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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다 그런 거지 뭐”


플라나리아 실험이란 걸 아세요? 2cm도 안 되는 뇌도 없을 것 같은 원시적 동물인 플라나리아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실험은 이런 겁니다. 그 녀석을 용기에 넣고 들어있던 물을 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 곳에만 물을 붓고 그곳에 불빛을 비춥니다. 그러면 녀석은 물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한 거죠.

이 실험을 반복하면 플라나리아는 불빛이 비치는 장소로 물이 없어도 이동을 합니다. 학습을 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실험을 반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어느 순간 녀석은 불빛이 아무리 비쳐도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물을 못 만나 죽고 만다는 게 실험의 요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플라나리아는 왜 꼼짝도 하지 않았을까요? 반복에 싫증이 난 건 아닐까요? 용기 내부의 재질을 바꾸거나 상황을 바꾸면 녀석이 다시 학습을 시작한다는 걸 보면 이 원시적 동물도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지겨워한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이사카고타로의 책 ‘러시 라이프(Lush Lif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몇십 년이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똑같은 일을 계속하며 사는 인간은, 원시동물조차 질려버리는 그런 반복을 “인생이란 다 그런 거지 뭐”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여 버린다고 말입니다.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고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인생이란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합니다. “사람의 하루는 다 그게 그거야. 우리들의 어제도, 자네 집사람의 오늘도, 또 다른 누군가의 내일도 한꺼번에 바라보면 다 똑같아 보여”라고 말이지요. 설사 인생이 릴레이처럼 연결이 돼서 오늘은 내가, 내일은 당신이, 그다음은 또 다른 인간이 주인공 역을 맡아 릴레이를 벌여도 결국은 다 똑같은 거니까. “인생이란 다 그런 거지 뭐”라고 말입니다.

플라나리아보다 인간이 더 열등해서?, 아니면 너무나 고등생물이기에 그만큼 선견지명이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왜 에셔(Escher)의 작품 중에 ‘그림 그리는 손’이라고 있잖아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손과 손이 얽혀있는…. 왼쪽 손이 오른쪽 손에게 “이봐 내가 지금 널 그리고 있어.” 그럼 오른쪽 손이 왼쪽 손에게 “멍청하긴, 너야말로 지금 내가 그리고 있잖아”라고 말하고, 거기에 화가 에셔의 손이 “그놈들 참, 계속 그렇게 다툰들 끝이 없을 것을. 잘들 해보라고. 난 갈 테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그 그림.

내가 삶을 사는 건가요. 아니면 삶이 나를 사는 건가요. 나를 그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인가요. 어쩌면 지금 나는 아직 불빛을 잃지도 않았고 열심히 살아가기 위한 물을 찾고 있는데, 지금 나를 읽고 있는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합니다.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며, 아직 반도 안 읽었으면서, 이내 덮어버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이미 결론을 뻔히 알고 있다는 듯 “인생 다 그런 거지 뭐”라고 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아직은, 이사카고타로처럼, 그렇게 단정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까요. | 한국교육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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