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리더십 연구에서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것은 ‘훌륭한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 같은 연구는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을 ‘리더십 자질 이론(leadership traits theory)’이라고 부른다. 과연 리더십 자질론의 입장에서 훌륭한 교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지난 호에 필자는 대니얼 골먼의 감성리더십을 소개하였다. 그의 이론을 학교 상황에 맞추어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교실의 분위기는 교사의 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교사의 감정상태가 그대로 교실에 전달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에 필자의 학과 학생회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이 교수들을 평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요지는 교실의 분위기가 교수들의 개인적인 성향(성격)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다혈질에다 유머를 즐기는 A교수는 목소리가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말하면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B교수는 언제나 강의실 분위기를 조용하고 진지하게 이끌어갔다. 문제는 교사의 영향력이 교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의 말 한디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교실의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 가는지, 얼마나 성숙한 모습을 보였는지 자성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교사 리더십 자질론이란? 리더십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정의하지만, 리더십이란 리더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많은 리더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힘(power)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힘이란 주로 물리적인 힘의 사용이 많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힘의 사용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전통적으로 리더십 연구에서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것은 과연 훌륭한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이다.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 같은 연구는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을 ‘리더십 자질 이론(leadership traits theory)’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정치학자들과 경영학자들은 훌륭한 리더십의 본질을 성공한 리더나 국민적 영웅들에게서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다. 따라서 리더십 자질 이론은 ‘위대한 영웅’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리더십 연구에서 해묵은 논쟁중의 하나는 ‘리더는 과연 태어나는 것인가, 혹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리더는 태어난다기보다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복고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처음 번역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스티븐 코비 박사가 이런 복고적 연구를 부추긴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원칙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결국 리더십의 자질론으로 되돌아갔다. 리더십 연구는 자질론에서 출발하여 후천적 개발론을 거쳐 상황이론 등으로 발전한 리더십 연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신학이나 기독교 교육학 등에서는 자질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훌륭한 교사는 어떤 교사인가? 리더십 자질론의 입장에서 훌륭한 교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필자는 토마스 고든의 교사역할훈련(T.E.T.) 등 교사리더십훈련과정에서 과연 나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때마다 많은 교사들이 우리에게 공부를 잘 가르쳤던 선생님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던져 주었거나 혹은 등을 두드려주면서 사랑을 베풀었던 모습에서 훌륭한 선생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얼마 전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서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대화를 나누던 중 모든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수학을 잘 가르쳤던 선생님, 영어를 잘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을 이야기하면서 선생님께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과연 교사에게 필요한 리더십 자질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필자는 수많은 학자들이 열거하는 자질론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필자가 처음 강단에 섰던 초심으로 돌아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자질을 몇 가지 열거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나는 어떤 자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함께 점검해보는 것도 좋다.
1) 열정
교사가 갖추어야 할 최대 덕목은 ‘교직에 대한 열정’이다. 처음 교사로 발령받던 초심으로 돌아가 보면 많은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교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열정들이 교직에 몸담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어느새 열정과 애정은 사라지고 직업인으로써 교직에 몸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업체 임원을 지낸 로버트 그린리프가 젊은 시절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기초대수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기초대수를 몰라서 일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그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수학을 가르쳤는데, 그들 대부분이 가감승제도 겨우 겨우 해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가감승제부터 조금씩 가르치면서 대수로 다시 넘어갔는데 학생들이열심히 공부하여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 배울 내용을 단 몇 주 만에 끝낼 수 있었다. 그 후 고등학교 교장을 만난 그는 당시 고등학교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방법보다 자신의 방법이 더 좋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때 교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하나 있네. 자네는 진정으로 대수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가르친 게야. 그렇지만 우리의 문제는 대수를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대수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일세. 우리 학생들에게는 자네 방법 역시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거네.”
이 교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교사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처음 교직을 선택할 때 다른 직장을 선택하지 않고(중간에 많은 교사들이 퇴직하였지만) 교직을 선택하여 굳건히 교직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교직에 대한 열정 때문이 아닌가? 얼마 전 내 강의를 들었던 대학원생 한 명이 “교수님께서 소개해 준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교사는 바로 이런 일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사람들을 변화시키겠다고 한다. 선거철을 맞아 공약을 내건 후보자들은 세상을 바꾸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위대한 스승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을 변화시켜 온 세상을 변화시켰다.
2) 헌신
교직에서 다른 직장과 달리 요구되는 덕목은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눔과 베풂의 정신이 없다면 교직은 정말 따분한 직업일 수도 있다. 어느 선생님은 노동절에 근로자들이 쉰다면 스승의 날에는 교사들도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해 함께 웃기도 하였다. 교사는 노동절이나 스승의 날에 놀거나 놀지 않거나 관계없이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오래 전 연세대 민경배 교수의 강의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어느 학교에서 신임교사가 배정되어 왔다. 그 선생님께는 학생 명단과 함께 ‘85, 90, 95, 97, 100…’이라는 숫자가 적힌 종이가 전달되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친 후 시험을 치렀는데 학생들의 점수는 평균 60점을 넘지 못했다. 선생님은 실망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심지어는 방과 후까지 남아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친 결과 1년이 지날 즈음 학생들의 성적은 향상되었고, 마침내 처음 반을 맡았을 때 받았던 성적에 가깝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학기말에 교장 선생님은 이 선생님께 큰 상을 내리었다. 이유인즉 처음 선생님께 드렸던 종이쪽지는 학생들의 성적 점수가 아니라 그 반 아이들의 아이큐 점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열심히 반 아이들을 가르친 결과 우수한 학생들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선생님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이 학생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역사상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였던 헬렌 켈러의 곁에는 셜리번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의 헌신이 삼중고의 헬렌 켈러를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이다.
3) 사랑
교사가 갖추어야 할 세 번째 덕목은 학생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다. 학생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교사의 열정과 헌신이 아무 소용없을 수 있다. 필자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배웠지만 그중 두 분의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다. 한 분은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였고, 또 한 분은 안식년을 맞이하여 모국에 와서 우리에게 미국식 경영을 소개해준 분이다. 지금은 모두 정년을 하셔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이 분들의 공통점은 모두 제자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사실이다.
두 분 교수님은 필자에게 있어서 학문적 스승이기 이전에 인생의 조언자이고 멘토요, 코치였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결혼하는 문제부터 주택 구입에 이르기까지 자질구레한 일도 모두 의논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인생의 선배로써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우리 제자들은 매년 1월 초가 되면 항상 지도교수님댁에서 모인다. 처음에는 전공 제자들만 모였지만 지금은 여러 전공의 제자들이 모인다. 지난 겨울에 그 숫자가 40명을 넘어섰다. 그래도 선생님은 귀찮은 내색을 전혀 하시지 않고 반기시기 때문에 매년 숫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 20대에 만난 선생님을 이제 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다.
필자가 번역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좋은 책이라면 무조건 우리말로 옮겨서 소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또 한 분의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교수 때에는 많은 책을 번역을 해도 괜찮지만, 부교수가 되면 번역서보다는 자기 저서를 준비하라는 당부이시다. 학자로서의 본분은 자기 생각과 주장을 펴는 저서를 세상에 내어 평가받는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그동안 몇 권의 저서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