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평생의 인격 형성을 돕는 교육
명문 사립 성 베네딕트 학교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문명사를 가르치고 있는 훈더트 선생(캐빈 클라인)은 교육이란 단순한 실용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 평생의 인격을 형성하도록 돕는 중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첫 시간에 '슈트럭 나훈테'라는 어느 정복자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많은 땅을 차지했을지라도 그에게 기릴만한 성품에서 말미암는 '업적'이 없다면 그것은 다만 세월이 흐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야만적인 약탈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말해 세상에서 두각을 나타내려 하기 전에 먼저 바른 인간 됨됨이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가르침에 순종하지만 뒤늦게 수업에 합류하게 된 현직 상원의원의 아들 세드윅 벨은 특유의 반항적 기질로 사사건건 훈더트와 맞서려 한다. 헌신적인 교사와 문제아의 만남, 영화의 전반부는 교육소재 영화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벨의 반항적인 태도가 일에만 분주한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말미암는다는 설정이나 이런 벨을 훈더트가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등의 설정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헌신적인 교사를 통해 문제 학생의 삶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식의 다소 상투적인 교육 성공담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던 영화는, 최우수 학생 선발을 위한 퀴즈 대회와 관련된 뜻밖의 상황에 부딪히면서 전혀 다른 흐름으로 전개된다.
퀴즈대회를 통해 벨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싶었던 훈더트는 자신의 손 때 묻은 책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 대출이 불가능한 자료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심지어는 작은 차이로 경쟁에서 탈락할 뻔 했던 그를 위해 약간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결국 벨은 최종 경쟁에 오르고 다른 2명과 함께 치열한 퀴즈 대결을 벌인다. 퀴즈를 진행하며 훈더트는 자신의 관심과 사랑에 의해 최고의 자리에 까지 오게 된 벨의 모습에서 뿌듯한 마음을 느낀다.
제자에게 안겨준 치명적 위기
그러나 그 순간 어려운 퀴즈를 풀 때 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벨의 우연찮은 행동을 통해 그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퀴즈대회를 중단하려는 훈더트에게 교장 선생은 벨의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지원받아야 하므로 모른 척 계속 진행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 않고 벨이 부정행위로는 결코 맞출 수 없는 문제를 출제해, 승리는 다른 학생의 몫으로 돌아간다. 퀴즈 대회가 끝난 후 훈더트는 혼란과 실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벨을 만나 묻는다. '대체 왜?' 그러자 벨은 도리어 반문한다. 자신의 부정행위를 알면서 왜 알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오히려 훈더트 쪽이었다. 그는 겉으로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노라 말하지만 벨은 자신의 아버지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고 빈정거릴 따름이다. 이후 벨은 다시 반항아의 태도로 돌아가 졸업 때까지 그러한 모습을 일관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존경할만한 선생님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언행일치라고. 진리와 옮음을 외치는 그의 말과 행함이 일치할 때 비로소 학생들은, 자녀들은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완벽히 이룬다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훈더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통해 진정한 용기, 지식, 행동을 말하였지만 정작 벨을 야단쳐야 할 그 순간에는 교장과 그 자리에 참석해 있는 상원의원의 막강한 권력의 눈치를 살폈고, 결국 자리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벨은 그런 훈더트를 보았다. 더욱이 그는 벨의 이러한 지적을 얼버무리며 회피하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부정행위를 알았던 바로 그 때 벨을 지적하고 그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이로 인해 피해를 받은 학생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벨이 그의 침묵을 비난할 때 상황을 강변하기 보다는 솔직한 태도를 자신의 비겁함, 위선을 고백했어야 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두 번의 기회는 벨에게 있어 치명적인 위기인 동시에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이렇듯 아이들은 보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히 보고 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단지 '말'뿐인지 아니면 생생한 '삶'인지를 말이다. 그러기에 성경을 기록한 어느 필자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선생' 되기를 즐겨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렇게 힘겨운 자리가 바로 선생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비인간적인 현실 속의 교육
벨과의 만남, 곧 실패한 교육을 통해 깊은 반성과 성찰의 과정을 가졌던 훈더트 선생은 올곧은 교사로 20여 년을 넘겨 학교에 봉직하며 이제는 교장의 자리에 임명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오직 학생들의 인격 성숙에 최고의 교육적 가치를 두었던 그는, 기능과 효용성 그리고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는 길을 선택한 학교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교장 후보에서 탈락하고, 은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평생을 교육에 헌신했던 훈더트가 직면한 비인간적인 현실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미 일선 교육현장에서 적지 않은 학부모들은 요구한다. 인격의 성숙보다는 좋은 대학, 좋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력과 방법, 그것이 심지어 편법일지언정, 비결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본래의 의도가 어떠하든 '교육인적자원부'라는 교육 담당관청의 이름이 말해 주는 것은 이제 교육은 균형 잡힌 인격을 성숙시키는 전인교육의 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적자원으로서 아이들을 보다 세상에 효용성 있는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과정이라는 인상이다. 결국 탈락된 훈더트의 자리에는 많은 대학의 총장들이 존경받는 교육자들 보다는 투자유치와 경영 마인드를 앞세운 전현직 CEO들로 교체되듯, 자본의 논리와 처세에 능한 후배 교사가 임명된다. 실의에 빠져 있던 훈더트에게 불현듯 벨의 초대장이 날아온다.
동문들이 모여 다시 한 번 추억을 되살려 퀴즈대회를 하자는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만감이 교차하던 훈더트는 이제는 장성하여 사회의 기둥 같은 존재들이 된 제자들과 뜻 깊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추억의 퀴즈대회를 진행하던 훈더트는 또다시 벨이 첨단기술을 동원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아득해져 옴을 느낀다. 벨이 주최한 동문회는 실상 그가 상원위원에 출마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자리였으며, 여기서 주목을 받기 위해 퀴즈대회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훈더트는 다시 한 번 뼈저린 후회를 느끼며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실패한 교육을 통한 자아 발견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사건으로서 교사 훈더트와 학생 벨의 관계는 〈엠퍼러스 클럽〉을 실패한 노(老)교사의 이야기로 보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반전은 언제나 최후에 있는 법. 실의에 빠져 돌아간 그의 방 안에는 다른 모든 제자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훈더트에게 진심어린 환영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돌판에 새겨 전달한다. 비록 그가 한순간의 오판으로 말미암아 벨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해 포기한 적 없던 그의 진실한 사랑의 가르침은 훈더트 본인도 모르는 사이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말한다. 뜨거운 가슴을 지닌 교사도 한 아이의 영혼을 잃어버린 실패한 교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그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평생의 애씀과 수고함으로 씨앗을 뿌리는 교사만이 진정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