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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스승'과 오늘의 '교사'

전통적인 관점에서 교사는 스승으로서 교육적 권위를 지키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사표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에 의한 사회변화를 겪으면서 교사는 사회에서 다른 범속직과 동등한 전문직업인으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교직이 스승으로서의 교사와 전문직으로서의 교사간의 괴리에서 빚어지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로서의 본질은 변할 수 없다.

정영수 |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역사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어제의 스승에서 오늘의 교사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사회적 위상을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도 오늘날 교사의 실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 그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교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은 교사의 실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교육적 권위와 책임 다하는 스승
이러한 점에서 '교사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교사, 그는 누구인가?'라는 교사의 실체를 묻는 질문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교사, 그는 누구인가?'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역사적으로 교사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올바르고 진실하며 존엄한 길 그리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길을 사도(師道)라 부른다. 〈예기(禮記)〉에서는 '사도란 스승의 길이며 스승이 닦고 행하여야 할 진리의 도(道)'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길을 걷는 사람을 일컬어 '스승'이라 하였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스승의 길을 밝힌 것이 사도헌장이다. 이러한 스승의 길은 인간을 진실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가진 인간을 형성하는 도로서, 이 길을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경우 이러한 길을 걷는 스승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갖추고 있었는가? 첫째, 만인에 대한 사표(師表)로서 삶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스승이라 하면 '솔선수범' 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분으로 존경의 대상이었고 드높은 교육목표 아래, 배워야 할 지식과 살아가는 도리로서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을 당연시하였다. 예컨대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입지 편에서 '성인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강조하고, '사람이 살아갈 때에 학문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막히고 소견이 어두워져서 올바른 삶을 살 수 없다. 무릇 학문을 하고자 하는 자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하여 꾸준히 쉬지 않고 정진할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둘째, 항상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는 자세를 실천함으로써 교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예기〉에서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즉 남을 가르치는 것과 아울러 항상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는 진리탐구의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다. 셋째,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헌신적인 교사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교회불권(敎誨不倦)', 즉 가르치는 일을 싫어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정성을 다하여 후진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 즉 '배우는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넷째, 경사(經師)로서 뿐 아니라, 인사(人師)로서의 모범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경사는 만나기 쉬워도 인사는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학생들의 사표가 될 스승상으로서 경사로서 뿐만 아니라, 인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노력해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전통사회에서 스승으로서의 교사는 교육적 권위를 지키고, 교육적 책임을 다하는 귀감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가벼이 대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 같은 교사를 사표(師表)라 하였고, 심지어 '군사부일체(君士父一體)'라는 이름으로 선생을 존경하였으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고 걸어 갈 때에도 3척의 거리를 두고 행보를 하였다. 근대사회에서는 경찰이나 순경이 교사를 함부로 다루지 못한 시절도 있었으며, 군수와도 맞먹는 대접을 받던 적도 있었다. 실로 스승으로서의 교사의 위상은 오늘날처럼 개혁과 비판의 대상이 아닌, 존경 그 자체이었음을 볼 수 있다.

역사의 세속화 속에 훼손된 본질
스승으로서의 교사는 역사의 세속화를 걷는 과정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여기에서 세속화란 역사의 변화를 수식하는 하나의 용어로서 과학과 기술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의 세속화는 동양에서는 유교적 가치의 몰락, 서구에서는 종교적 제도의 굴레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역사의 세속화는 교직세계에 새로운 교직문화로서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지양식을 갖게 하였고, 직업세계에서의 극적인 변화, 즉 '전문화'의 바람을 불게 하였다. 이러한 전문화의 영향으로 교사는 특수한 전문적 기능에 자신을 적응시키도록 강요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제 인간의 문제 내지 인간성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전문적 기능만이 사회적으로 객관적 인정을 받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교직의 경우 오랜 동안 전문직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교사가 지식사회의 산파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역사의 세속화 과정에서 우리는 얻은 것과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실상 산업혁명을 거쳐 지식정보 혁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회변화 속에서 기술정보 지식의 유용성의 가치를 강조함에 따라 교육 본질적 가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거나 외면되기 시작하였고, 교직의 직업평가 기준이 크게 변화되었다. 이제 교직이 다른 범속직으로서 전문직업과 동등한 취급을 받게 되었으며, 지난날의 스승상과 오늘의 교사상 간에는 현격한 괴리가 파생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그토록 소중히 여겨져 왔던 교육적 권위와 교사에 대한 존중의 사회적 보호막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교직사회가 촌지수수 엄금과 체벌 금지의 차원에서 평가되고, 학교는 스승의 날 조차 임시공휴일화해야 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는 현실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사는 치열한 입시경쟁 하에서 이기주의와 경쟁주의를 부추기는 학교교육의 도구화가 되어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교사는 무력감을 갖게 되고, 인간성 교육으로부터의 소외를 맛보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전문가의 행태가 비전문가의 가벼운 비판과 외형적인 평가에 의해 간섭을 받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고,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과소평가되고 보다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변화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교직관, 교사관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에, 과거 스승으로서의 교사의 가치에 대한 존엄성과 교사가 하는 일의 소중함, 그리고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다.

