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오후 5시 54분. 12시간 54분의 대장정 끝에 서울마라톤 주최 100㎞ 마라톤에 골인했다. 캄캄한 오전5시에 새벽 별을 보면서 서울교육문화회관을 출발해 양재천을 지나 탄천 깊숙이 들어갔다가 암사동을 반환점으로 여의도, 가양대교, 다시 여의도를 지나 출발지점에 골인하기까지 100㎞를 달리는 동안 좀 과장해서 천당과 지옥을 여러 번 겪었다. 어찌 일단의 감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작년 3회 서울 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한 회원이 멀쩡히 골인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우리 동호회원 5명은 6월에 참가신청서를 내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갔다. 목표는 100㎞ 즐겁게 달리기, 월 300㎞ 소화하기, 술 3잔 이상 안마시기. 악을 써도 200㎞밖에 소화를 못했고 술 약속은 날이 지날수록 퇴색해갔다. 8월에는 비 핑계로, 설상가상으로 9월에 근무지를 이동해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은 급하고 몸은 말을 안 들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일주일 전 춘천마라톤에 출전한 것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 원인이 됐다. 53㎞ 제 1관문을 지나면서 연습량 부족의 벌은 서서히 조여왔다. 5㎞마다 스트레칭을 했는데 이제는 2.5㎞마다 스트레칭을 해도 금방 다리가 천근같이 무거워졌다.
마라톤은 정직하다. 인생에는 가끔가다 횡재라는 것도 있을 수 있는데 마라톤은 없다. 연습량만큼만 가는 것이다. 젊다고 힘이 많다고 잘하는 것만도 아니다. 나이가 많아도 연습량이 많으면 젊은이 뺨치는 게 마라톤이다. 대회에 나가보면 흔히 5㎞도 못 가 걷는 참가자도 있는데 이는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젊은 혈기만 믿고 나섰다가 벌을 받은 것이다.
연습량이 첫째라면 자신감이 그 다음이다. 사람은 참 신비하다. 같은 일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천지차이다. 처음 참가하는 100㎞라 두려움이 앞섰다. 이 정도의 컨디션이라면 그냥 완주는 할 수 있을는지 불안이 떠나지 않았다. '난 할 수 있다' 주문을 외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5㎞도 못 뛰던 내가 풀코스를 12번이나 뛰었고 이제 반도 안 남았다. 울트라마라톤은 죽기살기로 뛰는 것이 아니므로 많은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고수들과 이야기할 기회도 있었는데 그들도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연습을 게을리 하면 하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흔히 마라톤을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단순 반복 운동이라며 무슨 재미로 하냐는 이들도 있지만 단순 반복 운동이기에 머리에서는 온갖 상념이 꼬리를 문다. 그 단순함과 상념을 즐기면 결과는 엔돌핀으로 돌아온다. 산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 모든 것이 사람으로 귀결된다. 혼자 외롭게, 자신과 힘겹게 싸우니까 사람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할까. 그래서 마라토너들은 협동, 단결에 감사하고 인간자체에 대해서 더욱 고개를 숙인다.
이번 대회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새벽3시부터 밤늦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마라톤은 사람을 사람으로 그리워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