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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연극 ‘빈방 있습니까’ 열연한 박재련 교장

"열정과 함께한 27년, 덕구는 제 삶의 일부죠"


“어머, 진짜 교장선생님이잖아.”
어눌하게 더듬는 말투, 부자연스러운 행동, 허를 찌르는 연기에 객석에서는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구보다도 반듯한 50대 교장선생님의 감쪽같은 ‘지체장애아’ 변신이 아이들은 즐겁기만 하다.

서울 은일정보산업고 박재련 교장은 27년간 줄곧 ‘덕구’로 살아왔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정신지체아 덕구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연극 ‘빈방 있습니까’는 1981년 민예소극장에서 초연하면서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됐다. 그동안 올린 공연 횟수만 해도 1000여 회. 박 교장은 숫자를 세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다고 한다. 정기 공연은 매년 12월 대학로에서 열지만 주말마다 탈북자 보호정착시설 하나원을 비롯해 여러 복지시설을 방문해 연간 40회 정도 연극을 올린다.

“수익을 목적으로 한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배우들이 기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공연하고 있습니다. 조금 수익이 생기는 것은 장애우들을 돕는 데 쓰고 있죠.”

이 연극은 미국의 윌리라는 아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성탄절을 맞아 공연을 준비하는 교회 고등부의 연극반이 배경이다. 크리스마스 공연일인 24일, 우여곡절 끝에 지체장애아인 덕구가 연극무대에 데뷔하고 현실과 연극을 혼동해서 연극을 망치고 말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는 연극이에요. 지능이 낮다고 무시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야말로 순수한 영혼을 지닌 한 인간 ‘덕구’를 보게 되거든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배우게 됩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살아가는 힘”

박 교장이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74년. 교회 연극반에서 연극에 매료돼 1980년 30여 명의 멤버와 함께 극단 증언을 창단했고 이듬해부터 ‘빈방 있습니까’를 공연해왔다.

“전문적으로 연극만 하고 싶었지만 직업을 삼는다면 쉽게 열정이 무뎌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취미이지만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일만큼은 무엇보다 열과 성을 다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죠. 그 결과물이 ‘빈방 있습니까’입니다”

그렇지만 27년간 열일곱 살의 덕구를 연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덕구는 매해 같은 나이지만 박 교장은 어느덧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순수함의 결정체 덕구라는 인물은 저에게 연극 이상의 만족감과 희열을 주기 때문에 덕구로 살아가는 것은 보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덕구가 너무 늙어 보이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늘 하고 있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덕구를 연기하다가 더 나은 후배가 나타나면 물려줄 생각입니다.”

27년간을 걸어온 만큼 잊을 수 없는 관객들도 많다. 유치원부터 대학 갈 때까지 이 연극을 매해 보았다는 학생, 공연을 같이 본 후 청혼을 받았다며 결혼기념일마다 찾아오는 부부, 한창 공연 연습 중에 어떤 사람이 정말 정신지체아로 착각했던 황당함….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10년 전의 한 어머니입니다. 아이들과 마지막 성탄절을 보내겠다며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저희 연극을 보게 됐고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 보자’는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저희 공연 관계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왔는데 저 또한 보람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박 교장이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은 무엇일까. “연극의 매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체험하는 것에서 오는 끌림이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삶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죠. 또 연극은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함께 고생해서 최고의 공연을 올렸을 때의 뿌듯함 또한 큰 매력입니다.”

공연 예술 특성화 학교 만드는 것이 꿈
연극에 대한 박 교장의 열정은 학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은일정보산업고에는 없는 공연예술매니지먼트과, 문화홍보디자인과, 문화·영상미디어과 등 다른 전문계고에서는 볼 수 없는 특성화된 과들이 있다. 이것은 모두 박 교장의 아이디어. 현재 구로2동에서 내년에 구로구 궁동으로 학교가 이전하면 인터넷 방송 스튜디오를 만들어 지역민들을 위한 인터넷 방송을 할 계획이다.

“전문계고는 더 이상 디자인이나 컴퓨터만을 가지고는 승산이 없어요. 요즘 학생들이 공연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데 그것을 전문적으로 배울 만한 곳이 드물죠. 그래서 특성화된 과들을 만들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공연 예술 특성화고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 교장의 다음 작품은 청소년 성교육 연극. 학생, 교사들과 함께 준비해 내년에는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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