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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을 헤매지않기 위한 몇가지 방법들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에피소드 하나. 오랜만에 고향에 들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이 모였습니다. 10여 년째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의 '서울 예찬'이 이어집니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은 환상적인 곳이야. 늘 꿈을 찾아 움직이는 삶의 격렬함이 있다고 할까. 이곳은 문화적 혜택도 떨어지잖아. 훌륭한 공연 한 번 찾아보기 쉽지 않고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아이들을 위한 학원도 학교도 서울에 비하면 모두 시원치 않아."

고향에서만 지낸 친구가 대답합니다. "강남역의 번잡함이 꼭 삶의 역동성을 얘기하진 않지. 예술의 전당 공연스케줄은 꿰고 있지만 얼마나 자주 이용할 수 있을까. 요즘은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고 훌륭한 대치동의 학원들도 많지만 네 수입에 이를 다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일 년에 한 두 번은 서울에 들르는 친구가 "내가 자주 가봤는데 정말 멋진 곳이야 서울은. 가보지도 않는 네가 그곳의 삶을 얘기할 수 있어?"라며 반격하자 다시 친구가 응수합니다.

"가보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고 그 곳의 삶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겐 서울서 귀향한 상사와 매달 보는 잡지, 방송과 전화가 있어. 물론 서울이 멋진 곳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서울 무경험자의 견해에 긍정하시나요? 서울이라는 텍스트는 그대로 있는데 그 텍스트를 경험하는(읽는) 사람마다 그 견해는 다릅니다. 텍스트의 무게에 눌려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습니다. 가서 살지 않았지만 서울이라는 텍스트를 능수능란하게 논의하고, 그 텍스트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다면, 고향의 떠나지 않은 친구도 훌륭한 것 아닐까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은 바로 이 점을 얘기하며 출발합니다. 책을 읽지 못했다면 주눅이 들어 얼굴을 들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단비(?)와도 같다고 할까요.

저자는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처지지만 자신이 펼쳐보지도 않은 책을 수업에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합니다. 그러면서 '비독서'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가 모두 '비독서'에 속하지만 "그 책의 내용에 대해 모른다고 해서 그 책을 꿈꾸거나 그것에 대한 토론을 하는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이를 위해 폴 발레리의 대충 읽어보는 책읽기 방식이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몽테뉴의 기억력 결함 등을 제시하며 독서의 허상을 들춰냅니다. 그리고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평해야 할 의무에 가장 자주 직면하게 되는 직업, 즉 '선생'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을 들려줍니다.

그렇다면 단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일까요? 언뜻 '독서 불량자'들에게 항변의 근거만 마련해주는 듯하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저자는 오히려 독서 행위 자체에 질식당하고 마는 수동적 독서를 벗어나 능동적 읽기를 권유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은 책들 속에 침몰당하지 않기"위한 것이며 "독서가 신성시되는 사회"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책이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오브제이며 그 유동성은 책을 중심으로 짜이는 권력관계 전체와 관련이 있음"을 상기하라고 합니다. 또 "각각의 책에 대해, 지나치게 분명한 단언들로 축소시키는 것보다는 그것이 내는 다양한 소리를 모두 받아들여 그 잠재적 가능성들을 하나도 상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면서 "책을 깊이 탐독하되 그 책의 위치를 정하지 못하는 사람과, 어떤 책 속으로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모든 책 속을 돌아다니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독자인지" 자문하도록 요구합니다.

결국 저자는 "자기 자신이 창조자가 되는 것이 이 책의 귀착점"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독자는 다른 사람의 책에 빠져 자기 자신의 세계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이건 읽은 책이건 책에 대해 거리를 두도록 요구"하고 "책을 꾸며낼 권리"를 가지라는 것이지요.

나아가 책의 문제를 교양의 문제로 확대합니다. "교양이라는 것은 개인의 무지와 지식의 파편화를 감추는 역할을 하는 하나의 연극"이며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진실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내가 미처 갖추지 못한 교양에 진실해 지자고 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 것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훌륭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신가요?

* 이 책의 주어진 명제와는 달리 이 책을 '읽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다소 힘겨운 번역글임은 분명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소설과 영화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자못 흥미롭고 생각의 틀을 확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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