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들어 공무원 장외투쟁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을 꼽는다면 1998년 11월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교원정년단축 반대 전국교육자 총궐기대회’가 아닌가 싶다. 7만여 명도 더 되는 교원들이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초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쿠데타적 정년단축 철회’를 외쳤다. 교원들의 처연하기까지 한 공분(公憤)이 표출됐지만 언론은 짐짓 이를 외면했다. 조선일보에 사진 한 장 달랑 실린 것이 전부인 것으로 기억된다.
신문․방송은 연일 ‘노령교사 1명을 퇴출하면 젊은 교사 2.5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앵무새 같은 보도를 내보냈다. IMF사태로 경제는 파탄 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때에 이보다 더 확실한 여론몰이는 없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심리를 부추긴 행태는 교육계의 어떠한 논리와 주장도 먹혀들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당시 이해찬 장관과 교육부 고위관료들의 언론플레이가 무용담처럼 넘쳐나기도 했다.
교육계는 대패(大敗)했고 정년은 3년이나 싹둑 잘려나갔다. 물론 교단을 뒤로한 교원들 대신 젊은 교사가 2.5배로 충원되지도 않았다. 정년단축의 결과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우리 교단을 황폐화시켰으며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새삼 아픈 기억을 더듬는 것은 ‘공무원 연금 개혁’을 둘러싼 작금의 논쟁이 교원 정년단축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공적(公敵)의 범위가 공무원 모두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른바 개혁 논리부터 보자. 한 신문에 실린 찬성론자의 주장이다. “국민연금에 비해 ‘덜 내고 더 많이 받아오던’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의 형평을 고려하여 수급액을 낮추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공무원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이 시기에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업이라는 하나만으로도 선망의 대상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청춘을 바쳐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이상 공무원들의 집단이기주의는 안 된다.”
다음은 개혁에 저항(?)하는 한 공무원의 반론. “국민연금 대상자는 월 소득액의 4.5%를 납부하지만 공무원은 8.5%를 내고 있다. 그래도 연금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공무원들은 전혀 고통분담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먼저 연금 부실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가 공무원의 동의 없이 쓴 7조 원의 기금을 메우고 또한 그간의 공로보상을 어떻게 할지 납득할 만한 대책을 세운 후 대화에 응해야 한다.”
논지의 요약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핵심은 이런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야 손해 볼 것 하나 없는데 반갑지 않을 리 없다. 게다가 공무원연금의 엄청난 적자를 국민세금으로 보전해 줘야 한다는 말까지 더해지면 공무원의 논리는 맥을 출 수 없게 된다. 이 정부의 주특기인 ‘편 가르기’가 마침내 공무원과 국민을 나누고 있다. 교원과 국민이 나눠졌던 시기를 생각하면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