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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구의 정서와 멋은 더하는 장석

한국적인 美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소박함, 자연과의 조화, 은근함, 단아함, 여백 등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한국의 미는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그만큼 쉽게 지나치게 됩니다. 본지에서는 새해부터 우리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한국의 美'를 시작합니다. 경희대 교육대학원 심영옥 교수가 집필합니다. 우리만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보세요. | 편집부


심영옥 | 경희대 겸임교수·미술사


경남 진주의 촉석루 입구에는 '실크박물관(1층)'과 '향토박물관(2층)'으로 구성된 진주향토민속관이 있다. 이 향토민속관은 '태정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태정은 김창문의 호다. 김창문은 원래 진주에서 양화점을 경영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6.25 한국전쟁 후 어느 날 자신의 가게 앞에서 엿을 팔던 엿장수 지게 위에 내팽개쳐져 있던 경첩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함부로 버려진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그 후 40여 년 동안 서양가구의 보급으로 하찮게 버려진 수많은 장석과 가구, 생활민속품을 수집했고, 수집품은 향토박물관의 토대가 되었다. 평범한 시민의 정성어린 집념이 자칫 사라질 수 있었던 우리의 아름다움을 되살린 것이다.

학문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제쳐놓고서라도 의기 논개가 몸을 던져 나라를 도운 것처럼 태정도 자신의 사업을 멀리하며 한국미의 뿌리를 만들어 놓은 것은 어쩌면 우리 민족에게 흐르는 예술혼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한 사람의 집념으로 수집된 장석은 우리 전통 가구의 아름다움은 물론 장석들의 다양한 문양을 통하여 옛 선조들의 미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더욱 의미가 크다. 장석(裝錫)이란 자연미와 인공미를 최대한 조화시킨 소박한 전통 목가구에 우리 민족의 생활정서와 멋을 더하여 장식용 치레로 사용되어진 모든 금속으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멋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한국의 아름다움이다.

품격 있는 조화 이끄는 생활의 지혜
장석의 역사는 정확히 언제부터 제작되어 사용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고대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고 짐작되고 있다. 장석이 서민들에게까지 보급된 시기는 서민들이 목가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대략 17~18세기로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생활에 필수적인 기능 위주로 대부분 검소하고 단순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문양도 다양해지고 모양은 복잡해지면서 아름다움도 추구하였다. 그러나 상징적인 내용을 중시하여 문양들은 다소 도식적인 경향을 보인다.

장석은 건축물의 기둥이나 목가구 등이 뒤틀리거나 상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이음새를 보완하는 기능을 하거나, 문짝 등의 여닫이 기능과 아름답게 치장하는 꾸밈새로도 쓰인다. 장석의 재료로는 거멍쇠, 청동, 황동, 백동 등이 있다. 이 중 장석의 재료로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은 거멍쇠로 이는 색깔이 검기 때문에 붙여진 순우리말로 흔히 무쇠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 전통 목가구는 대체로 '결구식 목공기법'을 사용하여 외형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함께 건실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는 판과 기둥의 다양한 짜임과 이음을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제작해 더욱 빛을 발한다.

장인들은 이러한 목가구의 짜임과 이음의 보완 말고도 더욱 완벽한 기능의 강화와 아름다움을 위하여 금속제 장석을 사용하였다. 목공예품에서 목재의 연약한 재질을 보강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드는 장식적 효과를 얻기 위해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부착한 것이다. 장석을 만드는 장인을 예전에는 '두석장(豆錫匠)'이라 불렀는데, 장인들은 목가구의 기능적인 면과 장식적인 면을 겸비할 수 있도록 슬기와 지혜를 녹여 장석을 만들어 붙였다. 금속장석 중 경첩이나 앞바탕, 고리, 들쇠 등은 필수적인 부분에만 사용되었고, 감잡이, 귀잡이 장석 등은 구조의 결함을 보강하기 위해 부착하였다.

전통 목가구는 쓰임새에 따라 목재의 색감이나 무늬결이 각기 다른데, 꾸밈 장석도 목가구와 어울리는 모양을 만들어 붙여 전체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감과 문양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선천적으로 배어 있는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한국적 미감을 지닌 장인들에 의해 고안된 금속제 장석들이 가구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모양과 문양이 적절히 표현되어 전체 의장을 더욱 품격 있는 조화로 이끌었던 것이다.

