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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어린이 비만 바로잡기 계획 돌입

신아연 / 호주칼럼니스트


매점의 주 점심메뉴는 감자튀김과 피자
몇 년 전, 필자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학부형들과 함께 학교에서 몇 차례 매점 자원 봉사를 한 일이 있다. 한국의 급식 도우미와 비슷한 일이었는데, 매점 문을 여는 아침 9시부터 하교시간인 오후 3시까지 학생들의 점심과 간식을 준비하면서 당시에는 잘 모르고 있었던 호주 학생들의 식습관을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호주 초등학교의 매점은 기본적으로 우리처럼 쉬는 시간 아무 때나 와서 먹고 싶은 것을 살 수 있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 간식과 점심은 미리 주문을 받아 필요한 숫자만큼 준비를 해두고, 몇 가지 군것질 거리만 쉬는 시간 틈틈이 팔기 때문에 우리의 급식체계와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도시락을 집에서 가져오지 않고 매점에서 그날 간식과 점심을 해결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점심 메뉴를 골라 음식이 담겨져 나올 봉투 겉면에 학년과 반, 이름, 주문 음식 명을 쓰고 거스름돈이 필요 없는 정확한 음식값을 넣어서 학급별로 비치된 음식 주문 상자에 넣어야 한다. 그러면 학급의 당번이 주문 봉투를 모두 수거하여 9시 무렵에 매점으로 가져가면 그 날의 봉사 어머니들이 주문 수량에 맞추어 함께 점심을 준비한 후 점심시간이 시작됨과 동시에 다시 당번이 찾아다가 급우들에게 점심을 나누어주는 식으로 꾸려진다.

호주 어린이들이 매점에서 사먹는 주 점심 메뉴는 얇게 빚은 후 딱딱하게 구워 만든 밀가루 껍질에 쇠고기 간 것을 소스와 버무려 걸쭉하게 채워 넣은 미트파이와 시루떡처럼 켜켜이 밀가루 반죽을 쌓고 그 사이에 고기를 채워 넣은 라자냐, 감자튀김, 피자, 햄샌드위치 등이 대부분이다. 이들 점심거리는 외부 거래처에서 냉동상태로 들여와 오븐이나 전자렌지로 데운 후 학생들에게 공급되는데, 일을 거들면서 보니 고기에 포함되어 있는 지방함량이 상당하고 간식거리도 지나치게 단 것들이 많아 음식을 준비하면서 꺼림칙했던 기억이 난다. 이따금 자원 봉사 어머니들이 직접 조리를 할 때도 있었지만 이윤이 목적이 아닌, 오직 제 자식들한테 먹일 음식이란 생각에 고기나 햄, 치즈 따위를 듬뿍듬뿍 얹는 통에 아이들의 건강을 오히려 망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지경이었다.

식습관 체질 바꾸는 장기프로젝트 추진
우리 아이들이 다닌 학교 뿐 아니라 호주의 학교 매점들은 대부분 기름진 점심 메뉴를 비롯해 케이크와 초콜릿, 젤리, 아이스크림 등 단 것 위주의 간식을 판매하기 때문에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온 아이들은 오후 서너시 경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고지방에 고당도, 고칼로리 식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이들의 식습관이 학교에 들어가는 7. 8세경부터 야채나 과일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지방과 당분에 치우친 쪽으로 길들여지게 되면서 어릴 때부터 체중과다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사실 호주 어린이들의 비만 정도는 심각하다. 현재 2세 이상 18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 4명 가운데 1명이 비만이거나 과체중 상태이며, 앞으로 20년 후면 사정은 더욱 악화되어 2명 중 1명이 정상체중을 웃돌 것이라는 의학계의 보도가 속속 나오고 있다.

어린이 비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데다 비만 아동들은 이미 성인형 당뇨병이나 심장질환, 고혈압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우울증과 수면장애, 심지어 생식장애까지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동 비만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아동비만에 대한 경고와 우려가 전에 없이 심각한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 어린이들의 식습관을 바꾸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에 개선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즉 아이들이 단 것과 기름진 것을 덜 먹도록 할 수만 있다면 반강제적으로 제한을 하는 한편 점차로 저지방 야채 위주의 식단을 좋아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식습관과 체질을 바꿔놓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학교 매점 메뉴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 개별 가정의 식탁에서보다 집단 급식형태의 메뉴가 달라진다면 그만큼 효과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의 매점 메뉴에서부터 학생들의 입맛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면 일반식당에서도 비슷한 음식을 주문하게 되고 자연히 집에서도 유사한 조리법을 따르게 된다는 계산이다. 결국 어릴 때 길들여진 입맛대로 성인기의 식습관이 결정되기 때문에 세대가 바뀌면서 호주인들의 음식선호도 또한 궁극적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장기 계획이다.

호주 정부는 현재의 비만 세대를 정상 체중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5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각오로 천리 길의 첫 걸음을 내딛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최근 세부안의 첫 작업으로 총 1억16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 어린이비만 바로잡기 4개년 계획에 돌입했다. 'Healthy, Active Australia(건강하고 활기찬 호주, HAA)'라는 슬로건 하에 학교매점의 고지방, 고칼로리 위주의 식단을 야채와 과일, 단백질을 중심으로 한 건강식단으로 전환시키기로 한 것이다.

"아동비만 못 잡으면 국가의 미래 없다"
1억1600만 달러의 예산은 전국 초중고 매점의 조리설비 개선비용으로 우선 지급됐다. 기존의 고기와 튀김 위주의 조리설비를 건강식단에 맞게 개선하기 위해 야채나 과일 등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 구입이나 새 메뉴 게시판 마련 비용으로 지원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는 2006년 6월까지 학교 매점에서 감자튀김과 미트 파이 등 고지방식과 케이크를 비롯한 단 것을 제한하고 야채와 과일 위주로 식단을 편성할 것을 강력히 권장하는 한편, 탄산음료 자판기 설치도 규제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각급 학교 매점은 자율적으로 운영되어 왔지만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이제는 정부가 적극 간섭을 하겠다고 거듭 밝히며 협조를 구하고 있다. 아동비만을 잡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도 없다는 정부의 의지 하에 물적, 심적 지원이 집중되고 있는 호주학교의 '매점 음식 개혁', 앞으로 4년 후의 중간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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