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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의 숨결이 깃든 함안의 자연늪

덕유산과 지리산 계곡의 돌 틈을 지나 모여든 깨끗한 물이 더 넓은 진주벌을 적시고 낙동강에 몸을 섞기 전, 제 고향 떠나기 싫어 잠시 '물돌이'를 일으키면서 꿈틀대며 만든 늪이 함안의 자연늪입니다. 함안의 늪에는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노랑꽃창포와 자운영이 아름답게 피어있습니다. 사람들에 의해 매립되어 규모가 작아지고 있지만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멋진 풍경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여름철 대평늪의 모습*

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아득한 향수 간직한 함안의 늪
함안군은 남쪽에 여항산, 서북산, 봉화산 및 장노산과 같은 비교적 높은 산이 위치하고 북쪽에 남강이 있어 하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형태를 보이면서 남강변에 넓은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홍수 시 이런 지형과 낙동강 수위의 증가로 인해 함안천의 물이 남강으로 잘 유입되지 못한다. 그래서 남강의 아래쪽인 대산면, 법수면, 군북면 일원에 대평늪을 비롯한 8개의 작은 자연늪이 있다. 함안의 자연늪은 홍수 때 남강의 강물이 범람하거나 함안천의 물이 남강에 잘 흘러 나가지 못하여 만들어진 배후습지성호수이다.

함안의 자연늪은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하천 둑을 만들어 넓은 평야를 개간하였다. 그러다보니 군 전체에 하천의 범람을 위해 막은 하천 둑이 즐비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하천 둑이 가장 긴 곳이 함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여름철에 누렁이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나 하천 둑에 매달린 무지개와 뭉게구름은 보는 사람들에게 아득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부에는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봄철 함안늪의 수로에는 노랑꽃창포가, 논에는 자운영이 무리지어 피어 길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유혹한다.

늪 주변의 수로나 농수로 등 물이 있는 곳이면 자라고 있는 노랑꽃창포는 길쭉한 꽃대에 맺힌 샛노란 손수건이자 가족 품으로 간절히 돌아가기를 원하는 아버지나 연인을 기다리는 가족의 사랑을 나타내는 노란 손수건처럼 보인다. 노랑꽃창포는 바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약동의 시간을 약속하는 샛노란 손수건이 아닐까? 노랑꽃창포는 연못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유럽에서 들어 왔는데, 요즈음에는 수질 정화용으로 도심지의 하수도에 많이 심고 있다. 자운영은 콩과에 속하고 중국에서 목초용으로 들어온 잡초로 우리나라 남부에서 재배하고 있다. 꽃은 대부분은 홍자색을 띠나 간혹 흰색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남부 지방의 논에서 봄을 한껏 뽐내는 꽃이 자운영이다.

자연생태의 寶庫 매립 막아야
함안에는 자연늪이 많았는데,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이 농경지로 개발되었고, 일부의 늪들이 작은 규모로 농경지 사이에 고립되어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대평늪, 질날벌, 유전늪, 수문벌, 옥수늪, 시등늪, 월포지 등이다. 공장을 만들기 위해 이들 중 유전늪은 대부분이, 수문벌과 옥수늪은 완전 매립되었다. 가을이면 통발의 노란 꽃이 장관을 이루고 기러기 등의 철새들이 힘차게 솟아오르던 옥수늪은 지금 황량한 황무지로 변해 있다. 함안에서 자연늪을 관찰하기에 좋은 곳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대평늪과 질날벌이다.

대평늪은 함안군 법수면 대송리 883-1번지에 속하고 1984년 문화재 관리국에 의해 '함안 법수면의 늪지식물'로 천연기념물 제34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 번지에 해당하는 대평늪에 나타나는 늪지식물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지, 함안에 분포하는 여러 자연늪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늪지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유일한 곳이어서 늪지식물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곳임은 물론 아이들의 자연과학 학습에 유익한 곳이다. 특히 대평늪 주변에는 광주 안씨가 오래 전에 정착하면서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후손의 번창을 위해 늪지대를 지금까지 보호하고 있다.

대평늪은 물이 드러나는 부분의 넓이가 5.5ha, 습지의 넓이가 4.0ha로 동서로 길게 위치하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 남강으로 들어간다. 평균수심은 1.2m 정도이고, 농업용수로 이용되며, 이곳에 살고 있는 수생 및 습지에 사는 식물은 55종류가 보고되어 있다. 대평늪 주변에는 늪 전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있기 때문에, 늪 전체를 걸어서 둘러보는데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겨울철 농한기의 고기잡이는 이곳의 좋은 전통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행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하여도 늪에 얼음이 얼기 전에 늪 가장자리에 입구가 길쭉한 큰 웅덩이를 몇 개씩 팠다고 한다. 늪의 수온이 낮아지고 얼음이 얼면 잉어와 붕어들은 체온 유지를 위해 웅덩이로 모여 들었다고 한다. 얼음이 두껍게 얼면 물고기의 출입을 확인한 다음 웅덩이의 수로 부분에 나무쐐기를 박아 잉어의 도망을 막고 고기를 잡아 마을 잔치를 하였다고 한다.

