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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역사를 간직한 채 숨쉬는 투르판

과거 동방과 서방을 연결해 주었던 통로 실크로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실크로드.
그 길에 과거를 간직한 채 살아있는 투르판이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현재에도 역사를 만들어 가는 위구르족들의 비밀이야기...

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위구르족과의 첫 만남 '파인 땅 투르판'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하다 보면 중국의 서쪽 변방인 '신지앙 위구르 자치구'에 접어들게 된다. 이곳은 황량한 사막지대에 '위구르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들은 생김새가 중국의 '한족'과는 판이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화조차 달라 도저히 중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닿게 되는 순간부터 마치 중동의 어느 한 지역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씻을 수가 없게 되고, 실크로드의 여정이 무릇 익어간다.

이 위구르족들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게 된 곳은 '투르판(吐魯蕃)'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표고가 해면보다 낮은 곳이어서 여름철에는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역사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실크로드 상의 천산북로와 남로의 갈림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원전부터 이 비단길을 오가던 상인들이 물과 휴식을 얻기 위해 이곳 투르판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또 구도의 길에 나선 수많은 입축승(入竺僧)들도 이곳을 거쳐갔다.

이처럼 예로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되어 온 곳이기에 흐르는 세월 속에서 다양한 민족들의 치열한 쟁탈전이 불가피했던 곳이 바로 이 투르판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주변 도처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이 그걸 잘 말해 주고 있으며, 더불어 당시의 영화를 짐작케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교하고성(交河古城)'과 '고창고성(高昌古城)'을 들 수가 있다.

번영의 빛이 소멸한 흙빛 도시 '교하고성'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13km쯤 떨어져 있는 '교하고성'은 이름 그대로 두 물줄기 사이로 30m나 우뚝 솟은 절벽 위에 터전을 잡은 천연의 요새와 같은 고대 도시를 말한다. 이곳은 실크로드를 오가는데 있어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기원전 2세기 전한시대(前漢時代)에 이란계의 '차사전국(車師前國)'이 자리잡기 시작하여 14세기 말 그 번영의 빛이 소멸되기까지 흉노(匈奴), 한(漢), 당(唐) 등의 지배를 거쳐 온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은 온통 흙빛만으로 고요하기만 하다. 성문에 들어서니 벽돌길이 남북으로 일직선으로 뚫려있는 가운데 수많은 폐허들이 그 양옆으로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길이 끝나는 북부에는 주로 사원이나 광장, 또는 저택 등으로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것들이 자리하고 있고, 남부에는 서민들의 주거지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당시 땅속 깊이 파놓은 우물들이 지금도 몇 개 남아 있는데 어찌나 깊은지 그 바닥이 안 보인다. 그 깊이를 점쳐보기 위해 돌멩이를 떨쳐 보면서 하루 종일을 이 폐허 속에 묻혀 지내보지만 지난날은 돌아오지 않는다.

현장법사가 지나간 고대 도시 '고창고성'
또 다른 고대 도시인 '고창고성'은 시내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다. 당나라 때 전성기를 누렸던 이곳은 기기 괴괴한 모습의 '화염산'을 배경으로 길이가 5km나 되는 웅대한 성벽을 지니고 있는데, 499년 한나라 사람 '국문태(麴文泰)'가 이곳에 '고창국(高昌國)'을 세웠을 때 그 도성으로 쌓은 것이다. 교하고성이 흙 자체를 조각한 조각건축인 반면 이 고창고성은 흙벽돌을 쌓아 조성했기 때문에 파손이 보다 심해 궁전이나 사원 같은 큰 건물의 잔해만 남아있을 뿐 거의 공터로 남아있다.

이곳 고창고성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남긴 당나라의 고승 '현장(玄裝)'과도 인연이 있던 곳이다. 천축국으로 향하던 '현장'은 당시 '막하연적(莫賀延蹟)'이라 불리던 '고비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온갖 고충을 다 겪다가 이곳 '고창국'에 도달하게 됐는데, 이때 열렬한 불교 신자였던 고창왕 '국문태'의 간청에 못 이겨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설법하게 되었다.

