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에서의 사과(apology)는 책임이 따르는 중대한 외교문제다. 사과란 용어는 ‘침해(offense)’에 대한 인정이고 피해에 대한 보상(reparation)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매우 선택적이고 신중히 사용될 수밖에 없는 용어다. 그런 점에서 2차 대전 이후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독일과 일본을 비유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독일 : 기억과 인정, 반성의 문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9년, 당시 서독 정부의 초대 수상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는 서독 정부를 국제질서 속에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제일 먼저 이스라엘과 ‘룩셈부르크 협약’을 체결하고 12~14년에 걸쳐 그들의 과오에 대해 배상해 나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후로도 독일은 나치 정권의 박해를 받은 사람들과 유족에 대한 보상, 예를 들면 연금, 위로금, 의료비, 유가족 부양비, 교육비 등을 이들에게 지급해 왔다. 개인보상은 향후 2030년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독일의 전후 보상 총액은 64조 원(1100억 마르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역사인식에서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정치적 사건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서독의 4대 총리였던 빌리브란트는 과거 독일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 위해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바르샤바 유대인 학살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묵념했다. 비록 이러한 행위가 정치인의 퍼포먼스라 할지라도 그만큼 상징성이 컸으며, 세계는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고 이듬해 빌리브란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