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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이유 있는 변신

양정호 |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은 광복 이후 지난 60여 년 동안 교육문제에 있어서 가장 많은 변화와 혼란을 겪었다. 한국교육의 다양한 변화는 가장 직접적으로 학교구성원인 교직원과 학생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학생을 뒷바라지하는 학부모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런 면에서 교육현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거처럼 학교에서 주로 생활하는 교사나 학생에 초점을 맞춘 호의에 머물기보다는 학부모가 겪어온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다.

변치 않는 학부모의 자녀교육열

최근 각 가정의 자녀수가 줄면서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언론보도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이지만 과연 이전과 비교해서 더 늘어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자료를 보면 학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산 정약용의 경우에는 자녀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좋은 가문의 규수와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한양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학원이 밀집해있는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 가는 것과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광복 이후에 우리나라 학부모의 자녀교육관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60년대와 현재의 사례를 에피소드형식으로 재구성해서 보면 <사례1, 2>와 같다.

<사례 1> 1960년대
- 중학교 입학시험에 엿기름 대신 엿을 만들 수 있는 물질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무즙을 넣어도 엿을 만들 수 있다고 항의하는 학부모들의 ‘무즙 사건’이 일어났다.
-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너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배워야 하고 못 배우면 농사나 짓고 사람대접을 못 받으며 모든 뒷바라지를 다할 테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였다.

<사례 2> 2000년대
- 서울의 세 엄마시리즈가 유행하는데 자녀가 공부가 어렵다고 하면 대치동 엄마는 다른 학원으로 옮겨보자고 하고 압구정동 엄마는 이제 유학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하며 용산 동부이촌동 엄마는 집 주위에 있는 빌딩들이 다 우리 것이니 걱정 말라고 토닥였다고 한다.
- 아이의 실력은 엄마의 능력에 달려있다며 약사를 그만두고 자녀를 위해 학원 스케줄을 짜고 교육정보를 수집하고 입시 설명회 참석으로 바쁘지만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후회는 없다는 당당한 엄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사례를 보면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다만 사회가 발전하고 시간이 흘러오면서 자녀교육에 대한 주도권이 아버지에서 어머니에게로 완전히 넘어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과거처럼 학부모가 학교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 점차 약화되면서 이제는 단순히 학부모가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지원하는 역할에서 적극적으로 자녀교육을 직접 설계하는 매니저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에 서점가에서 ‘~엄마들의 자녀교육 성공기’라는 책들이 증가하고 몇몇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학부모가 이렇게 수동적인 모습에서 적극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와 현재의 어려운 교육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고학력화로 자녀교육에 참여해

광복 이후에 단기간 내에 급속하게 진행된 산업화와 더불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는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60년 전에는 가장 뒤쳐진 후진국이면서 초등교육을 받은 비율도 상당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 고등학교 진학률이 70%에 이르게 되었고 현재는 거의 100%에 육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대학교 진학률도 2005년도에는 1960년대에 비해 무려 2.6배 상승한 82%까지 증가하였다. 즉,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졸업한 후에도 10명 중 8명이 전문대 이상의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등학교나 대학교 진학률이 증가하게 되면서 학부모 구성도 질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광복 이후에 대부분의 학부모가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면 지금은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약 절반 이상이 대학교를 졸업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학부모의 학력이 크게 증가하면서 자연히 자녀에 대한 관심과 자녀의 학교생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단순히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하며 수집된 정보를 학부모가 서로 교환하면서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학부모들은 학교 또는 교사만이 자녀에게 의미 있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 자신도 어느 단계까지는 가르치거나 자녀교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도 한 원인

또한 학부모들이 이렇게 자녀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현재 우리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은 자신의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느냐, 또는 좀더 구체적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하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자녀의 명문대학 진학여부를 부모의 사회적 체면과 어느 정도 연계시키는 독특한 한국문화에서는 더더욱 자녀교육 열풍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을 받은 학부모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학부모 집단은 누구보다도 우리사회에서 대학출신이라는 기득권과 특정 명문대학 출신들이 사회지배층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녀들이 좋은 초중등학교를 가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과거와 달리 최근 나타나고 있는 공교육 약화로 인한 학교교육의 불신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몇십 년 전에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 놓고 자녀가 학교에서 열심히만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에만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이전과 같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학부모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자연스럽게 학부모들은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더 의지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조사된 결과를 보면 학생 10명 중에서 7~8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사교육비도 급격히 증가해서 가계지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공교육 불신과 사교육 확대로 인해 조기유학을 보내는 편이 차라리 났다는 자조석인 목소리가 들리기까지 한다. 이런 교육현실 속에서 자녀를 키워야 하는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볼 때 최근 나타나고 있는 지나친 자녀교육의 관심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현실에 적응해 가는 학부모

