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격차가 심화되어 가는 현 사회에서 가진 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완화시키려면 가진 자들이 자신의 몫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을 한다. 사회는 돈 있는 부자들에게 자신의 몫을 선뜻 내어놓을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을 부여해야 하며 그들을 위한 매력 있는 상품으로 그들을 유혹해야 한다.
고교평준화와 3불 정책의 모순 참여정부의 출범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이 기간 동안 시행된 교육부의 정책들을 중 ‘이건 잘된 정책이다’하고 공감을 가질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특히 고교평준화 체제는 1970년대 당시 산업현장에 질보다는 양적인 인력이 필요했던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화 정책으로 인재를 양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것으로 지난 74년 이후 30여 년 간 시행이 되어 오면서 그 시대 나름대로의 교육 발전에 기여하여 우리 국민들의 교육 수요를 질적 양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21C 글로벌 시대는 인력의 수요가 양적인 문제를 벗어나 소량이지만 질 높은 인재가 필요한 전문화 특성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고교평준화제도를 존속시킨 채 세계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위라고 본다.
또 교육부의 확고한 방침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3불 정책’은 대표적 부실 정책이다. ‘3불 정책’은 본고사로 인한 공교육 붕괴를 막고 사교육비 증대를 줄이며, 고교 간 학력의 차이를 인정 않겠다는 것, 또 가진 자들의 특혜가 되는 기여입학제가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심화 시킨다는 취지에서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의 3가지 제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내신과 수능만으로 치르게 되면서 학교교육과정은 수능으로 인해 파행되고 학생들은 수능을 위해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또 고교의 격차가 확연히 존재함에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고교 간의 격차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고, 기여입학제를 ‘가진 자들의 특혜’라는 포퓰리즘적 단순 논리로 풀어가려 한다.
‘3불 정책’ 중 가장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는 기여입학제다. 기여입학제는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터져버리는 안전핀이 달린 수류탄과 같이 위험한 사안이다. 그러나 기여입학제에 대한 논의는 시작되어야 하고, 안전핀을 어떻게 하면 견고히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 이유는 21C 글로벌 시대,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기여입학제를 긍정적으로 논의해 보고 기여입학제가 안고 있는 부정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의 부정적 논란거리 기여입학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여입학제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과 배경에 따라 자식의 입학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는 헌법 제31조 1항에 규정된 ‘교육의 기회균등과 평등’이 훼손되어 부유층과 빈곤층 간에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부(富)의 획득이 선망의 대상이요, 능력이 되는 선진 국가와는 달리 한국의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 또는 부자들이 보여준 온갖 비리로 한국의 부자들에게는 진정한 '노블리스'가 없다는 부(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선량한 부자들은 그 부를 축적하기 위해 피나는 고생을 한 사람들이다. 어려웠던 과거도 눈물겨운 가난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부자들을 무조건 부도덕하다고 매도하고 부자들의 행위는 모두 사회악이라고 보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 사회적 시스템이 정의롭게 정착되어 ‘부의 획득은 능력의 소산’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선행될 때 빈부의 위화감은 해소될 수 있다.
둘째, 대학들이 이제껏 저질러 온 재정운영의 문제점과 학내비리를 개선하지 않고는 아무리 많은 돈이 기부되더라도 그 돈이 학생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들이 교육의 질적 향상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의 쌈짓돈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며 기여입학제가 대학의 운영을 위한 재정확보 수단으로 이용되어 사립대학의 거대한 사(私)기업화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진다. 그러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매년 기부금 총액과 예결산 내역을 철저히 공개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며 기부금에 대한 전용을 막는 등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면 우려는 불식될 수 있다.
셋째, 기여입학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기부금은 단지 대학에 대한 '기여'에서 끝나기를 바라며, 기부자는 그 대가로 자녀입학의 특권을 바라지는 말고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조건 없는 기부를 하라고 충고한다. 수십 년을 힘들게 벌어 선뜻 수억 원의 돈을 대학에 기부하는 '가난한 기부자'의 소망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자는 것도, 자녀들의 대학입학을 조건으로 건 것도 아닌, 단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인 것처럼 순수한 목적을 가지지 못하는 기여입학제는 거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부 문화 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로서는 독지가들이 내는 조금의 기부금으로는 겨우 일부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지급될 뿐 대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을 도외시 한 견해다. 얼마 전 어윤대 고려대학교 총장은 "대학교 입장에서는 최소한 1500만원의 등록금은 받아야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은 기업이나 정부의 보조가 턱없이 부족하면서 간섭은 많아 대학 경쟁력이 낮다"며 "미국은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12명인데 우리는 40~42명"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토론식 수업이 아닌 일방적인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듯 대학의 경쟁력과 우수 인재 양성은 반드시 투자가 따른다.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여입학제가 허용되어야 한다.