사라짐을 슬퍼하는 울음 소리
질날벌은 법수면 면소재지 바로 옆에 위치하는데, 법수면 우거리와 대송리에 분포하며, 넓이는 약 18.1ha이다. 남북으로 약 1㎞ 정도의 길이로서 도로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연중 수심은 1~2m이고 겨울 철새도래지로 청둥오리, 기러기 따위가 모여들고 있다. 원래 이 늪은 대평늪보다 약 3배 정도 큰 늪지였지만, 지금은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늪의 약 1/5이 매립되어 없어져 버렸다. 매립된 늪의 상류가 흙과 돌로 덮여 있어 항상 머리가 아프다고 외치는 질날벌이지만, 물이 드러나는 부분에는 가시연꽃과 마름이 자라고, 늪 주변에는 줄이 잘 자라고 있다. 또 적은 넓이지만 도로 옆 습지에는 선버들과 버드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관찰하기에 좋은 지역은 매립된 지역과 늪이 끝나 수로가 이어지는 내송마을 앞의 습지이다. 줄이 가장 크게 자라는 6월에서 7월초에 이곳에 가면 늪이 ‘킁킁’하며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늪이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은 늪지대에 쌓인 영양분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메탄가스가 빠져 나오는 소리이다. 그러나 이런 소리를 듣기 위해 늪에 들어가면 늪에 온 몸이 빠질 수도 있는데, 늪에 빠지면 계속 몸이 빠져 들어가는 성질이 있어 위험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는데, 함안 지역의 자연늪 중에서 이름만 남기고 사라져가는 늪이 있다. 남해안고속도로 장지IC 바로 옆에 있는 유전늪이다.

1982년 지도에 나타난 유전늪의 크기는 길이 750m, 너비 500m로서 그 넓이가 37.5ha에 달하였으나, 1983년부터 매립한 결과 현재는 대부분 지역이 공장과 대지로 이용되고 있다. 어떤 생물학자에 의해 이곳에서 처음 발견된 마름이 있는데, 이곳의 지명을 따서 유전마름이 되었다. 사실 유전마름은 경남의 어느 지역에서나 나타나는 식물이다. 이 식물의 잎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름모꼴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모양에서 마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마름은 물밤이라고 부르는 열매의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데, 우리나라에 자라는 마름의 종류에는 마름, 네마름, 포평마름, 유전마름, 애기마름 등이 있다. 하얀 꽃대를 달고 있는 마름의 잎은 모두가 비슷하지만, 가을이 되면 달리는 열매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우포늪과 주남저수지가 크고 널리 알려졌지만, 우포나 주남이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다. 지금은 공장 옆에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유전늪이지만 그 적은 넓이에도 만족하며 분홍색의 연꽃을 피우고, 많은 버들류가 자라고 있다. 유전늪을 비롯한 함안의 여러 자연늪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유전마름은 영구히 우리의 늪에 있을 것이다.

늪과 함께 문화 지키는 가야인
기원전후에 세워져 오백년의 역사를 가진 아라가야의 중심지는 오늘날 함안군 일원으로 그들의 흔적은 1000여 기로 이루어진 가야읍 도항, 말산리 고분군에 남아 있다. 말산은 말이산, 마리산, 머리산을 뜻하는데, 아라가야의 역대 왕들이 묻힌 우두머리의 산을 의미한다. 지금의 가야읍 대부분은 지대가 낮아 그 당시에는 갈대밭이 무성한 자연늪으로 추측되고, 철괴를 실은 배들이 낙랑, 대방, 왜 등으로 나아가는 통로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뱃길의 주요 교통로인 남강과 그 지류를 지켜보는 자리에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1500년 전의 영광을 가슴 깊이 새기기 위해 해마다 아라축제를 열고 있다.

산인면 모곡리에 가면 고려동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 성균관 진사 이오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고, 자신의 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 것을 유언하였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은 절개의 고향으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보다 자녀의 교육에 전념하여 학문과 절의의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 고려전답,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있다. 인공연못과 정자로 이루어진 무진정은 함안면 괴산리에 위치하고, 조선시대 춘추관의 편수관을 지낸 무진 조삼 선생을 기리는 곳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함안천에 의해 물돌이지던 이곳에 만들어진 늪을 개량하여 만든 인공연못으로 자라풀, 노랑어리연꽃, 왜갓냉이가 자라고, 연못 주변에는 수령이 오래된 왕버들, 느티나무, 소나무가 심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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