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일생동안 사랑을 합니다.”
며칠 전 TV에 나온 ‘이혼 전문’ 변호사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었지요. “말도 안 돼!” 그러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의 말은 사랑도 사람처럼 일생이 있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일생에 빗대어 생로병사라 해도 좋고 삼라만상(森羅萬象)에 빗대어 성주괴공(城主魁公)이라 해도 좋겠지요.
누군가 때문에 가슴 두근거려 본 일이, 마지막 불꽃이 스러진 게 언제였던 지, 기억이 나시는지요. 자칭 애정학 박사라는 한 선배가 그러더군요. 혼자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실 때 떠오르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음악을 들을 때 같이 듣고 싶고, 맛있는 것은 같이 먹고 싶고, 재미있는 영화는 같이 보고 싶으며, 드라마를 볼 땐 그 사람도 이걸 보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거라고.
그래요. 그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사랑을 할 때, 그는 길에도, 차안에도, 현관문에도, 사무실에도, 아침의 첫 커피 잔 바닥에도 저녁에 친구와 기울이는 술잔 바닥에도 있었습니다. 잠의 고갯마루를 넘는 순간까지 같이 있었고, 잠의 저편으로 떨어지면 가끔 꿈 자락에도 스며들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머리를 감고 얼굴을 다듬고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모습. 거울에 비춰본 적 있으신가요. 그 진지한 모습이며 간절함 숭고함의 무게는 하느님을 배알하고자 복장을 가다듬는 사제의 그 것과도 진중함에 있어 차이가 없지 않았던가요.
수많은 고전에서 사랑에 목숨을 바친 자가 순교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사랑의 종교적 신념에 버금가는 무게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구차하게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더더욱 영상이나 책 속에서는 화려한 이상을 위해 주저 없이 목숨을 바치는 광인을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랑을 위해 한목숨 아낌없이 바치고 피를 뿌리며 죽어 가는 영웅의 모습에 열광하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자고로 멀쩡한 사람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바로 전쟁과 혁명 그리고 사랑.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함과 절박함에 있어 사랑은 전쟁과 혁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생명 속에 전쟁이 터지고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사랑이니까요. 전쟁, 혁명을 겪은 사람이 죽거나 바뀌듯 사랑은 사람을 죽이거나 바꾸어 버립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전쟁 같은 사랑'이란 노랫말도 그래서 생긴 것이겠지요. 영원한 전쟁이 없듯 사랑의 전쟁도 언젠가 끝이 납니다. 물론 사랑엔 승자와 패자도 없습니다. 성숙, 이것이 사랑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입니다. 다른 보상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랑을 하는 자만이 사랑을 알고 있다”고 쉴러는 말했나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종교적 신념처럼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만이 우리에게 이 척박한 세상을 견디게 하는 힘을 줍니다. 줄리엣과 사랑에 빠지게 되기 전 로미오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가지면 시간도 잊게 되는 것을 왜 나는 가지지 못하였는가”라고.
그렇습니다. 사랑은 시간을 잊게 하지만 시간은 사랑을 잊게 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으니까요. 같은 사랑의 감정이 두 번 타오르지 않기에 일생의 모든 사랑은 다 첫사랑입니다. 마지막 사랑이었다는 말은 죽은 다음에 비로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은 첫사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몇 살인데 사랑타령이냐고요. 사랑타령이나 할 나이가 아니라고요? 아니요. 사람은 일생동안 사랑하는 겁니다.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 한국교육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