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빨리 출구로 도망치려고 몸부림칠수록 사람들이 빠져 나가는 속도는 실제로 느려진다. 모의 실험 결과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 45초 동안 초속 1미터로 방을 빠져 나갈 때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은 90명이다. 하지만 초속 5미터로 나가려고 하면 서로 몸이 부딪쳐 65명밖에 나가지 못한다. 공포상황에서는 속도는 훨씬 느려진다. 넘어지는 자가 속출하고 넘어진 사람은 장애물이 되어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무엇엔가 쫓기듯 산다. 또 별 생각 없이 서둘러 늘 똑같은 길을 오간다. 과연 이런 생활 태도가 과학적일까? 그렇지 않다.
급할수록 신중한 생각 적어져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는 말이 있다. 영어에도 ‘천천히 서둘러라(Make haste slowly)’ ‘급할수록 돌아가라(The longest way round is the shortest way home)’라는 속담이 있다.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움직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전해져 내려오는 격언이다.
‘급하면 서둘러야 하는데 왜 돌아가라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져 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던 분이라면 박남준 시인의 아래 글을 보면 아마 조금 이해가 갈 것이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져서야 뒤늦게 그걸 기억해 내고는 부랴부랴 옷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선 날이 있었다. 한참 산길을 내려가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정작 그 약속은 내가 어떤 물건을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책상 앞에 꺼내 두고는 다급한 마음에 미처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그걸 챙겨서 내려갔다. 으으 저런,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져서야 또 한 가지 빠뜨린 것, 이번엔 주머니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으며 꺼내 둔 지갑을 집어넣지 않은 것이다. 시간은 이미 늦고도 늦었다. 시간을 좀 줄이기 위해 아랫마을 아는 분께 들러 사정을 이야기하고 차비를 꾸며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진땀을 흘렸던 날이었다. 비로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급히 서두르는 경우 늦어지는 것은 단지 심리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서두르는 경우 전체의 속도가 늦어지는 사실은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이 된다. 운동장, 공공시설, 지하철 등에서 군중들이 먼저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치다가 밟혀서 목숨을 잃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1990년에는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보행자 터널에서 무려 1426명이 깔려 죽는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공공시설이나 지하철 등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통행자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부상자가 생기지 않도록 복도와 비상구를 잘 설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서두를수록 더 느려지는 이유 독일 드레스덴 기술대학 디르크 헬빙 교수와 헝가리 에트보스 대학의 타마스 비첵 교수는 위기 속 개인의 행동을 계산해 집단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겁에 질려 도망치는 군중들의 행동을 컴퓨터로 모의 실험할 수 있는 것으로, 공공시설을 안전하게 설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 동안 과학자들은 사람이나 교통의 흐름을 유체로 파악해 모의 실험을 해왔기 때문에 예측 결과가 정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빨리 출구로 도망치려고 몸부림칠수록 사람들이 빠져 나가는 속도는 실제로 느려진다. 왜냐하면 빨리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넘어진 사람이 장애물이 돼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모의 실험을 한 결과는 이렇다.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 45초 동안 초속 1미터로 방을 빠져 나갈 때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은 90명이다. 하지만 초속 5미터로 나가려고 하면 서로 몸이 부딪쳐 65명밖에 나가지 못한다. 천천히 움직여야 더 빨리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화재가 일어난다든지 하는 공포 상황이 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치열한 몸싸움 속에 200명 중 5명이 쓰러진다. 쓰러진 부상자는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이 경우 문 밖으로 빠져 나가는 사람의 숫자는 44명으로 줄어든다. 군중이 많으면 비극은 더 커진다. 400명이 나가려고 몸싸움을 하게 되면 24명이 깔려 죽게 되고 부상자들 때문에 45초 동안에 3명밖에 빠져 나가지 못한다.
연구팀은 비상구 바로 앞에 둥근 기둥 하나를 놓으면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두 갈래로 분산돼 빠져 나가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복도의 너비가 일정해야 탈출에 효율적이란 사실도 알아냈다. 복도가 좁았다가 넓어졌다가 하면 사람들이 앞사람을 제치려 하다가 좁아진 곳에서 더욱 격렬히 충돌하게 돼 탈출구로서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같은 사람을 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흔히 ‘세상 참 좁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우연한 일이겠지’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만일 60억 명의 세계인 가운데 어떤 한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려면 중간에 몇 사람이 이메일을 중계해야 그 사람에게 전달될까?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필요할 것 같지만 정답은 6명이다. 세상은 매우 넓은 것 같지만 도처에 지름길이 존재한다.
세상 어디에나 지름길은 있다 2003년 콜롬비아 대학 수학자인 던컨 와츠 교수는 전 세계 수만 명을 상대로 서로 아는 사이를 통해 전혀 모르는 몇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실험을 실시해 결과를 발표했는데 대부분 5∼7명을 건너 메일이 전달됐다.