그럼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우리교육의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을까?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만을 생각하는 미시적 시각으로 교육 전반을 바라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좀 더 적극적으로 또는 조직적으로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교교육에 참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학부모가 학교의 한 구성원으로 학교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부분은 현재 모든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는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 두 가지이다. 예전에는 사친회, 기성회, 육성회라는 이름으로 학부모가 단순히 학교를 후원하는 역할에 그쳤다면 지금은 학교운영위원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현재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학부모 위원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로 주로 구성되었거나 학교운영위원회에 대한 홍보부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몰래 참여해 의도했던 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학부모들 입장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학부모들이 보다 자발적인 조직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교육문제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1980년대에 나타난 교육운동의 영향으로 조직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1989)’,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1990)’를 시작으로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2002)’에 이르기까지 전국 규모의 학부모단체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학부모단체들은 과거의 학부모단체들과 확연히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즉, 단순히 학교 후원조직을 넘어서 교육의 다양한 현안에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학부모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학부모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부모와 학부모단체의 영향력은 상당히 커졌다.

예를 들어 각종 교육관련 정책 간담회, 토론회, 공청회는 물론 정부 주도의 각종 위원회에도 학부모단체의 대표로서 학부모가 참가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으며 교육부나 국회의원도 역시 학부모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이렇게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학부모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자신의 자녀교육에만 각자 개별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교육주체로서의 책임감 가져야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과거와 현재의 학부모들은 관심 정도나 집단구성 그리고 위상 면에서 상당히 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 지금 시점에서 학부모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자녀를 교육시키고 우리나라 교육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지금은 광복 이후에 변화된 학부모의 모습에 적합한 사고와 행동이 필요한 시기이다.

우선 교육정책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흔히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학부모의 과도한 교육열로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그런지 적극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다양한 교육정책의 변화로 인해 희생된 집단이 학부모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하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자녀가 지속적으로 학교에 다니도록 지원한 학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학부모도 교육정책이 마련된 이후에 영향을 받는 수동적 입장에 놓이기 보다는 납세자로서, 자녀의 학부모로서 적극적으로 자녀의 교육현실이 개선될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 사교육이 필요 없는 학교가 되도록 수요자의 입장에서 정부에 요구할 것은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에 더해서 학부모단체를 통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교사를 포함한 다른 교육집단들도 학부모의 이런 요구들이 제시될 가능성에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학교의 한 구성원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학부모가 해야 한다. 학교는 교직원, 학생, 학부모가 서로 교류하는 공간이다. 단순히 어느 한 집단만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면 학교 공동체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자녀가 피해를 보거나 하면 학부모는 학교 교직원에게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시험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녀 일로 교사를 폭행하는 경우에서처럼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학부모나 교직원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학생들이 만들어 유명해진 〈학교대사전〉에 표현된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를 봐도 이 두 집단은 서로 긴장관계에 있고 ‘평상시엔 교사가 우위를 점하나 학교에서 사고나 불상사가 일어나 학부모들이 분노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부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학교 차원에서도 학부모의 의견이 적절한 절차를 통해 수렴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학부모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학교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될 때 교직원, 학생, 학부모 모두가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된 여건에 맞는 태도 보여야

마지막으로 자기개발을 통해 앞날에 대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최대 관심분야가 교육일 것이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희생을 해서라도 지원해 줄 각오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자녀수가 한명인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서 문제는 과거와 달라진 사회현상에 대한 고려를 현재 학부모들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전에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도 충분했는데 지금은 학교교육에 더해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자연히 자녀의 사교육비를 부담하느라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게 된다. 30대나 40대가 대부분인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노후보장을 위한 투자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은퇴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미래사회에는 노후에 어떻게 생활할 지가 점차 큰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노후에 대해서는 준비를 할 겨를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자기개발을 비롯한 체계적인 노후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자료를 보면 지금의 자녀세대는 학부모 세대처럼 부모봉양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다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사회생활을 할 시대의 사회여건은 자녀들이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벅찰 가능성이 있다.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 학부모는 지난 60년 동안 많이 변해왔고 교육여건도 상당히 달라졌다. 이제 학부모들은 현재의 변화된 위상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교육에 임할 필요가 있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학부모가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을 전혀 가지지 않고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모든 일이 학부모가 바라는 대로 진행되는 사회가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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