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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열쇠로 반항의 빗장을 풀다 〈굿 윌 헌팅>

천재적 두뇌를 갖고 있지만, 불구의 영혼을 갖고 있었던 윌 헌팅과 아픈 상처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숀 맥과이어와의 '만남'에 대한 영화 '굿 윌 헌팅.'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만남'이다.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만남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서로의 신뢰를 쌓기 위해선 나부터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접고 스스로의 선택을 믿고 달려가는 윌의 모습에서 스승과 제자와의 만남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추해 본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상처투성이 교사와의 '만남'
고아로 나서 학교 문턱에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윌 헌팅(맷 데이먼)은 잦은 폭력 사건에 연루되기 일쑤인 문제아다. 하지만 그는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대학의 수학과 교수도 어려워하는 수학문제를 장난치듯 풀어버리는 천재이기도 하다. 외견상 불량스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윌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본 하버드 대학의 램보 교수는 또다시 폭행사고로 수감되기 직전의 그를 두 가지 조건으로 석방시킨다. 하나는 자신과 함께 수학을 연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정신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후 다양한 방식의 심리 치료사들이 치료를 감행하지만 그 누구도 윌의 지능적인 조롱과 모욕을 참아내지 못한다.

결국 램보는 마지막으로 대학 동창이자 과거 라이벌이었던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에게 윌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숀과의 첫 만남에서도 윌은 의도적으로 그의 아내와 관련된 아픈 상처를 건든다. 하지만 숀은 불쾌감을 애써 숨기던 앞서의 위선적인 상담자들과 달리 윌 앞에서 그것이 비록 부정적인 감정일망정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맞부딪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의 첫 만남을 통해 윌은 그 이전 누구와도 느끼지 못했던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을 경험한다. 가정이나 교육 현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기본인 까닭에 그 중요성이 흔히 망각되기 일쑤인 게, 바로 진실한 '만남'의 중요성이다.

흔히 뛰어난 의술을 지닌 명의나 탁월한 교사로 추앙받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병을 치료하거나 무언가를 가르치기 전에 우선 상대방과 마음을 열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강조한다. 윌이 다른 정신치료사들을 거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문치료사들은 자신의 모습은 감춘 채 단지 그를 교정과 치료의 대상으로만 대하려 했고, 자존심 강한 윌은 이러한 비인간적인 접근을 참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반면 숀은 무엇보다 윌의 진심과 만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아픈 과거의 기억들을 나누며 오랜 기다림 속에 윌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실패자의 삶도 가치를 지닌다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영화는 숀을 통해 그것이 곧 치료자이자 스승으로서 자신을 내어주는 것, 자신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 또 우리 자신들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존경하는 스승의 모습은 완전무결한 행실의 이상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도리어 대개 그런 선생님은 인간적인 약점과 단점들을 솔직히 인정하며 늘 최선을 다해 이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또한 그런 애씀으로 학생들을 격려하고 응원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지닌 분들이었다. 윌 역시 유년기의 고통과 사랑했던 아내와의 사별의 아픔 등 자신 못지않은 인생의 상처를 먼저 담담히 고백하는 숀의 진솔함과 그의 강요하지 않는 끈질긴 기다림 앞에서 차츰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반항아의 영혼을 해방시키다
선택도 거부도 오직 본인의 자발적이면서 진실한 결정이 되기를 끈기 있게 기다리는 숀의 방식은 하루속히 윌의 탁월한 능력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 램보 교수의 눈에는 너무나 더디고 심지어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학생이 누가 봐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하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마땅히 해야 할 바인데, 숀은 윌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고 있기에 무책임한 태도라는 것이다. 실패자의 삶도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는 말은 성공한 램보 교수에게는 숀과 같은 패배자들의 궤변일 따름이다.

하지만 숀은 윌이 자신이 지닌 재능을 부정하고 건달 같은 친구들과 자신의 세계 속에 안주하려는 것이 바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강요된 삶에의 거부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는 삶, 그리하여 원치 않는 강요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윌은 성인이 된 지금 심지어 자신에게 유익한 선택일지언정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면 이를 본능적으로 거절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반항의 이면에는 살아오면서 그런 요구에 응답하는 삶을 살수록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끊임없이 버림받아 왔던 쓰라린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윌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알 수 없는 잘못으로 인해 그가 새롭게 시도하는 모든 일들, 사랑하게 될 사람들로부터 또다시 버림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윌에게 숀은 말한다. "윌, 내가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은 말해 줄 수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에 윌은 건성으로 대답한다. "알아요." 그러자 숀이 정색을 하고 다시 말한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 봐, 네 잘못이 아니야." 윌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알아요." 숀은 거듭 반복해서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진심을 다해 상처 입은 영혼을 보듬어 안으려 애쓰는 숀을 윌은 어떻게든 외면하려 애써 보지만 그의 따뜻한 위로의 말은 윌의 마음 깊은 곳에 맺혀져 있던 자책감의 굳은 자물쇠를 산산조각내고, 결국 그의 영혼을 진정한 해방에 이르게 한다. 윌은 숀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통곡하면서 말한다. "젠장, 정말 죄송해요. 죄송해요."

스스로의 선택으로 시작하다
불량 청소년들을 선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밤 순찰을 도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마츠다니 선생은 문제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바른 길의 제시나 일방적인 훈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생각과 달리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선택하고 행하는 일들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은 잘못된 사실에 대한 가르침에 앞서 그런 삶,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들에 대한 이해와 용서, 위로의 마음이다.

혹자는 램보 교수처럼 이러한 가르침이 아이들을 잘못에 대한 면죄부를 주어 더 큰 잘못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마츠다니 선생은 사랑에 의해 신뢰가 쌓이게 되면 아이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단호한 어조로 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윌과의 만남이 점차 깊어지면서 그는 매사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윌의 태도가 지닌 문제를 분명히 지적하고 전향적인 변화를 촉구한다. 결국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안에서는 매서운 질책과 충고도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라면 아무리 그 요구가 옳은 길을 위한 바른 충고라 할지라도 그것은 무의미한 잔소리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윌은 램보 교수의 추천으로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결심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회사를 포기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친구 스카일라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누구의 권유나 강요가 아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하는 혼자만의 소중한 선택이다. 미래가 보장된 선택을 거절하고 기약 없는 사랑을 향해 떠나는 윌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영화 <굿 윌 헌팅>은 이른 아침 허름한 자동차를 끌고 거침없이 끝없이 펼쳐진 도로를 달려가는 윌의 홀가분한 모습으로 그에 대한 답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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