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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한 놈의 세상, 한 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 뿐…”



줄을 타는 광대가 있습니다. 공길과 장생. 외줄 위에서 여인네와 사내의 수작을 흉내 내는 그들은 아직 모릅니다. 자신들의 삶 자체가 외줄 타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냥 그들은 그들만의 ‘놀이’를 즐길 뿐입니다. 장님의 모양새를 흉내 내며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는 걸’ 서로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던 그들의 놀이는 그러나 둘만의 놀이에 만족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시골에서 한양으로, 관객을 좇아, 돈을 좇아, 재주넘기에서 양반의 폭정을 비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왕실 풍자에 이르기까지 놀이는 변해갔지만, 그들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놀이가 놀이로서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을 말입니다. 궁에 들어가기 전, 왕을 짓누르는 중신들을 갖고 놀기 전, 내시 처선의 지시를 받아 연기를 하기 훨씬 그 이전부터, 그들은 이미 순수한 놀이판에서 떨어져 나와 버린 것을 말입니다.

그들의 놀이판은 이제 왕의 웃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왕 개인의 정치적, 감정적 보복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네 삶을 풍자하고 때론 조롱하던 놀이판의 순수한 흥겨움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피의 음모로 변질되어버린 것입니다. 

장생은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신명났던 놀이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가 신명과 바꿀만한 가치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는 궁을 떠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공길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장생에 대한 사랑과 왕 연산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광대이길 바란 장생으로 인해 그도 알게 됩니다.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공길은 연민의 정을 피로써 끊어버리고 장생의 곁으로 돌아갑니다.

장생과 공길이 다시 줄을 탑니다. 이제 그들이 외줄 위에서 보여주는 것은 흉내가 아닙니다. 눈을 잃었기에 진정한 장님의 내면을 연기할 수 있게 되었고, 죽음을 목전에 두었기에 한 발만 헛디뎌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줄타기를 더욱 즐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릴 적 광대 패를 처음 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 짓 할 때는 어느 광대 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한양에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얼떨결에 궁에 와서는 그렇게 눈이 멀어 볼 걸 못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
이렇게 눈이 멀고 나니 훤하게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도 그걸 못보고
그래!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광대로 다시 만나 제대로 한번 맞춰보자!”


둘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평생 해온 외줄타기가 ‘놀이’가 아니라 ‘인생’이었다는 사실을…. 사람의 삶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놀이판. 볼 것 제대로 못보고 눈멀어 살아왔다고 자책할 것도 없습니다. 징한 놈의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이지 않습니까. | 한국교육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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