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두뇌의 활동 역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워지고 기억력과 뇌의 정보처리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인의 사회적 지혜와 선택적 기억 능력,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 등은 젊은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기 영어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한 달 수업료 100만 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어린이 영어과외, 해외연수가 유행이다. 아이의 조기 영어교육을 위해 초등학생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발음을 잘하게 하려고 혀 수술까지 한다고 한다. 조기 영어교육은 언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어려서 말을 배워야지 이 시기가 지나면 '기회의 창'이 닫혀 버린다는 것이다.
조기학습이론 배경은 뇌의 불균등 성장 하지만 한편에서는 어른이 된 뒤에도 영어에 많이 노출되고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얼마든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은 1967년 미국의 언어학자 에릭 레너버그 교수가 <<언어의 생물학적 기초>>란 책에서 처음 내놓았다. 그는 인간의 언어 습득은 뇌나 발성 기관의 발달 특성 때문에 사춘기가 지나면 어렵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언어학자인 매사추세츠 공대의 언어학자 스티븐 핑커 교수는 6세부터 사춘기까지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고 <<언어 본능>>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왜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뇌가 불균등 성장을 한다는 데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폴 톰슨 교수는 핵자기공명영상장치를 이용해 3살부터 15살까지 어린이 뇌의 성장 과정을 4년 동안 추적해 뇌 성장 지도를 2000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는 3~6세 사이에는 전두엽이 발달하고 6~13세까지는 두뇌의 성장이 앞부분에서 점차 언어를 관장하는 뒷부분으로 옮겨간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두뇌의 각 부분이 골고루 균등하게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는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톰슨 교수는 6∼13세가 외국어를 배우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기간 동안 뇌 언어 영역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13세 이후에는 뇌 언어 영역의 발달이 급속히 둔화된다. 그렇다고 톰슨 교수가 사춘기 이후에는 외국어를 배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 이전에 배워야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춘기 이전에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뇌에 손상을 입은 경우 이를 다른 영역이 메워 말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에 언어 영역을 다치면 말을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톰슨 교수는 또한 13~15세까지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뇌 회로가 50% 가량 삭제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따라서 운동신경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악기나 운동도 그 이전에 교육이 이루어져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선천적으로 귀머거리가 돼 말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사인 언어인 수화도 배우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 레이첼 메이베리 교수는 나이가 어렸을 적에 귀머거리가 된 사람일수록 나중에 수화를 배우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2002년에 발표했다. 어렸을 적에 언어를 배우면 언어중추가 발달하지만 귀머거리여서 말을 배우지 못하면 언어 학습과 관련된 뇌 영역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나중에 다른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어학습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 결정적 가설을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심리학, 언어학, 교육학 분야에서 만만치 않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신경과학자인 앙겔라 프리데리치 박사는 2001년에 결정적 시기 가설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미국과학아카데미 회보>>에 발표했다. 그는 객관적 분석을 위해 '브론칸토'라는 인공 언어를 가르치고 뇌의 활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뇌는 인공 언어를 처리할 때나 모국어를 할 때나 똑같은 활동 패턴을 보였다. 이는 '결정적 시기 가설'을 신봉하는 학자들이 모국어와 나중에 배우는 외국어는 뇌에서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주장해 왔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나이가 들면 외국어를 배우기 어렵다는 주장은 외국어와 모국어는 뇌에서 서로 다르게 처리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 교육학자 겐지 하쿠다 교수는 인구 센서스를 활용해 중국과 스페인계 이민자의 이민 시기별 영어 능력을 조사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일정 나이가 지나 영어 능력이 뚝 떨어지는 현상은 없었다. 그는 "결정적 시기 가설은 근거가 희박하며, 단지 나이가 들수록 완만하게 언어 습득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 뿐이다"고 말한다.
캐나다 맥길 대학 프레드 기니시 교수가 다른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 조사에서는 놀랍게도 어른이 된 뒤 이민한 사람의 3분의 1은 어려서 이민한 사람 또는 미국 본토인과 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그는 외국어 습득 능력은 나이 외에도 가정의 경제력, 인지 능력, 교육 정도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밝혔다. 뉴욕 시립대학 지셀라 시아 교수는 아예 '결정적 시기 가설' 대신에 '주요 사용 언어 교체 가설'을 주장한다. 이민 온 어린이가 어른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어린이의 경우 학교에서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되는 반면 어른은 가정에서 모국어를 계속 쓰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영어 학습에 중요한 요인은 '노력' <<느림보 학습법>>을 펴낸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언어 능력은 듣기, 쓰기, 말하기, 독해, 문법 등 여러 영역에 걸친 종합적인 능력으로, 각 영역의 발달 시기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발음 능력은 어려서 발달한다. 성인이 된 한국인 또는 일본인이 영어의 "L"과 "R" 발음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어려서 영어를 배운 어린이들은 발음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잘 구별한다. 이에 반해 단어 능력은 뇌의 측두엽이 발달하는 초등학교 때, 언어의 논리성은 초등학교 2∼3학년이 넘어야 터득한다고 한다.
특히 6세 미만에 아이의 인성과 사회성 발달이 대부분 이루어지는데, 이때 아이에게 영어만 강요하면 주체성에 혼란이 생겨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경고다. 외국에 가지 않고 순수하게 국내에서만 영어를 배운 토종 영어 프로그램 진행자 이보영 씨도 영어를 어려서 가르치면 노력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라고 단언한다. 이씨는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분명해야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른들 가운데서도 해외 근무 등 뚜렷한 목적이 생겨 나중에 공부를 한 사람 가운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음을 그 사례로 든다.
