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임용 방식의 개선안에 교육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교육과 사도에 유난히도 많은 관심과 열정을 보여 온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다. 변화와 혁신의 흐름에서 교육 또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교육혁신위에서 제안한 교장공모제는 오히려 교육현장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 교장임용 방식을 다양화하기보다는 교장의 전문성을 키워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교장은 미성년의 교육 관리자 현행 교장임용 제도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이토록 개정을 서두르는 것인가? 개선 배경의 하나로는 승진에 집착하는 경쟁풍토로 승진을 하고자 하는 교사들이 점수관리에 집착함으로써 학생지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고, 승진평정점수에 의한 서열화가 교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학교장의 학교경영 전문성과 교사의 수업 전문성의 차이로 학교장의 교육경력 자체는 수업 전문성을 보증할 뿐, 학교경영이라는 교장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질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개선의 근거 내지는 필요성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교육현장이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승진하고자 노력하는 교사일수록 성취동기가 강화되어 오히려 학생지도에 더 열성적이다.
더구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교직풍토 속에서도 연구논문의 작성과정에서 다양한 서적을 탐독할 수 있어서 전문성이 향상된다. 뿐만 아니라 승진을 위해서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교사의 사무능력이 향상되고 변화하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교사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교장의 직무수행에 대한 역할적 측면 또한 관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학교는 일반 상품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고 성인을 교육하는 곳도 아니며 발달 단계에 있는 청소년을 교육하는 곳이다. 따라서 교육현장에서의 많은 교육적인 경험과 직접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쌓은 지식과 지혜는 책상머리나 귀동냥으로 체계화시킨 이론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성년의 교육 관리자인 학교장은 원칙적으로 현장 체험의 교육자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교장임용을 다양화시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마치 전투와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군대의 지휘관 임용 제도를 개선해서 정훈장교나 경리장교를 전투부대 지휘관으로 배치하고 경력 높은 군무원을 일선 사단장이나 군단장으로 임용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교육은 교육인 것이다. 학교에서는 교육전문가인 현장 교사 출신이 교육 관리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교장공모 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으므로 교장공모제는 최소한의 폭으로 시행함이 마땅하다. 즉, 교육부 내지는 지역 교육청 단위의 특수 사업이나 목적에 부합되게 운영되어야 한다.
예컨대 경마축산고등학교나 마사고등학교에 마사기능인을 양성하기 위해 마사회 추천인사가 교장이 된다든지 외국어고등학교에 외국어 향상능력을 향상시키기고 게임과학고등학교 등과 같은 특수 프로그램을 적용시켜 보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교장으로 임용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교육은 어디까지나 바람직한 인간을 육성하는 곳이기 때문에 기능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성교육임을 잊지 않는 원칙이 필요하다.
아직 부족한 '학운위'의 책무성 개정안은 또한 공모교장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학교운영위가 하도록 되어있어서, 초빙제보다도 더 많은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운영위의 대표성, 위원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책무성은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실정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모교장 선발의 최종 판단을 학교운영위에 맡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즉, 특정 세력이 학교운영위를 지배할 경우에는 후보자의 역량과 관계없이 정략적인 지지와 최종 선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위학교에서 현행의 교장임용제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공모교장제를 선택할 것인지를 학부모 전체의 의견수렴으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과연 학부모들에게 자율적 선택에 따른 책무성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자율은 책임을 전제로 하고, 책임지지 않는 자율은 방종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의 예를 볼 때, 학교가 공모교장을 선택하는 경우는 단위학교의 운영이 전적으로 학교구성원에 의해서 자립적으로 운영되고, 그 결과에 대해 구성원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형태의 학교에 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당국의 관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스스로 운영하고 책임지는 자립형 사립학교나 대안학교 정도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공립학교는 임의 조직인 학부모조직뿐만 아니라, 공식기구인 학교운영위 마저도 그런 정도의 책무성을 지니고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장자격증 미소지자가 교장이 될 수 없다는 원칙에서 보면 교장자격기준에 '학식과 덕망이 높은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라는 말이 참 애매하다. 이는 교육에 관심 있는 자는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교육에 관심 있는 자와 교육 전문가와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자가 대학총장은 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교장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초등교장은 초등학교 실정을 잘 알고 초등교육에 알맞은 교육 마인드를 갖고 있는 초등교사 출신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장선출방식을 '다양화 한다'는 미명하에 무자격자를 학교장으로 확대 임용함은 교육을 그르치는 지름길이자 커다란 잘못을 하는 방안인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선출보직제 보직제는 현재의 교원 및 국민 정서와 제반 여건에서 현실 적용 가능성이 낮으며 또한 특정 교직단체에서 주장하는 교장선출보직제의 경우, 교육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을 교육하고 교직원을 이끄는 지도자가 아닌 상징적인 사무담당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어 학교의 위계질서와 책임경영이 위협 받을 수 있다. 또한 실질적으로 단위학교 학교운영위에서 교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므로 학교운영위의 상호견제기능이 무너져 학교장이 학교운영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하여 단위학교의 운영이 학교운영위에 종속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공립학교 교원의 경우 순환근무제 적용으로 교원이 정기 인사로 이동하면 원천적으로 교장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와 출마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교직단체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교장이 정해진 기간 동안에 선출되지 못하고 학교운영상의 공백 기간이 발생할 경우 국민들에게 학교교육에 대한 불안을 안겨 줄 공산이 크고, 이로 인하여 학생의 학습권 침해가 우려된다. 만약 선출보직제가 도입되면 도서·벽지 및 농어촌지역 등 근무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교원들이 전보를 기피하고 우수한 후보자들이 교육여건이 좋은 곳으로 몰리게 되어 학교 간, 지역 간 교육격차도 심화될 것이다.
