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6월은 붉은 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담벼락 위엔 가시 돋친 빨간 장미들이 출렁였고, 교실에선 ‘멸공방첩’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와 6·25 전쟁 관련 포스터며 표어 제작에 열을 올렸었습니다. 포스터에는 너나없이 전면에 빨간 도깨비 탈을 쓴 북한군의 모습을 그려 넣었었지요. 그때는 정말 북한 사람들의 얼굴엔 도깨비 뿔이 달려있는 줄로만 알았으니까요. 포스터의 영향이었는지, 6월 달력의 빨갛게 칠해진 6일은, 다른 공휴일보다 더 유난스레 빨갛게 보였었습니다.
‘청’ 군과 ‘백’ 군으로 나눠 싸우는 운동회가 봄, 가을로 빠짐없이 열렸음에도 그 시절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의미로 ‘빨간’ 색과 ‘파란’ 색을 주로 쓰곤 했었습니다. 나쁜 것은 무조건 ‘빨갱이’로 말하는 버릇도 생겼던 걸로 기억됩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공산당, 공산당은 나쁜 놈….
‘빨갱이’란 말이 촌스럽게 느껴지던 80년대 말. 빨간색은 운동권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그 시절, 빨간색은 또다시 빨간색을 경계하는 층과 옹호하는 층으로 나누는 아픔의 색이었습니다. 87년 6월, 대학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붉은 장미는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호헌철폐’를 외치는 함성에 의해 무수히 떨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2002년 6월, 광화문 네거리는 온통 붉은 물결로 출렁였습니다. 어릴 때 무섭게만 여겨졌던 도깨비 모양을 얼굴에 그려 넣고, 빨간색 티셔츠를 다 같이 맞춰 입은 ‘붉은 악마’들이 거리거리마다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거대한 함성 “코리아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너무나 강렬했던 빨간색의 물결.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가슴에 용솟음칠 젊은 피,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승리를 염원하던 함성의 색, 빨강. 이 강렬하고 순수한 색 속에 ‘흑백’ 논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습니다. 깨끗한 피를 욕되게 하는 억압의 사슬도, 오해와 반목과 질시의 어두운 그늘도, 새로운 빨강의 물결에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의 불꽃 같은 열정으로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06년 6월. 광화문과 시청 앞 거리는 또다시 열정의 붉은 물결이 넘쳐날 것입니다.
지난날 전쟁의 붉은 피로 물들었던 6월의 대한민국 산하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는 축제의 붉은빛을 밝히며 전 세계를 향해 그 빛을 강렬히 발산할 것입니다. ‘붉은 악마’ 아니 ‘붉은 천사'들이 외치는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의 함성은 세상을 다시 한 번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어두웠던 우리 6월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는 ‘붉은 악마’. 그들이야말로 2002년에 이어 이번에도 월드컵 최고의 승리의 전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 한국교육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