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은 어떻게 시작되게 됐습니까?
“제가 창립멤버는 아니지만 2007년 서울과학고 동문회홈페이지에 이준석 대표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배운 것들을 사회에 나눠보자’는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죠. 그렇게 뜻이 맞는 동문들이 모여서 서울 용산구청에 제의했고 오산중학교 건물을 빌려 교육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예비교사와 일반 대학생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구청의 지원을 받아 교육장을 마련하고 기업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추천받거나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홍보 전단을 붙여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처음 대학생들이 교육봉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린 친구들이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과연 잘할까 하는 의심과 함께 지속성 여부 때문에 잘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봉사를 하겠다고 와서 지원금만 받고 실제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 좋지 않은 사례들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해요. 저희도 처음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과학고 출신들이어서 수학, 과학에는 자신이 있으니 수학교재를 직접 만들어 보여주며 설득했다고 합니다.”
“참여하는 모든 봉사자들의 집 배나사”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특이했던 점이 누구든 인터뷰를 연달아 하면 안 되는 내규가 있어 이준석 대표를 제외한 다른 운영진을 인터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특이한 내규는 어떻게 생긴 것인가요?
“암묵적인 내규이죠.(웃음) 이준석 대표라고 부르지만 사실 내부적으로 그런 구별은 두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참여하는 모든 교육봉사자들의 집이 배나사가 됐으면 하는 거예요. 다 같이 열심히 봉사에 참여하는 일원일 뿐 이준석 대표가 이끌어 나가는 봉사단체가 아니라는 것이죠. 단체 내부에서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단체 운영이 한 사람에 의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교육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고, 개인적인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나요?
“저 역시 동문 후배의 활동을 보고 2009년부터 교육봉사를 시작하게 됐죠. 봉사라는 의미보다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해서 시작했고 보람을 느끼면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방위산업체에서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 시간을 내고 있어 어렵지는 않습니다. 또 배나사에서는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봉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고 있습니다.”
시스템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공부방은 소수의 인원이 개인 시간을 많이 투자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끈기 있게 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어요. 배나사는 인력풀을 마련해 개인의 시간을 많이 뺏지 않으면서도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규칙을 세우고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상근근로자가 없어 단체 운영의 대부분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전산프로그램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죠. 이 부분도 공대생들 중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는 분들이 그 재능을 기부하신 것인데 저희가 만들고 있는 교재, 홈페이지 디자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특별히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 외에도 많은 분들의 참여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인력풀을 마련했어도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꾸준히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남다른 노하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체계적인 준비와 교재의 역할이 큽니다. 저희는 일단 교재 개발이 진행된 다음에 교육을 시작해요. 교재 개발 후에 진도표를 짜고, 학생들을 모집해 그만큼의 선생님 수급계획을 세우죠. 체계적으로 준비가 다 되어야 수업을 시작합니다. 자원봉사가 일상에 다른 급한 일이 생긴다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재가 있으면 중간에 사정 때문에 못 나왔어도 이번에 나와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바로 알 수 있죠. 아이들도 교재로 공부하니 연계성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고요. 또 다른 교육장에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됩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지난해 가을에 굉장히 힘든 반을 맡았는데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공부를 안 하려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중에서도 강소영(가명)이 전부터 골칫거리였던 아이였죠. 밤늦게까지 아이들과 씨름하며 열심히 가르쳤는데도 변화가 없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소영이가 먼저 공부에 대한 질문을 해왔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그 순간이 저에게는 정말 값진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어요.”
“알면 알수록 어려운 교육”
배나사의 고민이나 어려운 점은.
“지난해 내내 배나사 전체를 속 썩였던 사건이 학생 한 명이 집에서 구타를 당하는 가정환경 때문에 가출한 일이었죠. 가출한 뒤 의지하던 선생님에게 전화해 선생님에게 가 있으면 안 되느냐고 했어요. 저희는 선생님들이 젊어서 아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대할 수 있어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부작용을 봤어요. 아이들이 점점 교육장, 선생님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집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가출을 쉽게 생각하고, 교육장에서 받아줄 거라고 믿는 아이들도 있어요. 저희는 수학, 과학만큼은 아이들에게 쉽게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소외 계층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필연적으로 ‘상담’에 해당되는 문제들이 수반되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학생들은 지도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바로 진로지도 때문입니다. 그쪽은 저희가 경험이 없고 전혀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책임 있게 지도할 수 없어 고민스럽습니다. 이런 문제들로 최근 ‘학생관리팀’을 만들어 현황을 파악하고 있고 다른 단체와의 연계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배나사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부분과 단체로서의 배나사의 최종 목표가 무엇입니까?
“배나사가 주로 가르치는 학생들은 저소득층이거나 학습부진아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이죠. 저희는 이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정규교육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공교육에 복귀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또 단체로서 배나사의 목표는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서 나눔, 봉사 문화가 확산됐으면 하는 것이죠. 지금 배나사 용산 교육장이 제일 큰데 가르치는 학생 수가 70명 정도로 용산구 전체 저소득층의 10%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눔이나 봉사에 대해 알고 참여하고, 더 많은 학생들이 혜택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대학생들이 많지만 교육봉사에 참여하는 데는 제한이 없습니다. 다양한 분들이 오셔서 함께 했으면 합니다.”
나눔 문화가 사회 중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특별히 교육봉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다면.
“배나사는 80〜90%가 대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생업이나 생활에 대한 압박이나 대가성 없이 순수하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주려고 찾아온 만큼 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순수합니다. 교육장을 찾아오는 아이들도 순수하게 배우러 오는 것이죠. 이렇게 서로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 정말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을 하는 곳이 됩니다. 다른 사교육 등에서는 볼 수 없는 봉사 단체로서의 매력이죠. 또 집안 사정이 어려워 사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학습이 부진한 학생, 의욕이 없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런 아이들을 고집스럽게 가르쳐서 어느 날 아이들이 성장해 있는 것을 보고 난 선생님들은 봉사를 놓지 못하죠. 예비교사도 많이 오는데 한 사범대학생 선생님은 교사가 되고 싶었던 본인의 초심을 다시 깨닫게 해준 곳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봉사, 하나의 일상으로 생각했으면”
우리 사회의 봉사, 나눔 문화에서 고쳐야 할 점은.
“첫 번째는 해야만 하는 봉사시간을 정해놓은 것이 문제입니다. 배나사에서도 가장 큰 폐해 중 하나인데 물론 처음 의도(?)와 달리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와서 대충 시간을 채우기 위한 봉사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다들 봉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많습니다. 쉽게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봉사가 하나의 일상이 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