아울러 교장선출보직제는 학교 내 보직업무 및 힘들고 궂은 일에 대한 기피풍조를 확산시켜 학교교육 업무의 정상적 운영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어 학교현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학교는 하나의 독립된 기관이며 학교장은 학교라는 기관을 총책임지는 기관장이다. 정상적인 조직의 경우라면 당해 기관장을 보직제로 운용하는 기관은 없으며, 대학의 경우 총·학장 직선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학연, 지연, 줄서기 등의 문제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잘못된 진단이 엉뚱한 처방으로 일부 교원단체와 국회의원 측에서 주장하는 교장선출보직제 개정안 발의 목적의 한 항목을 보면 '교장의 임무와 기준을 재설정하여, 교장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교무를 총괄하고 학교수업을 담당하도록 함'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는 마치 지금 학교현장의 관리자들이 학교경영을 잘못하고 비민주적이기 때문에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교육문제를 잘못 진단한 대표적인 사례다. 잘못된 진단에는 엉뚱한 처방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교육현장은 교장의 지휘권이 행사될 수 없을 정도로 민주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학교 기능직 사무 보조원 하나 마음대로 인사할 수 없고 환경개선 교사를 소신껏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물론 교장도 원하면 수업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교육경력이 있는 교장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그들의 교육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적응교육이나 창조적 재량활동의 한 부분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도 학교경영과 현장장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로 한정해야 된다. 선진국의 교육제도와 교장임용 제도를 차용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모든 교육체제가 우리의 실정에 맞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식 열린교육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일본은 칼의 문화, 미국은 총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공공질서가 확립되었다고 한다.
즉,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자는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서 칼과 총에 의해서 제거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조심해서 오늘날의 선진강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일정부분 자율성과 책임성이 담보된 정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열린교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교장임용 제도도 마찬가지다. 아직 한국교육현장에 한국사회의 전통이자 모순인 학연, 혈연, 지연사회가 계속되는 한 선출보직제는 시기상조다. 예컨대 훌륭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교대 출신 교사가 △△교대 출신이 다수인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임용될 수 있겠는가? 또 유능한 □□사대 출신 교사가 ◇◇사대 출신이 다수인 중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임용될 수 있겠는가?
책임에 따르는 권한 부여해야 교육문제가 교장의 역할 변화에 따라서 적임자를 찾는 교장임용방식의 모색이 안 되어서인가? 그리고 교장임용방식의 준거는 교장의 역할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단위학교의 자율경영체제가 안되어서 문제인가? 단위학교의 자율성 요소가 없어서 문제인가? 그러면 다양한 임용방식을 채택한 선진국은 교장임용 제도를 개선해서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교육목적에 맞게 길러져 바람직한 인간성을 함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다. 교장임용 제도의 개선이 교육행정체계 개선의 본질이 아니다. 차라리 교육재정의 확충과 교사의 법정정원의 확보, 상급교육기관의 교육지원체제(교육서비스체제)로의 변화 등이 선결과제이다.
교장자격증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교육경력자가 교장이 된다는 전제에서, 교장의 지위에 정무직 개념을 도입해서 운영하고 연봉과 수당을 별도로 규정하여 지급하고 교장 퇴직 후에는 교장 되기 이전의 마지막 호봉과 교장연봉을 합산 조정하여 퇴직금이나 연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방식도 필요할 것 같다. 이는 지금의 교장 임기제의 취지와도 부합되는 것이다. 단위 학교 보직교사가 교장이 되는 길을 열어 주는 것 역시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최근의 풍조는 보직교사를 기피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따라서 장학사 경력 3년이면 교감 연수기회가 부여되고 차후에 장학관이 되어 교장이 되듯이 보직교사 5년이면 일정한 평가를 거쳐 교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확보되어야 한다.
교장의 정무직 개념이 도입되어 보수와 수당이 지자체장에 준하는 수준으로 확보되고 교육운영의 실질적 권한(교사와 행정실 직원의 초빙)과 연계되어 능력 있는 자는 계속 교장으로 임용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연한이 차면 퇴직의 문을 열어주어 신규 교장에게 순환의 길을 터줄 필요도 있다. 교육에는 백 가지의 이론이 있고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원정책을 수립할 때는 교육실무 경험이 풍부한 전문직과 일선 교장을 포함한 다수의 교원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현재 교원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교육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지만 전문성 결여로 믿을만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정책을 개발하여 시행하는 제도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시행하는 사람의 선발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교장을 그저 승진이나 준비하여 된 사람들로만 여기지 말고 교육기관의 장으로서 책임에 합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전문성 신장을 위해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길 바란다. 또한 교원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있어서 개혁과 혁신을 앞세워 급진적이고 가시적으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불가에서 말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보다 돈오점수(頓悟漸修)적으로 여러 채널의 의견수렴과 검증과정을 거쳐서 교육의 진정한 백년대계가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