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직 중심의 승진체계에서 변화
교육현장에서 몸담고 있는 대부분 교사들의 승진의 길은 학교 관리와 경영을 책임지는 교장 · 교감뿐이었다. 그러한 승진체계는 교사들이 수업연구 자체보다는 승진을 위한 점수 관리에 더 매진하게 만들었다. 교단에 들어서면서부터 누가 먼저 필요한 점수를 빨리 따느냐가 능력 있는 교사의 기준처럼 됐기 때문에 교사들이 오히려 교실에서 학생들을 연구하는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수석교사는 이같은 교직 승진체계에서 발생된 문제를 바로 잡고 교실수업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개선책으로 논의돼 왔다. 1982년 7월부터 수석교사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이 추진돼 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법제화되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 교원직급 신설 반대와 예산 확보 곤란으로 관계부처와 국회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좀 더 일찍 시행됐더라면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본질에 더 집중해 노하우를 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시범운영 4년을 거쳐 법제화가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의 혜안이 있었다. 무엇보다 교육이 국력이 되는 이 시대에 초 · 중등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수한 행정가 못지않게 우수한 교사가 교단에 필요하다는 것을 현장에 있는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이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격한 전형과정을 거쳐 선발된 수석교사 시범운영 대상자들이 직위와 역할조차 분명하지 않는 현장에서 교단 정서를 바꾸기 위해 4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며 노력한 공이 컸다.
이제 이 제도가 우리 교육에 막혀있던 물꼬를 터 진실로 교육의 중심이 학생이 되게 하는 문화를 만들 것이며 교사가 신명나게 가르치는 일에 몰입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관리자와 수석교사로 각각 전문성 강화
수석교사들은 수업을 ‘소통’이라고 본다. 좋은 수업은 학생과 교사와의 소통, 교사와 교사 간의 소통, 교사와 학부모 간의 소통, 학생과 학생 간의 소통이 수업을 통해서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수석교사는 교사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수업지도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도울 것이고 많은 교사들은 그런 수석교사들을 통해 성장할 것이다. 수석교사 제도는 누가 먼저 승진하느냐에 초점을 두지 않고 교사들이 서로 협조하며 시너지를 내는 교단문화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게 될 것이다.
교육 현장에는 학급경영이나 생활지도, 교수법, 학부모와의 관계 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이 있다. 이런저런 연수로도 풀 수 없는 문제들을 관찰하고 함께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일, 동료끼리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단위학교의 수업장학에 관한 일을 수석교사가 하게 된다.
수석교사 법제화로 교단이 교수와 관리로 그 역할이 구분되고 학교에서 교과교육과정과 수업장학을 수석교사가 담당함으로써 학생 지도에 관련해 긍정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본다. 또한 관리직도 학교 경영에 있어 더 높은 전문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학교에서는 창의적으로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게 자리잡게 될 것이고. 관리자는 교육 환경을 잘 관리해 가르치는 일을 제대로 지원하는 일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성과지향적 무분별한 확대 막아야
이 시점에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지금 대부분의 중견교사들은 승진을 위한 점수 관리에 주로 신경 써왔기 때문에 수석교사가 되려 해도 당장 드러내놓을 만한 수업에 대한 솔루션이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부가 매년 3000명을 뽑으려 한다면 우수한 교사를 선별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이는 곧 부실로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교장 · 교감으로 이어지는 일원화된 승진체계에 맞춰 준비해 온 교사들이 수석교사로 방향을 바꾸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 승진을 위한 점수는 혼자서 주로 관리하면 되지만 수석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는 혼자보다 동료교사와 소통하면서 쌓는 스펙이 더 요구된다. 동료 교사를 가르치는 일은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통해 많은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에 더 가치를 두고 그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꺼번에 많이 뽑아버리면 교사들의 꿈이 될 수 없다. 현장의 모든 동료교사들이 ‘저 분은 수석교사 감이다’라고 공감하는 교사가 수석교사가 되도록 엄선하고 또 엄선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최종적으로는 일정규모 이상의 학교마다 수석교사가 한사람씩 있어야겠지만 목표 숫자를 채우는 데 급급하는 것은 성과 위주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며 비경제적이다. 제대로 역할을 해낼 수 없는 수석교사가 많아지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현장에서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한다. 수업하는 시간수가 적다고 수석교사가 되려는 교사, 컨설팅의 역할은 대충하고 ‘수석교사’라는 무늬만 갖겠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어렵게 만들어진 이 수석교사 제도가 교육계의 꽃이 되어 한국교육을 세계 교육의 모델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석교사 직무수행에 필요한 전문성 및 리더십, 교육공동체와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자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또 정부는 그렇게 선발한 수석교사가 더 높은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 수석교사가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학교현장에서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석교사를 희망하는 많은 교사들은 무엇보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수업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안목을 갖기 위해 교육과정에 대한 폭넓은 견해를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연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정책의 시행 초기에는 잡음이 나오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논의돼 온 제도이지만 수석교사제가 학교 현장에 정착돼 제 역할을 해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빠른 효과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제도는 수석교사 선발 자체보다는 수석교사를 본보기로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교육 자체에 중심을 두고 전문성을 키워 나가는 분위기를 조성해 가는 데에 의미가 있다. 수석교사제가 공교육을 바로 서게 할 수 있는 촉진제로 작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