6명만 건너뛰면 누구하고나 연결된다는 이른바 ‘6단계 분리’ 이론은 1960년대에 하버드 대학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 교수가 체계화했다. 1967년 밀그램 교수는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에 사는 사람을 임의로 추출해서 160통의 편지를 띄웠다. 그 편지를 최종적으로 받아야 할 사람은 보스톤에 사는 한 증권 브로커였다. 편지 내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편지는 보스톤에 사는 증권 브로커에게 전달되어야 할 편지입니다. 이 증권 브로커의 이름을 참조해서, 귀하가 알고 계시는 분 중 가장 이 사람에 근접한 사람 한 분을 골라서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지는 보스톤의 그 증권 브로커를 향해 아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전달됐다. 160통의 편지 중 최종적으로 증권 브로커에게 전달된 편지는 42통이었다. 전달된 편지가 몇 사람을 거쳐서 도착했는지를 조사해 보니 평균 5.5명이었다. 그 뒤 밀그램은 아무리 넓고 복잡한 세상도 대체로 6단계를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일컬어서 ‘6단계 분리’라고 한다.
6단계 분리에서 힌트를 얻은 미국 코넬 대학의 스티븐 스트로가츠와 콜롬비아 대학의 던컨 와츠 두 수학자는 복잡한 네트워크가 어떻게 ‘좁은 세상’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모형을 만들어 1998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모형실험 결과 세상에는 지름길이 있었다. 두 수학자는 전력 송전망과 생물의 신경망 그리고 2만 3500명의 배우를 수록한 인터넷 정보은행 등 3개의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몇 안 되는 지름길이 ‘좁은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좁은 세상 효과(small world effect)’라고 한다.
지름길이란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에서 고착된 영역을 뛰어넘어 통신이 이루어지게 해주는 사람이나 부품을 말한다. 부서 간, 계층 간 장벽을 넘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해주는 사람이 대표적인 지름길이다.
어떤 조직이나 기업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여 있으면 발전이 없다. 그래서 집단은 다양한 외부의 세계와 연결된 사람들이 모일 때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다.
또한 관료적 조직에서는 지름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회사마다 건의함을 만든다. 의사소통의 마비가 자칫하면 엄청난 파국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 호의 사고이다. 이 사고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 견디지 못하는 고리가 부서지면서 일어났다. 조사 결과 우주왕복선 수리를 맡은 기술자들은 이 부품이 온도에 민감해 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런 우려를 정책 결정자에게 알릴 수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두 수학자는 만일 기술자와 미국 항공우주국 최고 관리들 사이에 지름길이 있었다면 이런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네트워크는 어디에나 있다. 뇌는 신경세포의 네트워크다. 조직은 사람의 네트워크다. 세계는 국가 간의 네트워크이다. 경제는 시장의 네트워크이다. 시장은 공급자와 소비자의 네트워크다. 미국의 네트워크 판매회사가 국내에서도 막대한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것도 ‘좁은 세상 효과’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네트워크로 생각하는 사람이 앞서 간다 전염병의 확산에도 지름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스도 한 명의 환자가 바이러스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스 발생 초기에 중국 광동성에서 사스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된 한 명의 중국인 의사가 2003년 2월 21일 홍콩 메트로폴 호텔에 투숙한 뒤 이 호텔에서 12명의 외국 투숙객이 감염됐다.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홍콩,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베트남, 아일랜드로 퍼져 3월 26일까지 249명에게 사스를 감염시켰다. 단 한 명의 의사가 사스를 순식간에 세계로 퍼뜨린 것이다. 따라서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에는 이런 지름길을 차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 인터넷 망의 정보 흐름도 선이 굵을수록 통신량이 많다. 인터넷망은 두뇌의 신경망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 망은 거대한 두뇌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침팬지 행동을 연구해 온 미국 에모리 대학 프란스 드 왈 교수는 “침팬지 사회에서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침팬지 사회에서도 혼자서 잘난 체하는 것보다 네트워크가 강한 침팬지가 잘 나가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일을 하다가 장벽에 부딪치면 인맥을 동원해 문제를 푼다. 세상에서는 인맥이 두터운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학연과 지연을 타파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세상 어디에도 학연과 지연이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연과 지연도 인터넷의 등장으로 점차 낡은 네트워크가 되어 가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지구촌에는 상상할 수 없이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네트워크 사이에서 광속으로 흘러가는 정보는 과거의 인적 네트워크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다. 게다가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순식간에 지름길을 찾아내는 서치엔진은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인터넷은 전 세계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통합하고 있다. 지식의 통합은 필연적으로 지능을 낳는다. 전 세계의 인터넷 망을 보면 1000억 개의 뉴런이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된 뇌와 모양이 매우 흡사하다. 지구적 규모의 인터넷 네트워크는 발전되면 될수록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는 뇌가 될 것으로 보는 과학자들이 벌써부터 생겨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맥이 두터운 사람이 잘 나갔지만 앞으로는 인터넷을 잘 쓰는 사람, 세상을 네트워크로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