섹스에 수동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여성은 수동적이라기보다 조심스러울 뿐이다. 여성이 조심스러운 것은 10개월의 임신과 출산 뒤 보육 등 섹스 이후의 엄청난 투자 시간을 감안할 때 상대방이 능력이 있고,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가를 가리기 때문이다.

침팬지보다 인간과 더 닮은 점이 많은 보노보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섹스 능력을 진화시킴으로써 미숙아로 태어난 자녀를 돌보는 데 수컷의 참여를 유도해 냈고, 결국은 이것이 핵가족 형성과 질 높은 자녀 교육, 나아가서는 일부일처제에 기반을 둔 인간의 문명이 탄생하게 됐다는 이론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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