특히 어른은 단어, 정보처리 능력 등 선행 지식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게 장점이라는 것. 어른은 CNN 방송의 문장을 몇 개의 키워드만 들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이는 그렇지 못하다고 이씨는 설명한다. 때가 되면 그리고 필요하면 외국어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뇌가 가진 능력의 대부분을 활용하지 못하고 무덤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커서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정작 가장 큰 장애물은 꾸준히 노력하지도 않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PAGE BREAK]
뇌의 백질은 40대 후반까지 계속 발달 불경기와 조기 퇴직, 젊은 대통령의 등장으로 사회 구석구석에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층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중장년층과 노인의 상실감은 깊어만 가고 있다. 지금 노인 세대는 청소년 시절을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생했고 많은 자녀를 낳았고 고도 성장기에는 허리가 휘도록 일을 했던 세대다. 과연 이런 중장년층이 일손을 놓고 물러나는 것이 좋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를 했으니까 그만큼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온정주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층이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지혜롭기 때문이다. 지혜나 창의성은 대개 어떤 문제와 부딪쳤을 때 이 문제와 관련된 것들을 찾아내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언뜻 보기에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사물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능력은 30대 이후에 발달한다고 한다. 무언가를 통째로 외우는 능력은 어린이들이 좋지만 사물 간의 연결을 찾아내는 능력은 중년층이 더 뛰어나다. 나이가 먹었다고 머리가 굳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년층이 연관성을 잘 찾아내는 비밀은 뇌에서 이곳저곳을 연결하는 전화선 역할을 하는 '백질'이 40대 후반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발달하는 데 있다. 대뇌피질의 가장 바깥쪽 부위인 회백질의 발달은 사춘기가 끝나면서 절정에 이르고 그 후부터는 점점 쇠퇴한다. 하지만 회백질의 밑에 있는 백질은 평균 48세가 될 때까지 계속 발달한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비유한다면 회백질은 컴퓨터이고 백질은 컴퓨터를 다른 컴퓨터들과 연결하는 전화선에 해당한다. 비록 컴퓨터는 사춘기가 지나면서 더 이상 성능이 좋아지지 않지만, 컴퓨터들 간에 수많은 회로가 중년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발달하기 때문에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능력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은 어떤가? 과학 권위지 <<사이언스>>는 2003년 '노인의 지혜' 특집에서 노인이 되면 두뇌 활동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생각은 수정돼야 하며 오히려 '사회적 지혜' 등 여러 영역에서는 젊은이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도 뉴런, 즉 뇌의 신경세포는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 않으며 어른이 된 뒤에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조금씩 싹튼다. 신경세포는 인체 내의 다른 세포와 달리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비록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노인의 뇌에서도 신경세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노인은 필요한 것을 선택하여 기억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워지고 기억력과 뇌의 정보처리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인이 앞서는 영역도 있다. 우선 사람의 성격을 빨리 간파한다. 예를 들어 노인은 상대가 정직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젊은이보다 쉽게 파악한다. 사회적 지혜, 즉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도 노인이 뛰어나다.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사람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능력도 노인이 젊은이를 앞선다. 언어 능력은 팔십대까지도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기억력은 이십대 중반부터 90세가 될 때까지 점진적으로 줄어든다. 흔히 육십대가 되어 기억력이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젊었을 때는 점진적인 기억력 감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인은 대신 기억력의 감퇴를 '선택적 기억'으로 보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실험 결과 하찮은 정보에 대한 기억력은 젊은이가 뛰어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보에 대한 기억력은 노인과 젊은이가 거의 같았다.
노인들은 왜 이처럼 선택적으로 기억을 할까? 젊은 사람은 활용할 수 있는 정신적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데 비해 노인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쓸 만한 정보만을 기억한다. 선택적 기억은 컴퓨터의 프로세서에 달린 캐시 메모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프로세서는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정보 가운데 자주 쓰는 중요한 정보만을 모아 캐시 메모리에 임시 저장한다. 그러면 좀 더 빨리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노인의 뇌는 캐시 메모리처럼 중요한 정보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노인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누가 그 얘기를 했는지 기억하는 '출처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노인은 구수한 농담과 옛날 얘기를 잘한다. 하지만 누구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어디서 그 얘기를 들었는지 외우는 출처 기억력이 젊은 사람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담 그 자체를 기억하는 능력은 노인도 결코 젊은이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노인의 또 다른 강점은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인 순간을 더 기억한다는 점이다. 또 주변 사람과 정서적 관계를 깊게 하고 인생을 맛보려 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으로서는 현재 이 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젊은이는 미래를 열려 있는 것으로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집중한다. 멋진 관광지를 소개하는 광고를 한다고 할 때 젊은 사람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자"는 말이 잘 먹히지만 노인에게는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세요" 하는 문구가 더 효과적이다. 광고 문구를 쓸 때 노인과 젊은이의 이런 감수성 차이를 잘 이해하지 않으면 허탕을 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노인이 지닌 또 다른 특징은 실제 자신의 현실보다 자기 자신이 더 행복하다고 무의식중에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노인이 이렇게 느끼는 것은 자신보다 더 몸이 아픈 사람이나 이미 죽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안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본 나머지 심각한 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노인에게는 종종 생긴다.
치매 예방에는 규칙적인 운동이 최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노인은 80대까지 젊은이처럼 일하고 생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노인이라 하더라도 치매나 뇌졸중을 앓게 되면 뇌의 능력은 급속히 파괴된다. 따라서 노인 건강에서 가장 유의할 점은 뇌 질환을 앓지 않는 것이다. 뇌 질환을 앓을 경우 노인은 정신적인 건강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까지 급격히 잃게 된다. 노인에게 정신 건강은 곧 육체 건강인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바둑을 두거나 독서를 하는 등 정신 활동을 많이 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바둑이 치매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이다. 이보다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데는 훨씬 좋다고 의사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