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방분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독일에서 전지역에 통용되는 규정들의 제정하는 움직임이 제기되고 있어 흥미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 움직임이 최근의 교육력 저하문제 때문에 발생했다는 측면에서 독일이 교육문제와 관련돼 얼마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대변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OECD국가의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력평가에서 독일 학생들의 성적이 상당히 나쁘게 나온 이후 신문을 비롯한 방송매체는 독일 교육체계의 위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획기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들끓는 여론에 밀려 독일 각주의 교육장관들의 모임인
교육장관회의(Kultusministerkonferenz)는 지난 9월30일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교육장관들은 독일 교육체제의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금껏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독일 전역에 통용되는 학과목에 관한 규정'의 제정에 합의했다. 전통적으로 독일
연방 정부의 영향력에 굴하지 않으면서 상당히 폐쇄적이었던 이 모임에 기업체 등을 포함한 교육관련 사회 단체들이 논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독일 언론에서는 획기적인 일로 보도되기도 했다.
연방 각주의 교육부 장관회의에서 결정된 핵심은 올해 말까지 독일 전역의 고등학교(김나지움)에서 독일어, 수학 그리고 제1외국어에 대한 중간시험을 통과한 학생들만이 학년을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규정과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각주의 교육부 장관들을 이를 통해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려 하고 있지만, 연방정부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 그 실현성은 의문시되고 있다.
독일 전역에 통용되는 규정을 위해서는 연방정부와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현성이 의심받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연방 각주의 교육부 장관회의 결정은 이 회의에 참석했던 기업체들의 입장을 수용한 것인데, 이들 기업체들은 이러한 결정을 통해 더 많은 이론과 실습이 연계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된 독일 전역에 통용되는 단일화된 규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회의 결정이후 시간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그 내용 면에서 너무나 추상적인 것이 현실성에 의심을 받는 주된 것이다. 즉, 거의 모든 내용들이 각 학교에서 적용되는 것에 달려있는데, 선생님들이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통제의 방식 등에 있어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
수학과목처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세계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책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까지 이런 작업이 전혀 없었던 독일어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장관회의에 참석했던 출판사와 같은 수업교재를 만드는 기업체는 수업교재 등에 대한 엄밀한 규정이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교육부장관들 내에서도 그리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몇몇 주의 교육부 장관들은 단일화된 규정을 인문계 또는 실업계 고등학교 등에 모두 적용할 것이 아니라, 독일 어느 지역에서든지 10학년때 중간 시험을 치르고 합격한 학생들만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규정을 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현재 독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위해서는 아비투어(Abitur)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이 시험만이 어느 지역에 상관없이 독일 전역에서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독일 연방 각 주의 교육부 장관들 내에 나타나는 이견의 중심에는 시험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와 책임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중간시험의 문제 출제에 있어 몇몇 주의 교육부 장관들은 교육장관회의의 관리하에 자립적인 학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이 모임에서 문제들을 출제하는 방식을 제기하면서, 이 모임의 자립성을 위해 재정을 연방정부로부터 받지 않는 방식을 제안하지만, 다른 몇몇 주의 장관들은 단지 재정을 연방정부로부터 받지 않는다고 해서 자립적인 단체가 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실현성에 대한 의심 그리고 교육부장관 내에서도 이견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일부 언론은 들끓는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몇몇 교육정책입안자들의 보여주기 위한 요식적인 행동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