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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돌연변이로 탄생한 말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언어의 힘으로 고등 동물로 진화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를 들라면 아마 말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인간이 고등한 존재로 진화한 밑바탕에는 언어가 있었다. 언어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다. 언어가 생기면서 인간은 빠르고 명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고, 획득한 지식과 기술을 대대로 문자와 구전을 통해 자손에게 전달해 문화를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인간의 사고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이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다. 침팬지에게도 언어가 있다.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기르는 침팬지인 '칸지'는 바나나, 포도, 주스, 예스와 같은 4개의 소리를 이해한다. 사람이 이 단어를 반복해 가르쳐주고 실제로 물건을 보여주면 이들 단어에 대해 각각 독특한 소리로 맞장구를 칠 줄 안다.

그러나 침팬지가 내는 발음을 들으면 정말 실망스럽다. 침팬지들끼리는 말을 한다고 하는 데도 들어보면 꼭 울부짖는 것 같다. 소리도 다양하지 못하다. 까치가 귀청 따갑게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톱 써는 소리 같기도 하다. 침팬지는 인간처럼 아름답고 다양한 소리를 절대 내지 못한다. 침팬지는 인간처럼 후두와 구강을 섬세하게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고 하는 침팬지의 소리를 들으면 이들의 DNA가 인간과 98.8% 같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교한 발성 기관과 언어의 출현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인간은 의미가 담긴 20만 개의 단어와 절, 문법이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침팬지와 비교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등한 능력이다. 언어의 진화는 인류의 진화를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임이 분명하다.

언어는 뇌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1950년대에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언어는 인간의 독특한 특성이며 유전적인 선물이다"라며 처음 언어와 유전자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어린아이의 옹알거리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말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언어가 뇌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라는 이론을 한층 발전시킨 매사추세츠 공대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도 1994년에 《언어 본능》에서 사람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핑커의 책은 영국에서 유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밟고 있었던 사이먼 피셔란 학생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의 웰컴 재단 인간유전학센터에서 일하던 피셔와 이 센터 소장인 안토니 모나코 교수에게 1996년 어느 날 런던 아동건강연구소의 한 의사가 찾아온다. 'KE'가족으로 불리는 특이한 언어장애 가족 때문이었다. 이 가족은 전체 가계의 절반인 24명이 3대에 걸쳐 심각한 언어 및 문법 능력의 장애를 겪고 있었다. 발음이나 단어의 순서가 이상하고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이다. 핑커의 책에 영감을 얻은 사이먼 피셔는 이때부터 혹시 이것이 언어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그런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고 유전자 사냥에 나선다.

연구팀은 몇 년 동안의 고생 끝에 언어장애를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7번 염색체의 FOXP2 유전자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유전자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제어함으로써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었다. 또한 언어장애 가족들은 이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언어중추의 회백질이 정상인보다 적었다. 이어 모나코 교수팀은 영장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독일 막스 플랑크 영장류연구소 스반테 파보 박사와 공동 연구를 시작한다. 혹시 FOXP2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달라 원숭이나 침팬지는 말을 잘 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닌지 알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침팬지는 이 단백질을 만드는 715개의 아미노산 가운데 2개가 사람과 달랐다. 인간의 FOXP2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은 13만∼20만 년 전으로 추정됐다. 이는 현생인류가 탄생한 시점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2002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밀리초 단위로 조화 이끄는 능력
파보 박사가 한국에 왔을 때 그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로 인해 인간은 밀리초(100분의 1초) 단위로 성대와 혀 그리고 입을 매우 정교하게 조화시켜 복잡한 발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부학자들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30만 년 전에서 20만 년 전에 발달했다고 생각해 왔다. 이 시기에 후두의 위치가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훨씬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후두가 낮아짐으로써 인간은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반면 후두가 낮아짐으로써 음식이 기도로 들어가 질식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물을 마시다가 사래에 걸리는 것은 말하자면 진화의 부작용인 셈이다.

다양한 소리를 내려면 혀가 둥글고, 코를 닫고 후두부를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이런 발성 기관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없었다. 15만 년 전쯤에 지구상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혀가 둥글고 목은 길고 후두가 낮았다. 그래서 혀와 입술 그리고 후두의 정교한 협동 작업을 통해 광범위한 발음을 낼 수 있게 됐고, 이로 인해 언어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아주 복잡한 인간의 기능이기 때문에 FOXP2 하나의 유전자뿐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번에 밝혀진 유전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르며 곧 연쇄적으로 관련 유전자가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언어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정교한 의사소통 기술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어떤 학자들은 언어가 발달함으로써 사냥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기에 있는 들소를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대화를 주고받고 사냥하는 것이 무작정 달려드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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