또 융숭한 대접을 받고 떠나면서도 '현장'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려 3년간 공양을 받아 줄 것을 국왕이 간절히 요청하자 그것 역시 받아들였다. 천축국을 두루 둘러보는 동안 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창왕과의 약속을 중히 여긴 그는 귀로에도 보다 빠르고 안락한 해로(海路)를 취하지 않고 고난으로 가득 찬 육로를 다시 거슬러 올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도중에서 고창국은 이미 당(唐)에게 멸망되고 국왕 국문태도 죽고 말았다는 소문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은 항상 모든 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래서 삼라만상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오아시스 속에서 지금도 위구르족들은 옛 관습대로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황량한 모래벌판과 고창국의 폐허를 굽어보고 있는 화염산만이 옛 모습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베제크릭 천불동'
불꽃이 날기를 천장(天丈)의 높이’라고 표현되면서 소설 '서유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화염산. 정말 마귀라도 금방 나타날 것만 같은 괴괴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그 산록을 끼고 돌면 또 하나의 전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것은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베제크릭 천불동'이 오늘날 초라한 모습으로 지난 역사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을 지닌 이 '베제크릭'은 수나라 시대인 6세기 말부터 14세기까지의 사이에 조성된 불교사원인데, 지금에 와서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57개의 모든 굴이 텅 비어있는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의 크나 큰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14세기에 이슬람교를 신봉하게 된 이 땅의 위구르족들에 의해, 또 한 번의 결정적인 것은 20세기 초 독일, 일본, 러시아, 영국 등의 탐험대에 의한 벽화 반출 경쟁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오늘날 이 베제크릭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39굴의 '각국사절도'만이 비교적 깨끗이 남아있을 뿐, 매 굴마다 긁혀나간 벽화의 흔적들만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위구르족의 노력으로 탄생한 사막의 비밀
가는 곳마다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나 유적들이 많아 이곳 투르판 일대를 '역사의 보고'라고 한다. 이처럼 이곳에 많은 유적들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 것은 다양한 역사의 흐름에도 있겠지만, 일년에 평균 강우량 16㎜밖에 안되는 건조한 날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지금도 이따금씩 땅속에서 발견되고 있는 '미이라'들이 잘 말해 준다.

그렇다면 이처럼 메마른 땅에서 어떻게 그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며, 오늘날 '이곳 투르판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일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위구르족 선인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던 것임을 이곳에 와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된다. 그것은 투르판의 비밀이자 사막의 생명수라고 할 수 있는 '카레스'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소중한 것은 물이다. 그래서 물이 있는 곳에 오아시스가 생겨나고, 물이 마름으로써 멸망한 왕국도 있고, 물을 잘 지배해 강성한 제국을 만든 나라도 있었다. 이곳 투르판 역시 천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사막의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천산의 물이 이들에게 생명을 주진 않았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천산이기에 지상으로 흘러오는 물은 아무리 많은 양이라고 해도 그 대부분이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온통 사막인 이곳을 적시기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곳 위구르족 선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며 400-500년간에 걸쳐 지하 수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용되고 있는 '카레스'다.

천산 기슭에서부터 시작해 수많은 우물들을 지하로 연결해 오아시스까지 끌어들인 이 '카레스'의 물줄기. 그 총 길이가 장장 3000km나 된다고 하는데 이 엄청난 길이를 모두 손으로 파서 만들어졌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사막 속의 한쪽에서 새로운 카레스가 만들어지고 보수되는 가운데, 투르판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천산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카레스에서 물긷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이 카레스 덕분에 이곳 투르판은 온갖 과일이 풍성하다. 그래서 일명 '과일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그 중에서도 특히 '포도'는 이곳 투르판의 특산품으로 여름철에는 이 일대가 온통 포도 넝쿨로 뒤덮인다.

수확기가 되면 집집마다 마련된 건조장에서 포도를 말리는 것이 일이다. 어느 한 곳을 찾아가니 온 가족이 동원되어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포도송이들을 막대 기둥에 걸고 있었다. 위구르족의 평화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건조장에 걸어 놓은 이 포도들은 20일 정도면 건포도가 된다고 하면서 한 바구니의 포도를 내놓는다. 먹고 남은 것은 가져가라는 것이다. 씨도 없이 달콤하기만 한 청포도의 맛에 취하고 후한 인심에 또 취한다. 이래저래 위구르족들의 세계에서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은 한없이 이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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