넷째, 기여입학제로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학능력의 문제를 우려한다. 일류대에서 수학할 능력이 없는 학생이 부모의 재력으로 일류대학의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들은 학사관리 시스템이 엉망이라 입학만 되면 실력과 노력에 관계없이 졸업이 보장된다. ‘입학은 곧 졸업’이 되는 학사관리 시스템 속에서는 당연히 기여입학제의 도입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전개되는 이 모순은 대학 스스로의 각성을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대상으로 정원 외의 일정비율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하여 엄격한 학사관리 제도를 마련하여 ‘기여 입학’이 ‘기여 졸업’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류 학벌에 대한 국민일반의 의식이 기여입학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류 대학의 입학이 교육과 학문 연구의 기회 내지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확보를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 우리 교육 현실에서 '돈'으로 일류 학벌을 취할 수 있다면 가진 자들은 부(富) 이외에 명예도 누릴 수 있어 극심한 불평등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돈을 많이 가진 자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꼭 국내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외국의 유명 대학을 택해 기여입학을 할 수 있다. 돈 앞에 일류의 인재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부와 명예를 누린다고 불평만을 할 수 있을까?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일부들은 그들을 처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국가인 한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그들이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게 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PAGE BREAK]
기여입학제의 긍정적 논란거리 빈부의 격차가 점차 심화되어 가는 현 사회에서 가진 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려면 가진 자들이 자신의 몫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을 한다. 사회는 돈 있는 부자들에게 자신의 몫을 선뜻 내어놓을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을 부여해야 하며 그들을 위한 매력 있는 상품을 개발해서 그들을 유혹해야 한다. 기여입학제는 매력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 또 기여입학제는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면을 가진다.
첫째, 21C 글로벌 시대를 대비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필요하다. 부존 자원하나 없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믿을 것은 인적 자원이다. 21C 글로벌 시대를 맞아 어떤 분야에서든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세계 최초의 복제 개 스너피(snuppy)를 탄생시킨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난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 기술로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1년 총예산의 두 배나 되는 300조 정도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니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중국 상하이자오퉁 대학이 발표한 세계 100대 대학에 미국 대학이 53개, 영국이 11개, 일본이 5개 대학이 선정되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100위권에 든 대학은 한 곳도 없고 서울대가 150위권에 드는 등 8개 대학만이 500위권 안에 포함되는데 그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이렇게 엉망인 까닭은 교육 재정의 부족이다. 국공립 대학의 예산 배정도 열악하지만 사립대학에는 겨우 전체 예산의 3~5% 정도를 교육부에서 지원해 준다. 가장 많은 국고가 배정되는 서울대의 1년 예산이 하버드나 예일의 1분기 예산 정도의 수준이니 사립대학의 재정은 말할 건덕지가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인재가 양성되기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대학의 경쟁력과 우수 인재 양성은 반드시 투자가 따른다. 선진국은 기업가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대학에 100억 달러씩을 기부하는 기부 문화가 정착된 나라들이다. 미국의 경우 그렇게 많은 돈이 대학에 기부되어도 유수한 대학들은 대학 재정을 늘리기 위해 기여입학제를 실시하고 있다. 총장의 역할이 대학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부금을 확보해 오느냐에 있을 만큼 교육에의 투자를 중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를 도입한 지가 겨우 50년에 자나지 않아 기부 문화 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학들이 21C 글로벌 시대를 대비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겠는가?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려면 우수한 인재를 기르는 대학이 되어야 하고 우수한 인재를 기르려면 아낌없는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투자금 확보를 위해 기여입학제는 허용되어야 한다.
둘째, 기여입학제가 도입되면 가난한 많은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하여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 50~60년대는 우리 교육사에서 유일하게 자유주의교육이 도입된 시기였다. 그때는 시골에서도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공부를 잘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을 비롯한 지방의 명문고를 입학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시대였다. 농촌에는 학생들이 넘쳐났고 우수한 인재의 대부분이 농촌 학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가난했다. 우수한 실력을 가졌어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그만두고 농사일을 돕거나 산업 현장으로 가기도 하였다.
또 실력은 되지만 도시에서 하숙을 할 만큼의 여유가 없어 일류학교를 포기하고 시골을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꿈을 접은 학생들도 많았다. 그 당시의 부자들은 기부금을 내고 자식들을 중․고․대학에 청강생으로 입학시킬 수 있었다. 그 돈으로 가난하나 머리가 비상한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형설의 공을 쌓아 가문의 영광을 이루기도 했다. 시대가 바뀐 지금도 누가 자신에게 학업을 위한 자금을 제공해 준다면 날개를 달고 마음껏 창공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특히 IMF 이후와 경제성장이 거의 멈추다시피 한 지금, 학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나날은 보내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이런 현실을 안다면 왜 기여입학제가 필요하냐고 할 수 있겠는가?
