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듯 남으로부터 봄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그 봄바람으로 찔레꽃이 피었는지 어느 시인은 그 모양을 보고 찔레꽃이 봄바람을 껴안는다고 했지요. 아마도 시인은 찔레꽃 가시에 찔리는 아픔으로 4월을 맞이했던 듯합니다. 이맘때 이렇게 봄바람이 살랑이며 치맛자락을 간질이기 시작하면, 시인이 아니어도 그렇지 않은가요. 그립지만 볼 수 없는 그런 사람 생각으로 한번쯤은 가슴이 저려오지 않나요.
어젯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꿈을 꾼 아침은 머리가 무거웠는데 오늘 아침은 맑고 상쾌했으니 좋은 꿈이었던 모양입니다. 넓은 벌판 위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하양, 노랑, 진달래, 자주…. 들판이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한 움큼씩 꽃을 꺾어 가슴에 안았습니다.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문득 어느 장소에 와서는 아주 낯익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언젠가 와본 듯,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 있잖아요. 거기서 설핏 당신을 본 것도 같습니다. 가슴에 안고 있던 꽃을 당신에게 주려 했었는지, 아니면 몽유병자 마냥 거실 화병에 꽂혀 있던 꽃을 들고 와 이불 속에 넣으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꿈이 거기서 끝나 버렸으니까요.
어쨌든 오늘 아침 제 마음은 그 꿈 덕분에 꽃물이 들은 양 설레고 또 설레었답니다. 초봄의 햇살을 받으며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그래서일 겁니다. 낮은 담장 너머로 흰 빨래가 널려 있고,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깬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아직도 서울 거리에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우리가 그저 없을 거라고 여겼던 풍경들이, 가까운 골목길에 아직 남아있음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하늘을 절벽처럼 막아선 고층 아파트와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 길에서 고작 수 백 미터 남짓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 주택가 낮은 언덕을 내려와 큰길과 마주치는 귀퉁이에서 “아!”하고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흰 빨래와 개 짖는 소리보다 더 반가운, 우체국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정겨운 돌계단과 그 옆에 서 있는 오래된 목련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빨간 우체통. 잔뜩 부풀어 있는 저 목련 나무에는 곧 희고 소담한 목련꽃이 피어나고, 또 얼마 있지 않아 빨간 우체통 위로 하얀 꽃눈이 내리게 되겠지요.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몇 번이고 이곳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그 앞에서 마주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부친 적이 언제였던가요. 마른침으로 우표를 붙이던 기억이 있습니다. 혀로 느껴지는 우표 뒷면의 매끈한 감촉과 종이 풀 냄새, 그리고 편지 한 통을 들고 빨간 우체통 앞에서 망설이던 때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었음을 이제 알았습니다. ‘러브레터’(1995)라는 영화가 있지요. 죽은 사람, 실존하지 않는 남자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 처음 편지에 썼던 여인의 말, 생각나시나요?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편지 한 통을 들고 우체국을 찾았습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요.” 너무 평범한 말 한마디 전하려 하는데, 밤새 쓴 편지를 부칠 때처럼 빨간 우체통 앞에서니 여전히 망설여집니다. 봄바람 부는 4월이기 때문일까요? | 한국교육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