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얘기 들었어?”
“뭐?”
“○○ 알지? 오늘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이혼했다고 하데.”
“그래? 왜? ○○씨 바람 같은 것 피울 사람 아니지 않나?”
“원래 성격이 잘 안 맞았는데, 서로 참고 살다가 최근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나.”
“내 그럴 줄 알았어. 가끔 얘기해보면 딱 감이 잡히더라고. 두 사람 서로 가까운 듯 행동하지만 왠지 겉도는 것 같고, 가식적인 면도 느껴지고. 어쩐지 이상하더니.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아는 그녀는 이렇게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는 사람의 가정사뿐 아니라 연예인에 대한 가십이나 정치적 사건이 보도될 때도 마치 전부터 낌새를 채고 있었다는 듯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그러면서 마치 ‘형사 콜롬보’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풀어나가는 것처럼 줄줄이 이유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듣다 보면 꽤 그럴듯하게 느껴져 그 일이 지금까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는 그녀의 버릇이 듣는 이의 입장에선 그리 탐탁지가 않다. 나를 욕하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나빠진다. 왜 그럴까.
콜롬보. 그래, 어쩌면 그녀는 자신을 사건의 용의자 선상에서 한시라도 빨리 빼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나는 안전해, 나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어”라고 자기 확인을 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내 그럴 줄 알았어”로 시작하는 설명을 듣다 보면 대개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방관자처럼 그 사건에서 자신의 역할은 빼고 해설을 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황망한데 사고가 나기 무섭게 자기가 100퍼센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전 일까지 다 끄집어내어 시나리오를 짜맞춰 내면서 불가피한 부분은 제거되고 “모두 당신 탓이오”로 몰아세우니 황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마지막에 “나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야”라는 식으로 확인사살까지 하면 정말 얄미워지기까지 한다.
비록 그녀처럼 자주는 아니라도 우리는 모두 이렇게 자기 자신의 무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한다. 또 더 나아가 가끔은 누가 그 말을 먼저 꺼내면 “맞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그 시나리오를 더욱 풍부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하기도 한다. 물론 시나리오에 나에게 주어진 배역이 없거나 면죄부가 주어질 때에 한해서 말이다.
혹시 나도 모르게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짜 맞춘 시나리오에 도취되어 타인의 불행을 방관자적으로 바라보는 버릇이 들어버린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보세요. 학생들을 야단칠 때, 선생님도 혹시 이렇게 말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말이란 버릇의 덩어리입니다. 새 학년. 이번에 맡은 아이들과는 전지적 관찰자인 “내 그럴 줄 알았어”의 시각이 아닌, 그 속에 들어가 함께 울고 웃는 멋진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 한국교육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