셋째, 기여입학제는 무분별한 해외유학을 감소시킨다. 2005년 한국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경기부진과는 무관하게 유학연수 경비 지출이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감에 따라 올해 전체로는 3조원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추산되어 유학 연수비 규모가 국내 교육비지출액의 6분의 1에 달할 정도로 커졌으며 그 인원은 18만7000여 명이나 된다. 해외유학은 자신만의 꿈을 위해 간 사람들도 있겠지만, 국내 유수한 기업의 취업을 위해 또는 자신의 실력으로 국내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실력은 안 되고 국내에서 대학을 다닐 곳은 없고 돈은 좀 있으니 쉽게 이야기 하면 외국대학에 기여입학을 하는 것이다. 일반대 상위 10%의 대학, 그것도 장래가 보장되는 학과에 지원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너나없이 막대한 외화를 낭비하면서 유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된다. 유학으로 아깝게 사용되는 학비들을 국내 대학에 입학시켜 쓰게 하면,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의 막대한 외화를 낭비하며 헛된 유학생활을 하는 것보다 백번 나은 일이 아닌가?
넷째, 기여입학제는 대학의 경쟁력을 부추긴다. 현재 국내 대학은 정체나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일류만을 추구하는 사회의 병리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일류학교, 일류학과를 나오지 않으면 취업이고 출세고 다 헛것이 된다. 그래서 내 자식을 위해 일류 대학을 보내기 위해 과외를 시키고 유학을 보낸다. 혹시나 일류 자식이 될까 해서 돈을 있는 대로 투자한다. 이런 상황에서 90%의 일류 아닌 대학이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교수들은 자기의 학과가 정원을 확보하지 못해 폐과가 될까를 우려한다. 박사 출신의 교수들이 돈 봉투를 마련하여 각 고등학교 진학실을 찾아다니며 안쓰러운 웃음을 지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만연된 일류병을 국내 어느 대학에서든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어느 대학에서건 초․중․고등학교 과정의 외국어 학교를 만들고 경쟁력 있는 학과 2~3개씩은 만들어야 한다. 한 학과에 100억을 투자하든 200억을 투자하든 외국의 우수한 대학을 본받아야 한다. 돈을 들여 외국의 유명교수를 초빙하고 교육여건 또한 개선해야 한다. 경쟁력을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도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빈익빈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기여입학제로 해결할 수 있다.
"3불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고교 평준화와 ‘3불 정책’을 반대하는 교육부나 전교조, 민노당의 주장은 가진 자들이 돈으로 고액 과외를 시켜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니 이 틀이 깨지면 가진 자들의 자녀들이 일류 학교에 입학하여 부익부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시각은 그들이 스스로 가진 자라는 역설적 비논리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의 지도부가 모두 일류대를 나오고 정치적인 특권층이 되었으니 그들은 돈 있는 자들이었던가?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돈 있는 자의 자녀들이 모두 다 공부를 잘 하니 다들 좋은 대학에 입학할 것이고 기여입학제가 허용되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제도가 될 것이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돈 있는 집안의 학생=학업 성적이 좋은 학생’이라는 등식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견강부회다.
현 정부가 타깃으로 삼는 강남 학군의 학생들이 우수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은 이유는 그들이 돈 많은 자녀들이 아니라 그 몹쓸 8학군 때문이다. 이는 고교평준화의 결정적 오산물(誤算物)이다. 그 지역으로 이주하지 못하면 8학군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중학교 때부터 너도나도 교육여건이 제일 좋다는 강남으로 이사를 하게 하니 하찮은 아파트가 10억이나 하는 부자 동네로 바뀌게 된 것이다.
강남 사람들이 애초부터 돈이 많은 사람이란 편견을 버리고 돈이 학생의 질을 좌우한다는 허황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분명 우수한 학생은 돈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소질을 타고 나거나 노력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돈이 없어 강남으로 이주하지 못하고 열악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또 가난한 수재들을 위하여 고교 평준화는 폐지되어야 하고 기여입학제는 허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든 원하는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고 돈이 없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1C글로벌 시대를 대비하여 한국의 미래를 위하여 자유주의교육은 필요하다. 자유주의 교육의 핵심은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하고, 학교가 원하는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이 정부의 통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말 그대로의 ‘아카데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임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