가르침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오늘의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 일하는 전문직업인을 일컫는 말이다. 교사는 교육행위를 하는 개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직업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에서 '전문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같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하여 먼저 교사는 가르친다는 의미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친다는 의미가 함축하는 내용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가르친다는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치는 일의 가능성과 한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가르침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지식과 교과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학습의 본질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라고 할 때에도 '무엇이 바람직한 수준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물음은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사는 이와 같은 복잡한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해 고민해 온 사람이다. 교사는 국어, 수학, 과학 등 인지적 교과목을 가르침으로써 학습자로 하여금 우주 삼라만상 속에 존재하는 질서의 세계와 진선미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게 하는 사람이다.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을 보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한 방식에 불과하다. 겉으로 드러난 자연현상은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으며, 우리가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 가운데 우리가 모르고 이해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교사는 가르침을 통해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며, 행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아 행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지로부터 벗어나서 앎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지적 교과목을 통해서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세상에 존재하는 사회적 사실과 현상을 인지적 교과목에 나타난 지식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교육을 받음으로써 학습자는 인지적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교사란 학습자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여 보지 못하던 것을 제대로 보게 하며, 귀를 열어서 듣지 못하던 것을 올바로 듣게 하고, 절름발이와도 같은 자신의 무릎을 스스로 일으켜 세워 힘차게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 간 존재하는 격차
교직은 스승으로서의 교사(과거)와 전문직으로서의 교사(현재) 간의 괴리에서 빚어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기는 사회적, 역사적 상황변인에 따른 것이다. 그 상황변인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교직 전문성은 신장될 수도 있고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교사는 일반적으로 특수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장기간 교육훈련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하며, 자율성을 갖고, 수업 전문성을 발휘하고, 교원단체 결성과 교원윤리강령 제정을 통해 스스로 권익과 책임을 통제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교직이 전문직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사는 전문적 활동, 즉 가르치는 일을 준비하고 좋은 수업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대에 적합한 전문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 재정, 기술지원 인력의 한계가 적지 않고, 좋은 수업을 위한 교사의 자율성이 충분히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커다란 격차는 오늘의 교직사회가 안고 헤쳐 나가야 할 숙제이다. 이제 전 사회구성원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교직 전문성과 스승으로서의 교사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을 목표로 설정하고 현대적인 교직전문성을 확립해 나갈 때, 교육의 본질 회복을 기대할 수 있고, 기강이 살아날 것이며 나아가서 교육적 권위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을 목표로 하는 교직전문성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교사의 권능부여(empowerment)가 강조돼야 한다. 교사의 권능부여란 '교사의 전문적 지위를 고양시키고자 하는 활동 내지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는 직무와 무관한 일 속에 파묻히게 될 경우, 전문적 활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며, 나아가서 교사로서 보람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실상 교사가 전문가로서 교육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신뢰 받지 못한다면, 교사의 자율적인 전문적 능력 발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교사가 스스로 전문가로서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

변화하는 현실에도 기본은 지켜야
스승에서 교사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위상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왔으며, 교사 스스로도 역할에 대한 지각이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교사의 자질 자격을 규정하는 제도의 틀이 새롭게 구성되어 왔다. 새로운 사회변화는 교사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역사의 세속화가 진전됨에 따라 교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교사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부과되어 왔다. 이를테면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은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상으로 탈바꿈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화되어 왔다고 해도 교사의 본질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사관이 변천되었고 교사를 인식하는 다양한 패러다임이 등장했지만 교사의 실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마치 철따라 옷이 바뀌지만 사람의 실체가 변함없듯이 말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의 세속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변천 속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가치가 부상하는 가운데에서도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교직전문화 과정에서 간과되어 온 차원에 대해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교육의 본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입시 위주의 공리주의적 공교육과정에 몰두한 나머지 교사의 길이 스승으로서의 길에서 얼마나 멀어져 왔는지를 심각히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교사 양성제도가 스승으로서의 교사를 양성하는데 얼마나 결함이 많은 지를 제대로 깨닫고, 교육현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한국교육의 전통에서 볼 수 있는 스승으로서의 자세에 비추어 볼 때, 학교에서의 주지교육이 인간교육을 실천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제자들이 참된 정신과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참된 지식과 진리를 전파하는 참된 스승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인간 교육의 꿈을 안고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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