실용성과 조형성 더해진 미의식
일상생활에 유용하면서 미적인 감각으로 표현된 기능적인 장석에는 앞바탕, 경첩, 들쇠, 자물쇠 등이 있고, 면과 귀를 서로 짜 맞추기 위해 만든 감잡이 장석과 귀잡이 장석이 있다. 이러한 장석은 실용적인 면을 우선으로 하였지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염원과 함께 우리 선조의 정서와 생활상을 담은 한국적 미의식을 담고 있다. 실용적이면서 조형성이 돋보이는 장석의 기능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앞바탕은 가구의 자물통을 채우는 부분에 사용되어진 얇고 판판한 쇠붙이를 말한다. 배목이나 자물쇠 등을 가구에 견고하게 붙일 수 있도록 하고 자물통으로부터 가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종류로는 자물쇠용과 들쇠용, 배목과 고리용 등이 있으며, 가구의 구조와 기능에 관계없는 장식용 앞바탕도 있다. 형태는 기하학적인 모양의 단순한 것에서 각종 동식물 형태가 정교하게 투각된 것까지 다양하며 가구 앞면과 중앙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가구 장식의 인상을 많이 좌우한다. 초기에는 기능만을 생각하여 무늬 없이 단순하게 만든 데 비해, 후기로 갈수록 많은 무늬를 투각하거나 새긴 것이 나타났다. 형태에 따라 둥근형, 약과형, 약과형투각, 팔각형투각, 나비형, 실패형이 있다.

경첩은 문을 열고 닫기 위해 만든 장석이다. 대칭이 되는 두 개의 쇠조각(날개판)을 맞물리어 기둥쇠에 말아 고정시키고, 기둥쇠가 회전함에 따라 문을 여닫게 하는 것이 경첩의 원리이다. 경첩은 좌우, 상하로 열리는 것과 기둥쇠만 보이는 숨은 경첩, 날개판이 보이는 노출형 경첩으로 크게 나누어지며, 대칭이 되는 두 개의 쇠조각(날개판)이 겹쳐지며 열린다고 해서 '겹첩'이라고도 불린다. 장이나 농, 문갑, 반닫이 등 문이 달린 가구의 몸체와 문판을 연결하여 문을 여닫을 수 있게 한다. 건축물의 문에도 같은 구실을 한다. 조선시대 가구에서는 노출 경첩이 대부분인 반면, 숨은 경첩은 조선말기 이후에 제작된 의걸이장이나 문갑 등에서 간혹 눈에 띄는 정도이다. 생긴 모양에 따라 둥근형, 약과형, 화형, 실패형, 나비형, 저고리형, 인동초형, 허리띠형, 제비초리형, 문자형 등이 있다.

들쇠는 '들어 올리는 쇠'라는 순수한 우리말로, 가구전체를 들어 올리거나 혹은 서랍이나 문짝을 열 때 잡아당길 수 있도록 부착된 손잡이를 말한다. 가구를 들어올리기 위한 들쇠는 양쪽 옆널에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박천반닫이 등에서는 앞판과 뒷널에 쓰인 예도 있다. 열거나 드는 데 힘이 적게 드는 서랍이나 문에는 배목 한 개의 들쇠를 쓰고, 가구 전체를 들어 올리는 데는 배목 두 개의 들쇠를 사용했다. 가구 자체를 들어올리기 위한 뜻에서 들쇠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나, 점차로 장식성을 띤 손잡이와 작은 서랍을 여는 손잡이, 고리 등을 총칭하는 의미로 발전하였다. 들쇠는 그 기능상 유동성이 있어야 하므로 일반 못으로는 가구에 부착시킬 수 없기 때문에 머리 부분에 공간이 있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배목을 사용하였다. 들쇠는 크게 배목 1개인 고리형태의 들쇠와 배목 2개 들쇠로 나누어진다. 형태에 따라 활형, 새형, 물고기형, 약과형, ㄷ자형, 꽃무늬형 등이 있다.

