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용 | 한양대 강사·문화평론가
'위험한 아이들'과의 첫 만남
어느 학교에나 '위험한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 아이들의 위험은 타인에 대한 위험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제 스스로에 대한 위험인 까닭에 치명적인 잠재성을 지닌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배우고 가르친다. 위험한 것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그렇게 위험한 아이들은 학교와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점점 그런 위험한 아이들끼리만 뭉치게 되어 종국에는 정말 위험한 아이들이 되어간다. 그런 아이들로 이루어진 특수학급에 '루엔 존슨'이라는 임시 여교사가 부임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정보는 담임할 아이들이 '열정'과 '도전'에 가득 차 있는 특별한 존재들이라는 모호한 이야기뿐이다. 이윽고 첫 수업 시간에 들어간 존슨은 제 멋대로 앉거나 선 채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흰둥이'라 놀리고 무시하며 떠들어 대는 거친 아이들을 만나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사랑은 오래 참음의 능력
문제아들과 그들을 변화시키는 선생님의 구도를 가진 대부분의 영화는 쉽게 주인공인 교사를 탁월한 카리스마를 지닌 말 그대로 극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그런 선생님은 아이들은 물론 학교나 환경과의 어떠한 갈등과 충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뚝심 있게 걸어가고, 결국 아이들과 세상을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영화 '위험한 아이들(1995, Dangerous Minds)'은 이와는 반대로 주인공 존슨 선생의 지극히 불완전한 인간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 놓는다. 거친 아이들과의 만남이 난감하기만 한 그녀가 먼저 하는 일이라고는 관련된 책을 뒤적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 제시하는 방법은 현장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말'일 뿐이다. 책을 접고 어느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나름대로 아이들 앞에서 강하게 보이려고 캐주얼 복장을 하고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보지만 그럴수록 돌아오는 것은 아이들의 야유와 무시의 눈초리들이다. 과거 해병대에 근무하면서 배웠던 가라데로 관심을 끌어보기도 하고, 가르쳐야 하는 토머스 딜런의 시를 접고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밥 딜런의 노래 가사로 문학을 가르쳐 보기도 하지만 만만한 일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존슨은 매순간 자신의 방식이 아이들에게 잘 적용될지 어떨지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전통에 따르지 않는 존슨의 새로운 교육법은 그간 해 왔던 조용한 방식으로 다만 물의 없이 학교를 운영해 왔던 이들의 견제와 동료 교사들의 시샘어린 경계의 눈짓까지 받게 된다. 지금껏 '문제아'들을 위해 손 끝 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던 사람들이 그런 학생들을 위해 뭔가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교사를 돕기는커녕 색안경을 끼고 주저앉히려고 하는 절망적인 현실은 아이들을 더 깊은 불신의 어둠으로 빠져가게만 한다. 싸움을 말리려던 것이 도리어 싸움에 불을 지르고, 아이들을 화해시키려던 것이 반목과 질시를 낳는 소통불능의 상태에 직면한 존슨은 지금까지 자신의 문화에 아이들을 적응시키려 했지, 아이들의 문화에 자신이 적응하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그네들의 삶을 보다 깊이 알기 위한 가정방문이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거친 삶의 터전과 그 가족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점차 진심으로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해 간다. 싸움의 당사자였던 라울을 찾아간 존슨에게 가족들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이를 보다 엄하게 다스리겠다고 다짐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라울이 얼마나 지혜롭고 뛰어난 아이인가 진심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 번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 본 적 없는 아이와 그의 가정에 존슨의 한 마디 칭찬은 소리 없는 감동으로 모두의 가슴에 스며들고, 드디어 라울은 그런 그녀에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이렇듯 위험한 아이들을 변화시켜 가는 존슨의 방식은 눈에 번쩍 뜨이는 새로움이나 독특한 어떤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는 다만 사랑은 곧 오래 참음의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그렇게 오래 참음으로 기다린다. 결코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그들이 한 걸음 밀어내면 두 걸음 다가서고, 또 밀어내면 다시 그만큼 다가서기를 반복한다. 시행착오는 거듭되고 아이들과 그들이 처한 환경과의 싸움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나 최소한 존슨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당황해하고 아이들이 기대하는 만큼 좌절과 난감함을 드러내면서도 그녀는 적어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어설픈 존슨 선생님을 조금씩 받아들여간다.
섣부른 실망을 경계하라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조금씩 생각하는 즐거움을 배워 나가던 '듀넬'과 '라이오넬' 형제는 먹고 사는데 쓸데없는 꿈만 키워준다며 홀로 이들을 기르는 할머니에 의해 자퇴를 당하고, 시에 재능을 가진 '캘리'는 임신으로 다른 학교로 옮길 것을 강요받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가지기 시작한 '에밀리오'는 여자 친구문제로 다른 친구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는다. 존슨은 현실의 거대한 장벽 앞에서 고뇌한다. 정녕 이 아이들에게 한 편의 '시'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채 답해 보기도 전에 그녀에게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진다. 그녀의 충고에 따라 교장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러 간 에밀리오가 단지 노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장실에서 쫓겨난 후 총에 맞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깊은 절망감 속에 존슨은 결국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위험한 아이들과 존슨의 만남은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결과를 보면 실패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아이들의 가슴마다 작은 씨앗을 심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진 것처럼 얼마 자라지 못할 것이고 어떤 씨앗은 거친 황무지에 떨어져 말라 죽어 버릴 것이지만, 어떤 씨앗은 결국 싹을 틔우고 자라나 드디어는 멋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누가 씨 뿌리는 사람이 될지, 물주고, 가꾸고 또 수확하는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섣부른 실패와 실망은 이 모든 것을 제 홀로 해야 한다는, 하겠다는 성급한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그것을 최선을 다해 행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하늘에 맡길 수 있을 뿐이다. 떠나려는 존슨에게 아이들은 바로 이 점을 상기시킨다.
현실에서 상처입고 죽고 떠나는 아이들이 있지만, 또한 당신으로 인해 새 생명과 삶을 얻는 우리들이 있다고…. 그러니 당신이 가르친 것처럼 결코 운명과 환경에 굴하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해피엔드로 마무리된다.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다운 결말처럼 보여 혹시 맥 빠진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가 9년간의 해병대 근무를 마치고 교사의 길에 투신한 루엔 존슨의 실제 이야기를 원안으로 했다는 사실이 위로와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영화정보
제목 : 위험한 아이들 (Dangerous Minds)
감독 : 존 N. 스미스
주연 : 미셸 파이퍼, 조지 준자, 코트니 밴스
제작년도 : 1995년
관람등급 : 15세 / DVD, VIDEO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