감잡이는 ‘감다’와 ‘감아준다’의 합성어로 기둥과 기둥, 판과 판이 만나는 접합부분이나 모서리 부분에 부착되어 나무의 결속력을 강화시켜 주고, 외부와 접촉할 때 가구자체의 모서리를 보호해 주는 역할도 한다. 기둥과 판널들을 서로 잇대러 짠 부분이나 모서리를 구조적으로 보강해주는 장석이다. 또는 가구의 뒤틀릴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해준다. 형태에 따라 둥근감잡이, 상두감잡이, 약과형감잡이, 기하형감잡이, 당포감잡이, 둥근고깔귀잡이, 투각고깔귀잡이 등이 있다.

귀잡이 또는 귀장식은 그 역할이 감잡이와 동일하나 감잡이가 입체적으로 양면으로 잡아주는데 비하여 귀장식은 한 면(귀부분)만을 잡아준다. 세면이 만나는 꼭지점에는 귀싸개(통귀쌈)을 사용하였다. 세 면이 만나는 귀 부분에 사용되어 외부와의 접촉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하여 가구를 보호해준다. 형태에 따라 둥근형귀잡이, 약과형귀잡이, 새발귀잡이, 연밥귀잡이 등이 있다.

광두정은 머리가 넓은 못으로 기능은 가구를 제작한 후에 생기는 여유 공간을 잘 구성하는 것으로 허전한 공간에 적절하게 배치하여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여 가구의 미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데 있다. 또 가구 제작 당시 실수로 생긴 표면의 흠집을 감추어주고, 가구 재료로 쓰일 나무가 꼭 필요한 부분에 흠이나 벌레가 파먹을 경우, 그 곳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 대체로 반구형의 작은 크기인 광두정은 장석 가운데도 도드라진 입체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적절한 공간에 박힌 광두정은 가구에 중량감과 함께 견고한 느낌을 주는 효과도 아울러 지닌다. 그리고 미적으로 허전한 공간을 일정한 방향과 크기로 연속성 있게 좌우, 상하로 대칭 시켜 균형미 있는 장식의 조화를 이루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가구에 부착되는 장식 중 입체감을 주는 유일한 금속장식이다. 다른 장석에 비해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물쇠는 여닫게 되는 기물에 채워서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하도록 잠그는 장석의 일종으로 자물통, 잠금쇠, 열쇠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열쇠는 '자물쇠를 여는 쇠'로 개금(開金) 또는 건(鍵)이라고도 한다. 유물자료를 살펴보면 이미 삼국시대에 ㄷ자형 자물쇠가 사용되었고, 가구의 기능과 구조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발전되어 갔다. 자물쇠의 종류로는 대롱자물쇠, 함박자물쇠, 물상형자물쇠, 은혈자물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민간신앙적 사상 배경으로 한 문양
장석은 금속제품은 물론 목제품, 죽제품, 지승제품, 석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였다. 그 중 특히 목공품의 구조 보강에 필요 불가결한 본래의 목적 외에 외형에서 느껴지는 장식성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 장식용의 역할을 하는 장석을 꾸밈장석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구의 빈 공간 등에 붙여서 가구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문양은 크게 동·식물 모양의 십장생이나 문자를 고안하였다. 문자는 주로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백복자래(百福自來), 오군만년(吾君萬年)의 길상(吉祥)적 의미를 지닌 글자를 사용하여 가내평안을 염원하였다. 그리고 동·식물 문양으로는 학, 사슴, 거북이, 모란 등 무병장수의 의미를 지닌 십장생을 많이 사용하였다. 십장생 이외에도 다산의 의미가 있는 물고기문양, 태극문양, 당초문양, 남대문문양 등도 사용되었다.

물고기를 기능적인 자물쇠 장석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항상 눈을 뜨고 있다는 습성을 비유하여 집이나 복을 지켜달라는 의미이며,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알을 많이 낳는데 비유하여 다산을 상징하였다. 특히 잉어는 출세, 성공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잉어와 연관된 등용문(登龍門)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장식용 장석에서 사용된 문양들은 대체로 조선후기 민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어진 것이다. 그림이든 생활용품이든 간에 이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서 가족의 평안을 염원하는 민간신앙적인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미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수 백 번의 망치질로 펴고 다듬어서 멋진 장식물을 만들던 도석장인의 인내심도 대단한 것이며,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미적으로 표현한 장석은 진정한 한국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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